"집필자 : 노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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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로왕은 삼국시대 백제의 제21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455년~475년이며, 비유왕의 맏아들로서 왕위를 계승했다. 고구려에 대항하기 위해 요충지에 목책을 설치하고, 북위와 협력관계를 만들고자 외교를 펼쳤으나 실패했다. 왕궁을 화려하게 짓고 대귀족들을 주요 관직에서 배제하여 왕권 강화를 시도했지만 오히려 백제 내부의 결속을 와해하고 왕실의 영도력 자체를 약화시켰다. 475년 백제의 발상지이자 중심부인 한강 유역 일대를 고구려에 빼앗기면서 고구려에 포로가 되어 살해당했다.
개로왕 (蓋鹵王)
개로왕은 삼국시대 백제의 제21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455년~475년이며, 비유왕의 맏아들로서 왕위를 계승했다. 고구려에 대항하기 위해 요충지에 목책을 설치하고, 북위와 협력관계를 만들고자 외교를 펼쳤으나 실패했다. 왕궁을 화려하게 짓고 대귀족들을 주요 관직에서 배제하여 왕권 강화를 시도했지만 오히려 백제 내부의 결속을 와해하고 왕실의 영도력 자체를 약화시켰다. 475년 백제의 발상지이자 중심부인 한강 유역 일대를 고구려에 빼앗기면서 고구려에 포로가 되어 살해당했다.
백제의 제4대(재위: 128년~166년) 왕.
개루왕 (蓋婁王)
백제의 제4대(재위: 128년~166년) 왕.
신라 탈해이사금 때, 우시산국과 거칠산국을 병합한 장수.
거도 (居道)
신라 탈해이사금 때, 우시산국과 거칠산국을 병합한 장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황금서당 보기감을 역임한 장수.
김영윤 (金令胤)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황금서당 보기감을 역임한 장수.
김유신은 삼국시대 신라의 삼국통일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 장수이다. 595년(진평왕 17)에 태어나 673년(문무왕 13)에 사망했다. 신라에 투항한 가야왕족의 후손으로, 진골 귀족 출신이다. 15세에 화랑이 되어 낭도를 이끌고 고구려·백제와의 전투와 귀족층의 반란 진압에서 공을 세워 중요 인물로 성장했다. 누이와 결혼한 김춘추가 태종무열왕에 즉위하면서 정치적 위상이 더 높아졌다. 660년 정월에 귀족회의의 수뇌인 상대등이 되었고, 삼국통일 전쟁 과정에서 신라를 이끄는 중추적 구실을 했다. 사후에 흥덕왕이 흥무대왕으로 추봉했다.
김유신 (金庾信)
김유신은 삼국시대 신라의 삼국통일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 장수이다. 595년(진평왕 17)에 태어나 673년(문무왕 13)에 사망했다. 신라에 투항한 가야왕족의 후손으로, 진골 귀족 출신이다. 15세에 화랑이 되어 낭도를 이끌고 고구려·백제와의 전투와 귀족층의 반란 진압에서 공을 세워 중요 인물로 성장했다. 누이와 결혼한 김춘추가 태종무열왕에 즉위하면서 정치적 위상이 더 높아졌다. 660년 정월에 귀족회의의 수뇌인 상대등이 되었고, 삼국통일 전쟁 과정에서 신라를 이끄는 중추적 구실을 했다. 사후에 흥덕왕이 흥무대왕으로 추봉했다.
김주원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이찬으로 시중을 역임한 귀족이다. 무열왕의 5대손이라고 한다. 777년 시중으로 재임하고 있던 때에 혜공왕이 살해되고 선덕왕이 즉위하였다. 선덕왕 사후에 실권을 장악하여 귀족회의에서 공식적인 왕위 계승자로 추대될 수 있었다. 그러나 김경신이 정변을 일으켜 즉위하지 못하였다. 왕위 계승전에서 실패한 후, 명주지방으로 물러나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여 명주군왕(溟州郡王)이라고 칭해졌다. 강릉김씨의 시조로, 그의 후손은 반독립적인 지방 호족으로 성장하였으며, 고려에 귀의하여 큰 공을 세웠다.
