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이가연"
검색결과 총 10건
이순극은 일제강점기,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 동창마을의 3 · 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3일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 동창마을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천도교인 김덕원을 중심으로 4월 3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미리 선언서와 태극기를 배포하였고, 인근 마을 주민과 함께 물걸리 동창마을로 모여 시위를 전개하였다. 시위 군중의 선두에 서서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던 중 잠복해 있던 일제 헌병이 쏜 총탄에 맞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이순극 (李順克)
이순극은 일제강점기,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 동창마을의 3 · 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3일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 동창마을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천도교인 김덕원을 중심으로 4월 3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미리 선언서와 태극기를 배포하였고, 인근 마을 주민과 함께 물걸리 동창마을로 모여 시위를 전개하였다. 시위 군중의 선두에 서서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던 중 잠복해 있던 일제 헌병이 쏜 총탄에 맞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이신규는 일제강점기, 경기도 양평군 갈산면 양근리의 3 · 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4일 양평군 갈산면 양근리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서울에서 양평군 양근리 시장에 도착하여 독립에 관한 연설을 하면서 가지고 온 독립선언서와 격문을 군중에게 배포하고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보안법」 위반 협의로 체포되어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소 후 후유증에 시달리다가 1926년 1월 24일 사망하였다.
이신규 (李藎珪)
이신규는 일제강점기, 경기도 양평군 갈산면 양근리의 3 · 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4일 양평군 갈산면 양근리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서울에서 양평군 양근리 시장에 도착하여 독립에 관한 연설을 하면서 가지고 온 독립선언서와 격문을 군중에게 배포하고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였다. 「보안법」 위반 협의로 체포되어 징역 2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소 후 후유증에 시달리다가 1926년 1월 24일 사망하였다.
이여선은 일제강점기,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 동창마을의 3 · 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3일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 동창마을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천도교인 김덕원을 중심으로 4월 3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미리 선언서와 태극기를 배포하였고, 인근 마을 주민과 함께 물걸리 동창마을로 모여 시위를 전개하였다. 시위 군중의 선두에 서서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던 중 잠복해 있던 일제 헌병이 쏜 총탄에 맞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이여선 (李麗先)
이여선은 일제강점기, 강원도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 동창마을의 3 · 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3일 홍천군 내촌면 물걸리 동창마을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천도교인 김덕원을 중심으로 4월 3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미리 선언서와 태극기를 배포하였고, 인근 마을 주민과 함께 물걸리 동창마을로 모여 시위를 전개하였다. 시위 군중의 선두에 서서 대한독립만세를 고창하던 중 잠복해 있던 일제 헌병이 쏜 총탄에 맞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이영여는 일제강점기, 경기도 포천군 신북면에서 일어난 3 · 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30일 포천군 신북면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3 · 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만세시위를 권유하는 사발통문을 접하고 동료들과 비밀리에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태극기를 들고 선두에서 시위 군중을 이끌다 매복해 있던 일제 헌병의 총격을 받고 순국하였다.
이영여 (李榮汝)
이영여는 일제강점기, 경기도 포천군 신북면에서 일어난 3 · 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30일 포천군 신북면에서 일어난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3 · 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만세시위를 권유하는 사발통문을 접하고 동료들과 비밀리에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다. 태극기를 들고 선두에서 시위 군중을 이끌다 매복해 있던 일제 헌병의 총격을 받고 순국하였다.
