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이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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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륜당·비천당·근정전·인정전·사단 등에서 치르는 시취의·방방의·문무과영친의 등 과거제도에 따른 국가의례.
과제의 (科制儀)
명륜당·비천당·근정전·인정전·사단 등에서 치르는 시취의·방방의·문무과영친의 등 과거제도에 따른 국가의례.
추존한 경우를 포함하여 왕 또는 왕후가 죽은 제삿날.
국기 (國忌)
추존한 경우를 포함하여 왕 또는 왕후가 죽은 제삿날.
김성일은 조선시대 통신부사, 경상우도병마절도사, 경상우도순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1538년(중종 33)에 태어나 1593년(선조 26)에 사망했다. 1574년 사가독서했고 1577년 사은사 서장관으로 명에 다녀왔다. 1590년 통신부사로 일본을 다녀와서 일본이 침입하지 않을 것이라 한 보고로 인해 임진왜란 발발 후 파직되었다. 이후 복직되어 왜군에 대한 항전을 독려하다 병으로 사망했다. 이황의 수제자로 성리학에 조예가 깊어, 『주자서절요』·『자성록』·『퇴계집』 등을 편집·간행했다. 정치적으로는 유성룡·김우옹 등과 남인을 이루었다.
김성일 (金誠一)
김성일은 조선시대 통신부사, 경상우도병마절도사, 경상우도순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1538년(중종 33)에 태어나 1593년(선조 26)에 사망했다. 1574년 사가독서했고 1577년 사은사 서장관으로 명에 다녀왔다. 1590년 통신부사로 일본을 다녀와서 일본이 침입하지 않을 것이라 한 보고로 인해 임진왜란 발발 후 파직되었다. 이후 복직되어 왜군에 대한 항전을 독려하다 병으로 사망했다. 이황의 수제자로 성리학에 조예가 깊어, 『주자서절요』·『자성록』·『퇴계집』 등을 편집·간행했다. 정치적으로는 유성룡·김우옹 등과 남인을 이루었다.
김우옹은 조선 시대 병조참판, 예조참판, 이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자는 숙부, 호는 동강, 직봉포의이다. 1540년(중종 35)에 출생하여 1603년(선조 36년)에 사망했다. 정치적으로 유성룡, 김성일 등과 가까워 동인에 속하였다. 김우옹은 학문적 문제와 정치에 시무책을 진언하여 선조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1573년 「성학육잠」, 1594년 6월 「시무칠조」, 7월에 「시무사조」, 9월에 「시무팔조」, 이듬해 「시무십육조」 등을 올렸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저서로는 『동강집(東岡集)』이 있다.
김우옹 (金宇顒)
김우옹은 조선 시대 병조참판, 예조참판, 이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자는 숙부, 호는 동강, 직봉포의이다. 1540년(중종 35)에 출생하여 1603년(선조 36년)에 사망했다. 정치적으로 유성룡, 김성일 등과 가까워 동인에 속하였다. 김우옹은 학문적 문제와 정치에 시무책을 진언하여 선조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1573년 「성학육잠」, 1594년 6월 「시무칠조」, 7월에 「시무사조」, 9월에 「시무팔조」, 이듬해 「시무십육조」 등을 올렸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저서로는 『동강집(東岡集)』이 있다.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에 있는 조선전기 이황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 교육시설.
안동 도산서원 (安東 陶山書院)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에 있는 조선전기 이황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 교육시설.
조선시대 때의 문신·학자, 김우옹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661년에 간행한 시문집.
동강문집 (東岡文集)
조선시대 때의 문신·학자, 김우옹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661년에 간행한 시문집.
임금이 죽은 뒤에 그의 신위(神位)를 모셔 놓은 집을 가리키는 존호(尊號).
묘호 (廟號)
임금이 죽은 뒤에 그의 신위(神位)를 모셔 놓은 집을 가리키는 존호(尊號).
상주(喪主)를 조문하는 상례의식. 문상의식.
문상 (問喪)
상주(喪主)를 조문하는 상례의식. 문상의식.
조선 후기 호조참판, 형조판서,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척신.
민승호 (閔升鎬)
조선 후기 호조참판, 형조판서, 병조판서 등을 역임한 척신.
조선 후기에, 예조판서, 판의금부사, 강원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민치상 (閔致庠)
조선 후기에, 예조판서, 판의금부사, 강원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박규수는 조선후기 애로호 사건, 제너럴셔먼호 사건 등과 관련된 실학자이자 개화론자이다. 1807년(순조 7)에 태어나 1877년(고종 14)에 사망했다. 박지원의 손자로 북학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1861년 연행사 부사로 중국에 체류할 때 애로호 사건으로 벌어지는 국제정세를 직접 목격했고, 1866년에는 평안도관찰사로 재임하면서 대동강에 불법 침입한 제너럴셔먼호 격침을 직접 지휘하기도 했다. 이후 개국·개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자주적 개국론을 주장했으나 수용되지 않았다. 개화운동의 선구자들인 김옥균·박영효 등이 그의 문하에서 배출되었다.
