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박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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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반경차는 역법(曆法)에서 천체(天體) 위치를 지구 중심으로 계산한 값과 지반경을 더한 위치에서 계산한 값이 달라지는 현상이다. 역법에서 천체의 위치를 수학적으로 계산할 때에는 지구의 중심을 기준으로 계산하는데, 그 계산값은 지표면에서 해당 천체를 관측한 수치와 차이가 발생하게 되며, 이 차이를 지반경차라고 한다. 지반경차의 개념은 명말청초 시기에 서양의 천문학 지식이 선교사들에 의해 중국에 전해질 때 함께 알려졌다. 특히 1721년(경종 1)에 간행된 『역상고성(曆象考成)』에 지반경차를 구하는 자세한 계산 방법이 수록되었다.
지반경차 (地半徑差)
지반경차는 역법(曆法)에서 천체(天體) 위치를 지구 중심으로 계산한 값과 지반경을 더한 위치에서 계산한 값이 달라지는 현상이다. 역법에서 천체의 위치를 수학적으로 계산할 때에는 지구의 중심을 기준으로 계산하는데, 그 계산값은 지표면에서 해당 천체를 관측한 수치와 차이가 발생하게 되며, 이 차이를 지반경차라고 한다. 지반경차의 개념은 명말청초 시기에 서양의 천문학 지식이 선교사들에 의해 중국에 전해질 때 함께 알려졌다. 특히 1721년(경종 1)에 간행된 『역상고성(曆象考成)』에 지반경차를 구하는 자세한 계산 방법이 수록되었다.
청몽기차는 지표면 위에서 천체를 관측할 때 지구의 대기에 의해 태양 빛이나 별빛이 굴절되어서 발생하는 오차이다. 청몽기차의 개념은 서양의 천문학자인 티코 브라헤(Tycho Brache, 1546~1601)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명말청초(明末淸初) 시기에 예수회 선교사들에 의해 중국과 조선으로 전해졌다. 특히 1721년(경종 1)에 간행된 『역상고성(曆象考成)』에 비로소 청몽기차의 원리와 구체적인 계산의 방법이 수록되었는데, 조선의 학자들도 『역상고성』의 내용을 토대로 청몽기차의 개념을 이해하고 계산에 반영할 수가 있었다.
청몽기차 (淸蒙氣差)
청몽기차는 지표면 위에서 천체를 관측할 때 지구의 대기에 의해 태양 빛이나 별빛이 굴절되어서 발생하는 오차이다. 청몽기차의 개념은 서양의 천문학자인 티코 브라헤(Tycho Brache, 1546~1601)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명말청초(明末淸初) 시기에 예수회 선교사들에 의해 중국과 조선으로 전해졌다. 특히 1721년(경종 1)에 간행된 『역상고성(曆象考成)』에 비로소 청몽기차의 원리와 구체적인 계산의 방법이 수록되었는데, 조선의 학자들도 『역상고성』의 내용을 토대로 청몽기차의 개념을 이해하고 계산에 반영할 수가 있었다.
동승지차는 역법에서 황도와 적도를 이용하여 계산을 수행할 때에 발생하는 차잇값이다. 천구(天球)상에서 황도는 적도에 대해서 23.5°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천체의 황도 좌표계상의 도수는 적도 좌표계의 도수와 달라지게 되는데 이러한 차이를 동승지차라고 한다. 동승지차의 개념은 명말 청초 시기에 서양의 천문학 지식이 예수회 선교사들에 의해 중국에 전해질 때 함께 알려졌다. 특히 동승지차를 구하는 방법은 1721년(경종 1)에 간행된 『역상고성(曆象考成)』에서 황적거위(黃赤距緯)의 항목으로 자세한 계산의 방법이 수록되었다.
동승지차 (同升之差)
동승지차는 역법에서 황도와 적도를 이용하여 계산을 수행할 때에 발생하는 차잇값이다. 천구(天球)상에서 황도는 적도에 대해서 23.5°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천체의 황도 좌표계상의 도수는 적도 좌표계의 도수와 달라지게 되는데 이러한 차이를 동승지차라고 한다. 동승지차의 개념은 명말 청초 시기에 서양의 천문학 지식이 예수회 선교사들에 의해 중국에 전해질 때 함께 알려졌다. 특히 동승지차를 구하는 방법은 1721년(경종 1)에 간행된 『역상고성(曆象考成)』에서 황적거위(黃赤距緯)의 항목으로 자세한 계산의 방법이 수록되었다.
