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박종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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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장은 토지 주인의 허락을 받지 않고 금장지(禁葬地) 등에 임의로 묘를 쓰는 행위를 말한다. 선조나 부모 묘를 길지에 써서 조상의 덕이 당대뿐만 아니라 자손 대대로 번영하기를 바라는 풍수지리설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늑장은 이미 고려시대에 나타났으며, 조선 후기까지 사굴과 산송 등으로 사회 문제로 확대되었다. 조선시대 왕실에서도 늑장은 주요 관심 대상이었다.
늑장 (勒葬)
늑장은 토지 주인의 허락을 받지 않고 금장지(禁葬地) 등에 임의로 묘를 쓰는 행위를 말한다. 선조나 부모 묘를 길지에 써서 조상의 덕이 당대뿐만 아니라 자손 대대로 번영하기를 바라는 풍수지리설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늑장은 이미 고려시대에 나타났으며, 조선 후기까지 사굴과 산송 등으로 사회 문제로 확대되었다. 조선시대 왕실에서도 늑장은 주요 관심 대상이었다.
상여는 장례의 발인(發靷) 절차에 따라서 상여꾼들이 망자의 시신을 장지(葬地)까지 운구하는 상구로, 어깨에 메고 망자를 운구하는 여러 상구를 대표하는 용어이다. 고대국가 상여는 관의 사용과 죽은 자를 보낸 기술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각 시대별로 다양한 종류의 상여가 사용되었다.
상여 (喪輿)
상여는 장례의 발인(發靷) 절차에 따라서 상여꾼들이 망자의 시신을 장지(葬地)까지 운구하는 상구로, 어깨에 메고 망자를 운구하는 여러 상구를 대표하는 용어이다. 고대국가 상여는 관의 사용과 죽은 자를 보낸 기술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각 시대별로 다양한 종류의 상여가 사용되었다.
요여는 주로 장례에서 유의미하고 상징적인 기물들을 실어서 장지까지 운반하던 용구이다. 왕실의 장례와 가례, 민간의 장례에서 활용한 운반 용구였다. 왕실용 요여는 왕과 관련하여 권위를 상징하면서 유의미한 기물들을, 민간용 요여는 혼백 등을 싣고서 장지까지 운반하였다. 민간에서는 망자의 영정과 교의 등으로 대체하면서 요여를 대부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요여 (腰輿)
요여는 주로 장례에서 유의미하고 상징적인 기물들을 실어서 장지까지 운반하던 용구이다. 왕실의 장례와 가례, 민간의 장례에서 활용한 운반 용구였다. 왕실용 요여는 왕과 관련하여 권위를 상징하면서 유의미한 기물들을, 민간용 요여는 혼백 등을 싣고서 장지까지 운반하였다. 민간에서는 망자의 영정과 교의 등으로 대체하면서 요여를 대부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유월장은 중국에서 비롯되었으며, 죽은 달을 넘겨서 다음 달에 치르는 유교식 장례이다. 조선시대에 장례 기일은 엄격하게 규정되어 있었다. 사대부가는 장례를 죽은 지 석 달 만에 지내는 삼월장(三月葬)과 유월장으로 치렀다. 예학자들은 유월과 관련해서 여러 의견을 내놓기도 하였다. 유월장은 장기(葬期)의 단기화 등 사회적 여건의 변화와 규칙 제정으로 자연스럽게 사라졌지만, 최근에 유림(儒林) 장례에서 치러지기도 하였다.
유월장 (踰月葬)
유월장은 중국에서 비롯되었으며, 죽은 달을 넘겨서 다음 달에 치르는 유교식 장례이다. 조선시대에 장례 기일은 엄격하게 규정되어 있었다. 사대부가는 장례를 죽은 지 석 달 만에 지내는 삼월장(三月葬)과 유월장으로 치렀다. 예학자들은 유월과 관련해서 여러 의견을 내놓기도 하였다. 유월장은 장기(葬期)의 단기화 등 사회적 여건의 변화와 규칙 제정으로 자연스럽게 사라졌지만, 최근에 유림(儒林) 장례에서 치러지기도 하였다.
아들이 없는 집에서 자신의 대를 잇기 위한 목적으로 동성동본(同姓同本) 구성원 중에 항렬이 맞는 남자를 자식으로 맞아들이는 제도.
양자 (養子)
아들이 없는 집에서 자신의 대를 잇기 위한 목적으로 동성동본(同姓同本) 구성원 중에 항렬이 맞는 남자를 자식으로 맞아들이는 제도.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에 있는 조선후기 정준섭이 제작한 살을 저장해 두던 용구. 뒤주.
장화리 쌀뒤주 (長華里 쌀뒤주)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에 있는 조선후기 정준섭이 제작한 살을 저장해 두던 용구. 뒤주.
조선전기 제7대 왕 세조가 마곡사에 갈 때 탔던 가마.
세조대왕연 (世祖大王輦)
조선전기 제7대 왕 세조가 마곡사에 갈 때 탔던 가마.
조선 중기의 문신 박광우(朴光佑)의 묘에서 출토된 유물.
박광우 묘 출토 유물 (朴光佑 墓 出土 遺物)
조선 중기의 문신 박광우(朴光佑)의 묘에서 출토된 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