김주원 (金周元)
김주원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이찬으로 시중을 역임한 귀족이다. 무열왕의 5대손이라고 한다. 777년 시중으로 재임하고 있던 때에 혜공왕이 살해되고 선덕왕이 즉위하였다. 선덕왕 사후에 실권을 장악하여 귀족회의에서 공식적인 왕위 계승자로 추대될 수 있었다. 그러나 김경신이 정변을 일으켜 즉위하지 못하였다. 왕위 계승전에서 실패한 후, 명주지방으로 물러나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하여 명주군왕(溟州郡王)이라고 칭해졌다. 강릉김씨의 시조로, 그의 후손은 반독립적인 지방 호족으로 성장하였으며, 고려에 귀의하여 큰 공을 세웠다.
백제의 제29대(재위: 599년~600년) 왕.
법왕 (法王)
백제의 제29대(재위: 599년~600년) 왕.
백제의 제3대(재위: 77년~128년) 왕.
기루왕 (己婁王)
백제의 제3대(재위: 77년~128년) 왕.
백제의 제6대(재위: 214년~234년) 왕.
구수왕 (仇首王)
백제의 제6대(재위: 214년~234년) 왕.
백제의 제2대(재위: 28년~77년) 왕.
다루왕 (多婁王)
백제의 제2대(재위: 28년~77년) 왕.
백제의 제19대(재위: 420년~427년) 왕.
구이신왕 (久爾辛王)
백제의 제19대(재위: 420년~427년) 왕.
김헌창의 난은 822년(헌덕왕 14) 3월에 신라 웅천주의 도독 김헌창이 일으킨 반란이다. 김헌창은 신라 조정에 항거해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고 국호를 ‘장안’, 연호를 ‘경운’이라 했다. 충청·전라·경상도 일부 지역이 반란 세력에게 장악된 전국 규모의 내란이었으나, 중앙에서 파견한 토벌군에게 웅진성이 함락되고 김헌창이 자결함으로써 오래지 않아 진압되었다. 배경에는 아버지 김주원이 무열왕계의 가장 유력한 왕족으로 선덕왕 사후 왕위에 추대되었지만 김경신의 정변으로 즉위하지 못한 사실이 있었다. 이후 무열왕계 귀족들은 왕위계승전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김헌창의 난 (金憲昌의 亂)
김헌창의 난은 822년(헌덕왕 14) 3월에 신라 웅천주의 도독 김헌창이 일으킨 반란이다. 김헌창은 신라 조정에 항거해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고 국호를 ‘장안’, 연호를 ‘경운’이라 했다. 충청·전라·경상도 일부 지역이 반란 세력에게 장악된 전국 규모의 내란이었으나, 중앙에서 파견한 토벌군에게 웅진성이 함락되고 김헌창이 자결함으로써 오래지 않아 진압되었다. 배경에는 아버지 김주원이 무열왕계의 가장 유력한 왕족으로 선덕왕 사후 왕위에 추대되었지만 김경신의 정변으로 즉위하지 못한 사실이 있었다. 이후 무열왕계 귀족들은 왕위계승전에서 완전히 밀려났다.
백제의 제23대(재위: 477년~479년) 왕.
삼근왕 (三斤王)
백제의 제23대(재위: 477년~479년) 왕.
백제의 제10대(재위: 298년~304년) 왕.
분서왕 (汾西王)
백제의 제10대(재위: 298년~304년) 왕.
삼국시대 백제의 미추홀에서 일어난 왕족의 건국 시조.
비류 (沸流)
삼국시대 백제의 미추홀에서 일어난 왕족의 건국 시조.
백제의 제11대(재위: 304년~344년) 왕.
비류왕 (比流王)
백제의 제11대(재위: 304년~344년) 왕.
백제의 제20대(재위: 427년~455년) 왕.
비유왕 (毗有王)
백제의 제20대(재위: 427년~455년) 왕.
백제의 제7대(재위: 234년) 왕.
사반왕 (沙伴王)
백제의 제7대(재위: 234년) 왕.
백제의 제17대(재위: 392년~405년) 왕.
아신왕 (阿莘王)
백제의 제17대(재위: 392년~405년) 왕.
삼국시대 신라의 대야성전투에 참전한 관리. 지방관.
죽죽 (竹竹)
삼국시대 신라의 대야성전투에 참전한 관리. 지방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