원회운세설은 우주가 12만 9,600년의 주기로 개벽(開闢)과 만물(萬物)의 종말을 거듭하는 것으로 상정하는 이론이다. 이 이론은 북송 시대의 유학자 소옹(邵雍, 1011~1077)의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에 실려 있다. 북송대 이래 성리학을 수용하여 학문의 근간으로 삼았던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우주론적 사유와 상수학적 논의를 수행할 때에 중요하게 취급하였다.
원회운세설 (元會運世說)
원회운세설은 우주가 12만 9,600년의 주기로 개벽(開闢)과 만물(萬物)의 종말을 거듭하는 것으로 상정하는 이론이다. 이 이론은 북송 시대의 유학자 소옹(邵雍, 1011~1077)의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에 실려 있다. 북송대 이래 성리학을 수용하여 학문의 근간으로 삼았던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우주론적 사유와 상수학적 논의를 수행할 때에 중요하게 취급하였다.
선천방원도는 주역(周易)의 64괘를 바둑판과 같이 8괘와 8괘의 조합으로 정사각형의 형태로 배열한 방도(方圖)를 가운데에 두고, 그 주위에 다시 64괘를 원형으로 배열한 원도(圓圖)를 함께 그려 놓은 도상(圖像)이다. 다른 말로 선천육십사괘방원도(先天六十四卦方圓圖)라고도 한다. 선천방원도는 북송 시대의 유학자 소옹(邵雍, 1011~1077)의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에 실려 있는 선천도(先天圖)들 중의 하나이다. 조선 후기 유학자 서명응은 소옹의 선천방원도를 자신의 방식으로 새롭게 변형하여 상수학적 논의를 전개하였다.
선천방원도 (先天方圓圖)
선천방원도는 주역(周易)의 64괘를 바둑판과 같이 8괘와 8괘의 조합으로 정사각형의 형태로 배열한 방도(方圖)를 가운데에 두고, 그 주위에 다시 64괘를 원형으로 배열한 원도(圓圖)를 함께 그려 놓은 도상(圖像)이다. 다른 말로 선천육십사괘방원도(先天六十四卦方圓圖)라고도 한다. 선천방원도는 북송 시대의 유학자 소옹(邵雍, 1011~1077)의 『황극경세서(皇極經世書)』에 실려 있는 선천도(先天圖)들 중의 하나이다. 조선 후기 유학자 서명응은 소옹의 선천방원도를 자신의 방식으로 새롭게 변형하여 상수학적 논의를 전개하였다.
서학중원설은 16세기 말 이후 예수회 선교사들에 의해 중국으로 전해지기 시작한 서양의 과학 지식이 고대 중국에서 시작되어 서양으로 전해져 발전되었다는 학설이다. 서학중원설은 청나라의 학자 매문정(梅文鼎)에 의해 체계적으로 주창되기 시작하였으며, 이후 중국 지식인들 사이에서 중화사상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이용되었다. 서학중원설은 조선으로도 전해져, 대표적으로 서명응에 의해 서양 과학을 수용하는 논리로 활용되었다.
서학중원설 (西學中原說)
서학중원설은 16세기 말 이후 예수회 선교사들에 의해 중국으로 전해지기 시작한 서양의 과학 지식이 고대 중국에서 시작되어 서양으로 전해져 발전되었다는 학설이다. 서학중원설은 청나라의 학자 매문정(梅文鼎)에 의해 체계적으로 주창되기 시작하였으며, 이후 중국 지식인들 사이에서 중화사상을 강화하는 방법으로 이용되었다. 서학중원설은 조선으로도 전해져, 대표적으로 서명응에 의해 서양 과학을 수용하는 논리로 활용되었다.
연신방위지도는 조선시대 역서인 일과력(日課曆)과 내용삼력(內用三曆)의 두 번째 장에 수록된 도상(圖像)이다. 그해 길흉신들이 위치한 방위들을 표시한 그림이다. 연신방위도의 가운데 부분에는 이십사방위가 표시되어 있으며, 이를 기준으로 각종 길흉의 신들의 방위가 표시되어 있다. 연신방위도에 표시된 신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신은 태세(太歲)와 세덕(歲德), 주서(奏書), 박사(博士), 역사(力士), 잠실(蠶室)이다. 조선시대에는 연신방위도에 표시된 신들의 위치를 보고서 특정한 행사나 행위에 대한 길흉을 미리 점치고 일상생활에 활용하였다.