박규수 (朴珪壽)
박규수는 조선후기 애로호 사건, 제너럴셔먼호 사건 등과 관련된 실학자이자 개화론자이다. 1807년(순조 7)에 태어나 1877년(고종 14)에 사망했다. 박지원의 손자로 북학파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1861년 연행사 부사로 중국에 체류할 때 애로호 사건으로 벌어지는 국제정세를 직접 목격했고, 1866년에는 평안도관찰사로 재임하면서 대동강에 불법 침입한 제너럴셔먼호 격침을 직접 지휘하기도 했다. 이후 개국·개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자주적 개국론을 주장했으나 수용되지 않았다. 개화운동의 선구자들인 김옥균·박영효 등이 그의 문하에서 배출되었다.
장례를 치르기 위하여 상여가 집을 떠나 장지에 도착할 때까지 행하는 상례의식.
발인 (發靷)
장례를 치르기 위하여 상여가 집을 떠나 장지에 도착할 때까지 행하는 상례의식.
장사지내기 위하여 무덤을 파고 관을 묻은 다음 무덤을 완성하기까지의 일을 통틀어 일컫는 행사를 지칭하는 용어. 상례.
산역 (山役)
장사지내기 위하여 무덤을 파고 관을 묻은 다음 무덤을 완성하기까지의 일을 통틀어 일컫는 행사를 지칭하는 용어. 상례.
조선 후기에, 『극재집』, 『이기성정통간도』, 『동국승경와유록』 등을 저술한 학자.
신익황 (申益愰)
조선 후기에, 『극재집』, 『이기성정통간도』, 『동국승경와유록』 등을 저술한 학자.
육례는 전통 사회에서 행하던 혼인 절차인 납채, 문명, 납길, 납징, 청기, 친영이다. 납채는 신부측에서 신랑측의 혼인 의사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문명은 신랑측에서 신부 어머니의 성명을 묻는 것이다. 납길은 혼인의 길흉을 점쳐서 그 결과를 신부 측에 알리는 것이다. 납징은 혼인이 이루어진 표시로서 폐물을 주는 절차이다. 청기는 신랑측에서 신부측에 혼인 날짜를 정해 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친영은 신랑이 신부집에 가서 신부를 맞이하는 의식으로 오늘날 결혼 예식에 해당한다. 조선 시대 관혼상제의 의식은 주자 『가례』에 의거하였고, 그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육례 (六禮)
육례는 전통 사회에서 행하던 혼인 절차인 납채, 문명, 납길, 납징, 청기, 친영이다. 납채는 신부측에서 신랑측의 혼인 의사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문명은 신랑측에서 신부 어머니의 성명을 묻는 것이다. 납길은 혼인의 길흉을 점쳐서 그 결과를 신부 측에 알리는 것이다. 납징은 혼인이 이루어진 표시로서 폐물을 주는 절차이다. 청기는 신랑측에서 신부측에 혼인 날짜를 정해 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친영은 신랑이 신부집에 가서 신부를 맞이하는 의식으로 오늘날 결혼 예식에 해당한다. 조선 시대 관혼상제의 의식은 주자 『가례』에 의거하였고, 그 전통이 지금까지 이어졌다.
이기는 대한제국기 대한자강회를 조직하고, 언론을 통해 국권수호와 제도개혁에 힘쓴 애국계몽운동가이다. 1848년(헌종 14)에 태어나 1909년(순종 2)에 사망했다. 독학으로 학문을 성취하였으며 성리학의 한계를 인식하고 실학사상을 기초로 신학문을 수용하였다. 일제가 강요하는 황무지개척권의 부당성과 그에 대한 대책을 제시하였으며 옛 영토인 서북 간도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906년경에는 장지연·윤효정 등과 함께 대한자강회를 조직하여 논설 등을 통해 국민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저서로는 『해학유서』가 있다.
이기 (李沂)
이기는 대한제국기 대한자강회를 조직하고, 언론을 통해 국권수호와 제도개혁에 힘쓴 애국계몽운동가이다. 1848년(헌종 14)에 태어나 1909년(순종 2)에 사망했다. 독학으로 학문을 성취하였으며 성리학의 한계를 인식하고 실학사상을 기초로 신학문을 수용하였다. 일제가 강요하는 황무지개척권의 부당성과 그에 대한 대책을 제시하였으며 옛 영토인 서북 간도를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1906년경에는 장지연·윤효정 등과 함께 대한자강회를 조직하여 논설 등을 통해 국민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저서로는 『해학유서』가 있다.
대한제국기 외부대신, 농상공부대신, 궁내부특진관 등을 역임한 관료.
이도재 (李道宰)
대한제국기 외부대신, 농상공부대신, 궁내부특진관 등을 역임한 관료.
개항기 삼도수군통제사, 대호군,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한 관료.
이원회 (李元會)
개항기 삼도수군통제사, 대호군,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한 관료.
조선 후기에, 함경도관찰사, 좌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이유원 (李裕元)
조선 후기에, 함경도관찰사, 좌의정, 영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개항기 때, 한성부판윤, 판의금부사, 종정경 등을 역임한 문신.
이재원 (李載元)
개항기 때, 한성부판윤, 판의금부사, 종정경 등을 역임한 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