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박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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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매허증신사는 일본 오사카부 오사카시 히가시나리구에 있는 한반도 계통의 신을 모시는 신사이다. 주신(主神)은 시타테루히메[下照比賣命] 또는 아카루히메[阿加流比賣]이며, 주신의 이름을 따서 시타테루히메사[下照比賣命社]라고도 한다. 고대 한반도(특히 신라)에서 일본 열도로 이주해 간 집단의 선조 설화를 간직한 곳으로 유서가 깊은 신사 가운데 하나이다.
비매허증신사 (比賣許曾神社)
비매허증신사는 일본 오사카부 오사카시 히가시나리구에 있는 한반도 계통의 신을 모시는 신사이다. 주신(主神)은 시타테루히메[下照比賣命] 또는 아카루히메[阿加流比賣]이며, 주신의 이름을 따서 시타테루히메사[下照比賣命社]라고도 한다. 고대 한반도(특히 신라)에서 일본 열도로 이주해 간 집단의 선조 설화를 간직한 곳으로 유서가 깊은 신사 가운데 하나이다.
서교사는 일본 시가현 오츠시 사카모토에 있는 쇼토쿠태자가 618년에 고구려 승려 혜자를 위해 창건한 사찰이다. 창건 시기는 10세기 대로 보기도 한다. 천태종(天台宗) 진성파(眞盛派)의 본산(本山)이며, 정식 명칭은 가이코산 겐호쇼 사이쿄지[戒光山 兼法勝 西敎寺]이다. 15세기에 들어와 신세이[眞盛]가 계율(戒律)과 염불(念佛)을 중시하며 천태종의 근본도량으로서 절의 중흥(中興)을 이끌었다.
일본 서교사 (日本 西敎寺)
서교사는 일본 시가현 오츠시 사카모토에 있는 쇼토쿠태자가 618년에 고구려 승려 혜자를 위해 창건한 사찰이다. 창건 시기는 10세기 대로 보기도 한다. 천태종(天台宗) 진성파(眞盛派)의 본산(本山)이며, 정식 명칭은 가이코산 겐호쇼 사이쿄지[戒光山 兼法勝 西敎寺]이다. 15세기에 들어와 신세이[眞盛]가 계율(戒律)과 염불(念佛)을 중시하며 천태종의 근본도량으로서 절의 중흥(中興)을 이끌었다.
수간사(水間寺)는 일본 오사카부[大阪府] 가이즈카시[貝塚市] 미즈마[水間]에 있는, 백제계 후손인 교기[行基]가 창건한 사찰이다. 일본 쇼무[聖武] 천황의 병 쾌유를 빌기 위해 관음보살상을 본존으로 안치하였다. 천태종에 속해 있으며 류고쿠산[龍谷山]의 간논인[觀音院]이라고도 한다. 1190년에 칠당가람을 갖추었으며, 150여 개의 당우를 세울 정도로 규모가 크게 확장되었다. 현재 고대 일본의 관음신앙의 기원과 형성 그리고 관련 사찰의 구조 및 특징을 이해하는 데 많은 자료가 남아 있다.
일본 수간사 (日本 水間寺)
수간사(水間寺)는 일본 오사카부[大阪府] 가이즈카시[貝塚市] 미즈마[水間]에 있는, 백제계 후손인 교기[行基]가 창건한 사찰이다. 일본 쇼무[聖武] 천황의 병 쾌유를 빌기 위해 관음보살상을 본존으로 안치하였다. 천태종에 속해 있으며 류고쿠산[龍谷山]의 간논인[觀音院]이라고도 한다. 1190년에 칠당가람을 갖추었으며, 150여 개의 당우를 세울 정도로 규모가 크게 확장되었다. 현재 고대 일본의 관음신앙의 기원과 형성 그리고 관련 사찰의 구조 및 특징을 이해하는 데 많은 자료가 남아 있다.
승락사는 8세기 중반에 일본 사이타마현[琦玉縣] 히다카시[日高市] 니호리[新堀]에 있는 고구려계 승려 쇼라쿠[勝樂]가 고려왕 약광(若光)을 위해 창건한 사찰이다. 진언종에 속해 있으며, 정식 명칭은 고려산 쇼덴인 쇼라쿠지[高麗山聖天院勝樂寺]이다. 고구려의 왕족이었던 약광(若光)이 죽자,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쇼라쿠가 약광의 수호불이었던 성천상(聖天像)을 본존으로 모신 데서 비롯된다. 그의 제자이며 약광의 아들인 성운(聖雲)이 완성하였다. 1345년에 진언종으로 개종하여 중흥을 맞이했고, 이후 54개의 말사를 보유하게 되었다.
일본 승락사 (日本 勝樂寺)
승락사는 8세기 중반에 일본 사이타마현[琦玉縣] 히다카시[日高市] 니호리[新堀]에 있는 고구려계 승려 쇼라쿠[勝樂]가 고려왕 약광(若光)을 위해 창건한 사찰이다. 진언종에 속해 있으며, 정식 명칭은 고려산 쇼덴인 쇼라쿠지[高麗山聖天院勝樂寺]이다. 고구려의 왕족이었던 약광(若光)이 죽자,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쇼라쿠가 약광의 수호불이었던 성천상(聖天像)을 본존으로 모신 데서 비롯된다. 그의 제자이며 약광의 아들인 성운(聖雲)이 완성하였다. 1345년에 진언종으로 개종하여 중흥을 맞이했고, 이후 54개의 말사를 보유하게 되었다.