연신방위지도 (年神方位之圖)
연신방위지도는 조선시대 역서인 일과력(日課曆)과 내용삼력(內用三曆)의 두 번째 장에 수록된 도상(圖像)이다. 그해 길흉신들이 위치한 방위들을 표시한 그림이다. 연신방위도의 가운데 부분에는 이십사방위가 표시되어 있으며, 이를 기준으로 각종 길흉의 신들의 방위가 표시되어 있다. 연신방위도에 표시된 신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신은 태세(太歲)와 세덕(歲德), 주서(奏書), 박사(博士), 역사(力士), 잠실(蠶室)이다. 조선시대에는 연신방위도에 표시된 신들의 위치를 보고서 특정한 행사나 행위에 대한 길흉을 미리 점치고 일상생활에 활용하였다.
삼력청은 조선 후기 관상감에서 역서의 편찬을 담당하는 관원들인 삼력관(三曆官)들의 조직이다. 삼력관은 음양과(陰陽科)를 통과하여 관상감에서 천문학 분과의 업무를 충실하게 수행한 관원들 중에서 취재를 통하여 선발되었으며, 그 정원은 시대에 따라 30인, 35인으로 한정되었다. 삼력관들로 구성된 삼력청은 조선 후기에 이르러 관상감의 핵심 조직으로서 관상감 운영의 실질적인 주체가 되었다. 삼력청은 삼력관들이 근무하는 건물을 가리키기도 하며, 삼력청 건물은 1731년(영조 7)에 관상감 본청 건물 뒤에 건립되었다.
삼력청 (三曆廳)
삼력청은 조선 후기 관상감에서 역서의 편찬을 담당하는 관원들인 삼력관(三曆官)들의 조직이다. 삼력관은 음양과(陰陽科)를 통과하여 관상감에서 천문학 분과의 업무를 충실하게 수행한 관원들 중에서 취재를 통하여 선발되었으며, 그 정원은 시대에 따라 30인, 35인으로 한정되었다. 삼력관들로 구성된 삼력청은 조선 후기에 이르러 관상감의 핵심 조직으로서 관상감 운영의 실질적인 주체가 되었다. 삼력청은 삼력관들이 근무하는 건물을 가리키기도 하며, 삼력청 건물은 1731년(영조 7)에 관상감 본청 건물 뒤에 건립되었다.
삼력수술관은 조선시대 천문관서인 관상감(觀象監)에서 일반 백성들과 왕실에서 사용하는 역서를 편찬하기 위해 매년 설치하던 직임(職任)이다. 오직 삼력관들 중에서만 선발될 수 있었다. 관상감에서는 매년 10월에 이듬해의 일반 민들이 사용하는 역서인 일과(日課)와 왕실에서만 사용하는 역서인 내용삼력(內用三曆)의 편찬을 담당했던 관원들을 선발하였다. 삼력수술관들의 명단은 그해의 일과와 내용삼력의 맨 마지막 페이지 하단에 수술관(修述官)이라는 호칭으로 나열되었다.
삼력수술관 (三曆修述官)
삼력수술관은 조선시대 천문관서인 관상감(觀象監)에서 일반 백성들과 왕실에서 사용하는 역서를 편찬하기 위해 매년 설치하던 직임(職任)이다. 오직 삼력관들 중에서만 선발될 수 있었다. 관상감에서는 매년 10월에 이듬해의 일반 민들이 사용하는 역서인 일과(日課)와 왕실에서만 사용하는 역서인 내용삼력(內用三曆)의 편찬을 담당했던 관원들을 선발하였다. 삼력수술관들의 명단은 그해의 일과와 내용삼력의 맨 마지막 페이지 하단에 수술관(修述官)이라는 호칭으로 나열되었다.
칠정추보관은 조선시대 천문관서인 관상감(觀象監)에서 천체들의 운행과 위치를 미리 예측해 놓은 천문력(天文曆, ephemeris)인 칠정력(七政曆)을 편찬하기 위해 매년 설치하던 직임(職任)이다. 칠정추보관은 삼력수술관과 마찬가지로 오직 삼력관들 중에서만 선발이 될 수 있었다. 관상감에서 매년 10월에 이듬해에 사용할 칠정력의 편찬을 담당할 관원들을 미리 선발하였다. 칠정추보관들의 명단은 그해 칠정력의 맨 마지막 페이지 하단에 추보관(推步官)이란 호칭으로 나열되었다.