이용화는 일제강점기,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가납리 3 · 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양주군 광적면 가납리 3 · 1운동을 주도하였다. 3 · 1운동 소식을 듣고 백남식, 김진성과 함께 광적면의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준비하였다. 3월 28일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선두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일제 군경의 총격을 받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이용화 (李龍和)
이용화는 일제강점기, 경기도 양주군 광적면 가납리 3 · 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양주군 광적면 가납리 3 · 1운동을 주도하였다. 3 · 1운동 소식을 듣고 백남식, 김진성과 함께 광적면의 만세시위를 계획하고 준비하였다. 3월 28일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선두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일제 군경의 총격을 받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이원필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3 · 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0일 함안군 군북면 군북시장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3 · 1운동 소식을 접하고 군북에서도 만세시위를 벌일 것을 계획 · 준비하였다. 3월 20일 군북시장에 모인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눠주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대의 선두에서 시장을 행진하다 일제 헌병과 투석전을 벌였고, 총격을 받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이원필 (李元弼)
이원필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함안군 군북면 3 · 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20일 함안군 군북면 군북시장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3 · 1운동 소식을 접하고 군북에서도 만세시위를 벌일 것을 계획 · 준비하였다. 3월 20일 군북시장에 모인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눠주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대의 선두에서 시장을 행진하다 일제 헌병과 투석전을 벌였고, 총격을 받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이유복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안성군 원곡면과 양성면에서 일어난 3 · 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1~2일 안성군 원곡면, 양성면 일대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4월 1일 시위대와 함께 주재소, 양성우편소, 일본인 고리대금업자의 집, 양성면사무소를 파괴하였고, 4월 2일 원곡면사무소를 방화하였다.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고, 수감 중에도 계속해서 만세를 부르다가 경찰이 발포한 총에 맞아 7월 4일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이유복 (李裕福)
이유복은 일제강점기, 경기도 안성군 원곡면과 양성면에서 일어난 3 · 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1~2일 안성군 원곡면, 양성면 일대에서 전개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4월 1일 시위대와 함께 주재소, 양성우편소, 일본인 고리대금업자의 집, 양성면사무소를 파괴하였고, 4월 2일 원곡면사무소를 방화하였다.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고, 수감 중에도 계속해서 만세를 부르다가 경찰이 발포한 총에 맞아 7월 4일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이유주는 일제강점기, 중국 길림성 연길현 용정에서 일어난 3 · 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13일 길림성 연길현 용정에서 일어난 3 · 1운동에 참여하였다. 용정 서전평야에서 한국인 학교 학생들과 동포들이 모여 ‘3 · 1운동 축하식’을 거행하고 만세시위를 하였는데, 이유주는 군중의 선두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시가행진을 하던 중 일본 경찰의 발포로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이유주 (李裕周)
이유주는 일제강점기, 중국 길림성 연길현 용정에서 일어난 3 · 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13일 길림성 연길현 용정에서 일어난 3 · 1운동에 참여하였다. 용정 서전평야에서 한국인 학교 학생들과 동포들이 모여 ‘3 · 1운동 축하식’을 거행하고 만세시위를 하였는데, 이유주는 군중의 선두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시가행진을 하던 중 일본 경찰의 발포로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이준배는 일제강점기, 평안남도 강서군 반석면 일대에서 전개된 3 · 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4일 강서군 반석면 일대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원장리 시장에서 시작된 시위는 전날 검거된 인사들을 구출하기 위해 헌병주재소로 향하다가 매복해 있던 일제 헌병의 총격에 맞서 헌병을 피살하였다. 다음날 관련자 검거 때 체포되어 12월 6일 고등법원에서 살인, 방화, 소요, 「보안법」 위반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준배 (李俊培)
이준배는 일제강점기, 평안남도 강서군 반석면 일대에서 전개된 3 · 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월 4일 강서군 반석면 일대에서 일어난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 원장리 시장에서 시작된 시위는 전날 검거된 인사들을 구출하기 위해 헌병주재소로 향하다가 매복해 있던 일제 헌병의 총격에 맞서 헌병을 피살하였다. 다음날 관련자 검거 때 체포되어 12월 6일 고등법원에서 살인, 방화, 소요, 「보안법」 위반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현설은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창수동의 3 · 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 · 1운동 당시 영덕군 창수면 창수동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창수면 신리 구장으로 마을 주민들을 이끌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창수주재소를 점거 파괴한 후, 귀가하였다가 체포되었다. 「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현설 (李鉉卨)
이현설은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창수동의 3 · 1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3 · 1운동 당시 영덕군 창수면 창수동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창수면 신리 구장으로 마을 주민들을 이끌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창수주재소를 점거 파괴한 후, 귀가하였다가 체포되었다. 「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