신라 선신당은 일본 시가현[滋賀縣] 오츠시[大津市] 온조지초[園城寺町]의 미이데라[三井寺] 경내에 있는 사당(신사)이다. 북원(北院) 가람의 중심 건물로서 신라명신(新羅明神)을 모시고 있다. 신라명신은 미이데라를 부흥시킨 지증대사(智証大師) 엔친[圓珍]의 당나라 유학길을 지켜준 수호신으로 유명하다. 창건 시기는 명확하지 않지만, 초기에는 신라명신이 봉안되어 신라사(新羅社)라고 불렀으며, 1347년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기부를 받아 재건되었다. 메이지[明治]시대에 들어와 신라젠신도로 개명되었다.
신라 선신당 (新羅 善神堂)
신라 선신당은 일본 시가현[滋賀縣] 오츠시[大津市] 온조지초[園城寺町]의 미이데라[三井寺] 경내에 있는 사당(신사)이다. 북원(北院) 가람의 중심 건물로서 신라명신(新羅明神)을 모시고 있다. 신라명신은 미이데라를 부흥시킨 지증대사(智証大師) 엔친[圓珍]의 당나라 유학길을 지켜준 수호신으로 유명하다. 창건 시기는 명확하지 않지만, 초기에는 신라명신이 봉안되어 신라사(新羅社)라고 불렀으며, 1347년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기부를 받아 재건되었다. 메이지[明治]시대에 들어와 신라젠신도로 개명되었다.
신라 신사는 1678년 일본 아오모리현[靑森縣] 하치노헤시[八戶市] 누카즈카[糠塚] 초자산[長者山]에 창건된 신라의 제신(祭神) 관련 신사이다. 1678년 하치노헤의 영주(領主)였던 미나베나오마사[南部直政]가 그의 먼 조상인 시라기사부로요시미츠[新羅三郎義光]를 영내(領內)의 수호신으로서 초자산[長者山] 정상에 모신 것에서 비롯된다. 초기에는 삼사당(三社堂) 또는 허공장당(虛空藏堂)이라고 부르다가 1868년 신라 진사로 개칭하면서 향사(鄕社)로 삼았다. 1976년부터 초자산 신라 진자[長者山新羅神社]라는 정식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신라 신사 (新羅 神社)
신라 신사는 1678년 일본 아오모리현[靑森縣] 하치노헤시[八戶市] 누카즈카[糠塚] 초자산[長者山]에 창건된 신라의 제신(祭神) 관련 신사이다. 1678년 하치노헤의 영주(領主)였던 미나베나오마사[南部直政]가 그의 먼 조상인 시라기사부로요시미츠[新羅三郎義光]를 영내(領內)의 수호신으로서 초자산[長者山] 정상에 모신 것에서 비롯된다. 초기에는 삼사당(三社堂) 또는 허공장당(虛空藏堂)이라고 부르다가 1868년 신라 진사로 개칭하면서 향사(鄕社)로 삼았다. 1976년부터 초자산 신라 진자[長者山新羅神社]라는 정식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심대사는 8세기 초 한반도계 이주민들이 창건한 일본 도쿄도[東京都] 조후시[調布市] 진다이지모토마치[深大寺元町]에 있는 사찰이다. 정식 명칭은 후각산 쇼라쿠인 진다이지[浮岳山昌樂院深大寺]이다. 본존은 보관아미타여래상이다. 「연기(緣起)」에 따르면 733년 만공상인(滿功上人)이 심사대왕(深沙大王)을 모시고 법상종 사원으로 창건하였지만, 859년 천태종으로 개종되었다. 이후 후각산 진다이지라는 칙액(勅額)을 받고 진호국가(鎮護國家)의 도량이 되었다고 한다.
일본 심대사 (日本 深大寺)
심대사는 8세기 초 한반도계 이주민들이 창건한 일본 도쿄도[東京都] 조후시[調布市] 진다이지모토마치[深大寺元町]에 있는 사찰이다. 정식 명칭은 후각산 쇼라쿠인 진다이지[浮岳山昌樂院深大寺]이다. 본존은 보관아미타여래상이다. 「연기(緣起)」에 따르면 733년 만공상인(滿功上人)이 심사대왕(深沙大王)을 모시고 법상종 사원으로 창건하였지만, 859년 천태종으로 개종되었다. 이후 후각산 진다이지라는 칙액(勅額)을 받고 진호국가(鎮護國家)의 도량이 되었다고 한다.
야중사는 7세기 중반에, 백제계 씨족이 창건한 일본 오사카부[大阪府] 하비키노시[羽曳野市] 노노우에[野野上]에 있는 사찰이다. 백제계 씨족은 후네씨[船氏]이며, 백제 근초고왕의 후손인 왕진이(王辰爾)를 시조로 모시고 있다. 그 후손들은 고대 일본의 문서 행정의 기틀을 마련하고, 하쿠호[白鳳]·나라[奈良]시대 불교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야중사의 창건 당시 건물은 중세에 대부분 소실되었지만, 근세에 이르러 진언율종의 계율도장으로서 재건되어 부흥을 이루었다.
일본 야중사 (日本 野中寺)
야중사는 7세기 중반에, 백제계 씨족이 창건한 일본 오사카부[大阪府] 하비키노시[羽曳野市] 노노우에[野野上]에 있는 사찰이다. 백제계 씨족은 후네씨[船氏]이며, 백제 근초고왕의 후손인 왕진이(王辰爾)를 시조로 모시고 있다. 그 후손들은 고대 일본의 문서 행정의 기틀을 마련하고, 하쿠호[白鳳]·나라[奈良]시대 불교계에 큰 족적을 남겼다. 야중사의 창건 당시 건물은 중세에 대부분 소실되었지만, 근세에 이르러 진언율종의 계율도장으로서 재건되어 부흥을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