칠정추보관 (七政推步官)
칠정추보관은 조선시대 천문관서인 관상감(觀象監)에서 천체들의 운행과 위치를 미리 예측해 놓은 천문력(天文曆, ephemeris)인 칠정력(七政曆)을 편찬하기 위해 매년 설치하던 직임(職任)이다. 칠정추보관은 삼력수술관과 마찬가지로 오직 삼력관들 중에서만 선발이 될 수 있었다. 관상감에서 매년 10월에 이듬해에 사용할 칠정력의 편찬을 담당할 관원들을 미리 선발하였다. 칠정추보관들의 명단은 그해 칠정력의 맨 마지막 페이지 하단에 추보관(推步官)이란 호칭으로 나열되었다.
대통추보관은 조선 후기에 『대통칠정력(大統七政曆)』의 간행을 담당하였던 관원이다. 조선 후기에 대통력(大統曆)의 방법, 정확히 말하자면 『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의 방법으로 칠정(七政), 즉 태양과 달, 오행성(五行星,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의 위치 정보를 계산하여 『칠정력(七政曆)』의 간행을 담당하는 관원을 말한다. 대통추보관의 직책은 1791년(정조 15)에 철폐되었는데, 그 계산과 편찬의 업무는 삼력관(三曆官)의 하위에 설치된 수술관(修述官)으로 하여금 담당하게 하였다.
대통추보관 (大統推步官)
대통추보관은 조선 후기에 『대통칠정력(大統七政曆)』의 간행을 담당하였던 관원이다. 조선 후기에 대통력(大統曆)의 방법, 정확히 말하자면 『칠정산내편(七政算內篇)』의 방법으로 칠정(七政), 즉 태양과 달, 오행성(五行星,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의 위치 정보를 계산하여 『칠정력(七政曆)』의 간행을 담당하는 관원을 말한다. 대통추보관의 직책은 1791년(정조 15)에 철폐되었는데, 그 계산과 편찬의 업무는 삼력관(三曆官)의 하위에 설치된 수술관(修述官)으로 하여금 담당하게 하였다.
일과력은 조선시대 관상감에서 간행한 여러 가지 역서(曆書)들 중에서 왕실과 조정, 그리고 민간에까지 배포되어서 널리 사용되었던 상용력이다. 일과력은 평년의 경우 15장, 윤년의 경우 16장으로 구성되었다. 일과력은 가장 많이 인쇄되었던 역서인데, 18세기 초부터 인쇄 부수가 급증하여 18세기 말에는 38만 부에까지 이르렀다.
일과력 (日課曆)
일과력은 조선시대 관상감에서 간행한 여러 가지 역서(曆書)들 중에서 왕실과 조정, 그리고 민간에까지 배포되어서 널리 사용되었던 상용력이다. 일과력은 평년의 경우 15장, 윤년의 경우 16장으로 구성되었다. 일과력은 가장 많이 인쇄되었던 역서인데, 18세기 초부터 인쇄 부수가 급증하여 18세기 말에는 38만 부에까지 이르렀다.
월력장은 조선시대에 역서의 첫 번재 장(張)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그해 역서의 가장 기본적인 정보를 한 장(2페이지)에 요약, 수록하여 한 해의 역일(曆日) 정보를 한눈에 일람할 수 있게 한 장을 말한다. 월력장에는 그해의 역일 정보와 24절기의 날짜, 시각에 대한 정보만이 수록되었다. 단력장(單曆張)이라고도 지칭하였다.
월력장 (月曆張)
월력장은 조선시대에 역서의 첫 번재 장(張)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그해 역서의 가장 기본적인 정보를 한 장(2페이지)에 요약, 수록하여 한 해의 역일(曆日) 정보를 한눈에 일람할 수 있게 한 장을 말한다. 월력장에는 그해의 역일 정보와 24절기의 날짜, 시각에 대한 정보만이 수록되었다. 단력장(單曆張)이라고도 지칭하였다.
