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이민희"
검색결과 총 8건
금서(禁書)는 지배 세력에 의해 출판이나 판매, 독서가 금지된 책 또는 글을 의미한다. 책을 불살라 버리거나 압수 및 은장(隱藏), 발행 금지, 판매 금지, 그리고 사회적 합의를 통한 금지 등과 같은 처분을 받은 서책이 금서에 해당한다. 삼국시대부터 도참서가 백성을 혹세무민하는 불온서적으로 금기시된 이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비기류, 종교 서적, 소설, 개인 저서 또한 정부의 이해관계와 맞지 않으면 금서로 낙인찍혔다. 일제강점기에 도서 및 출판 검열이 빈번했고, 해방 후 남북한에서도 사상과 통념에 반하는 책들은 금서가 되었다.
금서 (禁書)
금서(禁書)는 지배 세력에 의해 출판이나 판매, 독서가 금지된 책 또는 글을 의미한다. 책을 불살라 버리거나 압수 및 은장(隱藏), 발행 금지, 판매 금지, 그리고 사회적 합의를 통한 금지 등과 같은 처분을 받은 서책이 금서에 해당한다. 삼국시대부터 도참서가 백성을 혹세무민하는 불온서적으로 금기시된 이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도 비기류, 종교 서적, 소설, 개인 저서 또한 정부의 이해관계와 맞지 않으면 금서로 낙인찍혔다. 일제강점기에 도서 및 출판 검열이 빈번했고, 해방 후 남북한에서도 사상과 통념에 반하는 책들은 금서가 되었다.
군서당은 1930년대부터 해방 이후 1940년대 후반까지 충무로에 위치했던 고서 전문 서점 겸 출판사이다. 최성기(崔成基)가 운영했으며 주로 한적(漢籍)을 취급했던 대표적인 고서 도매점으로 당시 지식인들이 가장 즐겨 찾던 서점 중 하나였다. 군서당은 특정 서적의 독점적 배포를 담당하기도 했다.
군서당 (群書堂)
군서당은 1930년대부터 해방 이후 1940년대 후반까지 충무로에 위치했던 고서 전문 서점 겸 출판사이다. 최성기(崔成基)가 운영했으며 주로 한적(漢籍)을 취급했던 대표적인 고서 도매점으로 당시 지식인들이 가장 즐겨 찾던 서점 중 하나였다. 군서당은 특정 서적의 독점적 배포를 담당하기도 했다.
서사(書肆)는 책을 파는 점포이다. 조선시대에는 책사(冊肆), 대한제국시대부터 일제강점기에는 서관(書館), 서포(書鋪), 책포(冊鋪), 서점(書店) 등으로 불렸다. 조선에서는 서사 설립 논의가 일찍부터 있었으나 체계를 갖춘 민간 서사의 등장은 더뎠고 운영도 미미했다. 서사의 역할을 세책점 또는 책쾌(서적상) 등이 대신하다가 19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근대적 성격의 서점이 나타났다.
서사 (書肆)
서사(書肆)는 책을 파는 점포이다. 조선시대에는 책사(冊肆), 대한제국시대부터 일제강점기에는 서관(書館), 서포(書鋪), 책포(冊鋪), 서점(書店) 등으로 불렸다. 조선에서는 서사 설립 논의가 일찍부터 있었으나 체계를 갖춘 민간 서사의 등장은 더뎠고 운영도 미미했다. 서사의 역할을 세책점 또는 책쾌(서적상) 등이 대신하다가 19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근대적 성격의 서점이 나타났다.
세책(貰冊)은 세책점에서 돈을 받고 책을 빌려주던 것을 말한다. 책값이 비쌌던 전근대에 일반 고객인 독자를 상대로 세책점에서 다수의 책을 보유해 놓고 인기 있는 책을 저렴한 비용으로 일정 기간 빌려 주었다. 고서의 세책 영업은 18세기 중반 이후부터 20세기 초까지 지속되었다. 특별히 사대부가 여성들이 국문소설을 경쟁적으로 세책점에서 빌려 읽었다. 여성들의 세책 독서는 소설 독서의 대중와 상업화를 이끌었다.
세책 (貰冊)
세책(貰冊)은 세책점에서 돈을 받고 책을 빌려주던 것을 말한다. 책값이 비쌌던 전근대에 일반 고객인 독자를 상대로 세책점에서 다수의 책을 보유해 놓고 인기 있는 책을 저렴한 비용으로 일정 기간 빌려 주었다. 고서의 세책 영업은 18세기 중반 이후부터 20세기 초까지 지속되었다. 특별히 사대부가 여성들이 국문소설을 경쟁적으로 세책점에서 빌려 읽었다. 여성들의 세책 독서는 소설 독서의 대중와 상업화를 이끌었다.