보만재총서는 1783년(정조 7)에 조선 후기 유학자 서명응이 지은 저술들을 모아서 편찬한 총서이다. 이 총서는 천문학과 지리학 등을 포함하는 자연 과학의 지식들을 방대한 분량으로 수록하고 있다. 『보만재총서』는 모두 13종의 저술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 분량은 60권 31책에 달한다. 『보만재총서』에 수록된 13종의 저술들을 앞에서부터 나열하면 『선천사연』, 『상서일지』, 『시악묘계』, 『대학직지』, 『중용경위』, 『주사』, 『위사』, 『본사』, 『비례준』, 『선구제』, 『원음약』, 『참동고』, 『고사십이집』이다.
보만재총서 (保晩齋叢書)
보만재총서는 1783년(정조 7)에 조선 후기 유학자 서명응이 지은 저술들을 모아서 편찬한 총서이다. 이 총서는 천문학과 지리학 등을 포함하는 자연 과학의 지식들을 방대한 분량으로 수록하고 있다. 『보만재총서』는 모두 13종의 저술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체 분량은 60권 31책에 달한다. 『보만재총서』에 수록된 13종의 저술들을 앞에서부터 나열하면 『선천사연』, 『상서일지』, 『시악묘계』, 『대학직지』, 『중용경위』, 『주사』, 『위사』, 『본사』, 『비례준』, 『선구제』, 『원음약』, 『참동고』, 『고사십이집』이다.
선구제는 조선 후기 유학자 서명응이 지은 『보만재총서』에 포함된 천문학 저술이다. 이 책에서 그는 역학과 천문학 지식을 통합하여 새로운 상수학적(象數學的) 논의를 전개하였다. 서명응은 고대 성인들이 남긴 선천역(先天易)과 구고법(句股法)의 내용을 파악해내고 이를 통해서 천문학과 역학을 포함하여 성인들의 지식을 복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관념을 토대로 서명웅은 선구제에서 복희의 선천역에 따라서 구고(勾股)의 수법(數法)과 칠정(七政), 즉 태양과 달, 오행성의 운행에 대한 계산법을 바로잡고자 하는 논의를 담았다.
선구제 (先句齊)
선구제는 조선 후기 유학자 서명응이 지은 『보만재총서』에 포함된 천문학 저술이다. 이 책에서 그는 역학과 천문학 지식을 통합하여 새로운 상수학적(象數學的) 논의를 전개하였다. 서명응은 고대 성인들이 남긴 선천역(先天易)과 구고법(句股法)의 내용을 파악해내고 이를 통해서 천문학과 역학을 포함하여 성인들의 지식을 복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관념을 토대로 서명웅은 선구제에서 복희의 선천역에 따라서 구고(勾股)의 수법(數法)과 칠정(七政), 즉 태양과 달, 오행성의 운행에 대한 계산법을 바로잡고자 하는 논의를 담았다.
선천사연은 조선 후기 유학자 서명응이 지은 『보만재총서』에 첫 번째로 수록되어 있는 역학(易學), 상수학(象數學) 관련 저술이다. 이 책에서 그는 구고(句股)의 수법(數法)을 토대로 고대 성인의 선천역(先天易)의 내용과 방법론을 복원하고자 하는 상수학적(象數學的) 논의를 담았다. 『선천사연』은 권수(卷首)에 수록된 서명응의 서문(序文)과 상하 2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선천사연 (先天四演)
선천사연은 조선 후기 유학자 서명응이 지은 『보만재총서』에 첫 번째로 수록되어 있는 역학(易學), 상수학(象數學) 관련 저술이다. 이 책에서 그는 구고(句股)의 수법(數法)을 토대로 고대 성인의 선천역(先天易)의 내용과 방법론을 복원하고자 하는 상수학적(象數學的) 논의를 담았다. 『선천사연』은 권수(卷首)에 수록된 서명응의 서문(序文)과 상하 2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천문학은 조선시대 과학관서인 관상감(觀象監)의 세 가지 분과(천문학, 지리학, 명과학) 중 천문(天文)에 대한 관측과 역산(曆算)을 통한 역서(曆書) 편찬 업무를 담당한 분과이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천문학 분과의 삼력관(三曆官)들과 그들의 집합체인 삼력청(三曆廳)이 천문학 분과뿐만 아니라 관상감 전체의 운영을 실질적으로 책임지고 지휘하게 되었다.
천문학(관상감) (天文學(觀象監))
천문학은 조선시대 과학관서인 관상감(觀象監)의 세 가지 분과(천문학, 지리학, 명과학) 중 천문(天文)에 대한 관측과 역산(曆算)을 통한 역서(曆書) 편찬 업무를 담당한 분과이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천문학 분과의 삼력관(三曆官)들과 그들의 집합체인 삼력청(三曆廳)이 천문학 분과뿐만 아니라 관상감 전체의 운영을 실질적으로 책임지고 지휘하게 되었다.
명과학은 조선시대 과학관서인 관상감(觀象監)의 세 가지 분과(천문학, 지리학, 명과학) 중 택일(擇日), 택시(擇時) 업무를 담당한 분과이다. 명과학의 관원은 다른 관상감의 관원들과 마찬가지로 음양과(陰陽科) 과거를 통해 선발되었는데, 명과학에 배정된 선발인원은 식년시와 증광시의 초시에서는 4명, 복시(최종시험)에서는 2명, 대증광시의 초시에서는 8명, 복시에서는 4명이었다. 1791년(정조 15) 신해절목(辛亥節目)에 반영된 개혁초치로 명과학 분과에 대한 인적, 물적 지원이 강화되었다.
명과학(관상감) (命課學(觀象監))
명과학은 조선시대 과학관서인 관상감(觀象監)의 세 가지 분과(천문학, 지리학, 명과학) 중 택일(擇日), 택시(擇時) 업무를 담당한 분과이다. 명과학의 관원은 다른 관상감의 관원들과 마찬가지로 음양과(陰陽科) 과거를 통해 선발되었는데, 명과학에 배정된 선발인원은 식년시와 증광시의 초시에서는 4명, 복시(최종시험)에서는 2명, 대증광시의 초시에서는 8명, 복시에서는 4명이었다. 1791년(정조 15) 신해절목(辛亥節目)에 반영된 개혁초치로 명과학 분과에 대한 인적, 물적 지원이 강화되었다.
칠정력은 조선시대에 매년 간행된 역서들 중에서 칠정(七政), 즉 태양과 달, 오행성(五行星,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의 위치 정보를 담고 있는 천체력이다. 칠정력은 일반적으로 관상감의 천문학자들이 행성의 위치와 일월식(日月蝕)의 시점에 대한 정보를 참고하고자 역서이었기에 일반인들에게는 배포되지 않았다. 그러한 이유로 칠정력은 금속활자로 2부만 인쇄되었으며, 1부는 국왕에게 진상되고 나머지 1부는 관상감에 비치해 두어서 관상감의 천문학 분과 관원들이 참고하고 활용하게 만들었다.
칠정력 (七政曆)
칠정력은 조선시대에 매년 간행된 역서들 중에서 칠정(七政), 즉 태양과 달, 오행성(五行星,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의 위치 정보를 담고 있는 천체력이다. 칠정력은 일반적으로 관상감의 천문학자들이 행성의 위치와 일월식(日月蝕)의 시점에 대한 정보를 참고하고자 역서이었기에 일반인들에게는 배포되지 않았다. 그러한 이유로 칠정력은 금속활자로 2부만 인쇄되었으며, 1부는 국왕에게 진상되고 나머지 1부는 관상감에 비치해 두어서 관상감의 천문학 분과 관원들이 참고하고 활용하게 만들었다.
시용통서는 1744년(영조 20) 이후 조선의 관상감에서 음양과(陰陽科) 과거로 명과학(命課學) 관원을 뽑을 때 시강서(試講書)의 하나로 사용한 책이다. 본래 이 책은 1607년(선조 40) 명(明)나라 학자 유조관(劉朝琯)이 만력제(萬曆帝)의 명으로 편찬한 택일서(擇日書)였다. 1797년(정조 21) 이후 음양과 시험에서 이 책은 1795년(정조 19) 조선에서 편찬된 『협길통의(協吉通義)』로 대체되었다.
시용통서 (時用通書)
시용통서는 1744년(영조 20) 이후 조선의 관상감에서 음양과(陰陽科) 과거로 명과학(命課學) 관원을 뽑을 때 시강서(試講書)의 하나로 사용한 책이다. 본래 이 책은 1607년(선조 40) 명(明)나라 학자 유조관(劉朝琯)이 만력제(萬曆帝)의 명으로 편찬한 택일서(擇日書)였다. 1797년(정조 21) 이후 음양과 시험에서 이 책은 1795년(정조 19) 조선에서 편찬된 『협길통의(協吉通義)』로 대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