『조선고활자판습엽(朝鮮古活字版拾葉)』은 1944년에 충무로에 위치한 군서당(群書堂) 서점에서 발행한 조선활자인본(朝鮮活字印本) 견본집(見本集)이다. 경자자(庚子字)로부터 갑인자(甲寅字), 갑진자(甲辰字), 병자자(丙子字), 그리고 각종 목활자에 이르기까지 조선 건국 이래 임진왜란 이전 시기까지 제작된 총 26종의 고활자 습엽(拾葉)이 첨부되어 있다.
조선고활자판습엽 (朝鮮古活字版拾葉)
『조선고활자판습엽(朝鮮古活字版拾葉)』은 1944년에 충무로에 위치한 군서당(群書堂) 서점에서 발행한 조선활자인본(朝鮮活字印本) 견본집(見本集)이다. 경자자(庚子字)로부터 갑인자(甲寅字), 갑진자(甲辰字), 병자자(丙子字), 그리고 각종 목활자에 이르기까지 조선 건국 이래 임진왜란 이전 시기까지 제작된 총 26종의 고활자 습엽(拾葉)이 첨부되어 있다.
『조선의 판본』은 일본인 서지학자인 마에마 교사쿠[前間恭作, 1868~1942]가 한국의 고서를 체계화하고 해제를 가한 저서이다. 이 책은 마에다의 사후에 간행된 『고선책보(古鮮冊譜)』(1944, 1956, 1957)의 서설(序說)의 성격을 지닌다. 『조선의 판본』은 『고선책보』와 더불어 한국 고서 전적과 서지 출판학의 기초를 마련한 저서로 평가 받는다.
조선의 판본 (朝鮮의 板本)
『조선의 판본』은 일본인 서지학자인 마에마 교사쿠[前間恭作, 1868~1942]가 한국의 고서를 체계화하고 해제를 가한 저서이다. 이 책은 마에다의 사후에 간행된 『고선책보(古鮮冊譜)』(1944, 1956, 1957)의 서설(序說)의 성격을 지닌다. 『조선의 판본』은 『고선책보』와 더불어 한국 고서 전적과 서지 출판학의 기초를 마련한 저서로 평가 받는다.
하경룡장판은 19세기 후반 전주의 출판사 겸 서점인 칠서방 주인 하경룡이 간행한 책을 의미한다. 하경룡장판은 하경룡이 사서삼경 책과 이를 언해한 언해서 80책을 내놓으면서 유명해졌다. 하경룡장판에는 대체로 ‘세경오중춘개간전주하경룡장판(歲庚午仲春開刊全州河慶龍藏板)’이라는 간기가 적혀 있다.
하경룡장판 (河慶龍藏板)
하경룡장판은 19세기 후반 전주의 출판사 겸 서점인 칠서방 주인 하경룡이 간행한 책을 의미한다. 하경룡장판은 하경룡이 사서삼경 책과 이를 언해한 언해서 80책을 내놓으면서 유명해졌다. 하경룡장판에는 대체로 ‘세경오중춘개간전주하경룡장판(歲庚午仲春開刊全州河慶龍藏板)’이라는 간기가 적혀 있다.
희현당은 전라도 유생을 교육하기 위해 전라 감영에서 직영한 전주 소재 영학(營學) 교육기관 겸 출판사다. 1700년에 전라 감사였던 김시걸(金時傑, 1653~1701)이 유생들의 강학소(講學所)였던 사마재(司馬齋)의 옛터에다 누정(樓亭) 형태로 새롭게 지은 학당이다. 전라 감영에서 직접 운영한 교육기관이었기 때문에 교육뿐 아니라 감영에서 필요로 하는 교육용 교재를 인쇄하고 출판했다.
희현당 (希顯堂)
희현당은 전라도 유생을 교육하기 위해 전라 감영에서 직영한 전주 소재 영학(營學) 교육기관 겸 출판사다. 1700년에 전라 감사였던 김시걸(金時傑, 1653~1701)이 유생들의 강학소(講學所)였던 사마재(司馬齋)의 옛터에다 누정(樓亭) 형태로 새롭게 지은 학당이다. 전라 감영에서 직접 운영한 교육기관이었기 때문에 교육뿐 아니라 감영에서 필요로 하는 교육용 교재를 인쇄하고 출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