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진희관"
검색결과 총 17건
1989년에, 북한의 〈오늘의 조국사〉에서 북한 체제와 주민들의 일상 생활을 홍보하기 위하여 창간한 월간 잡지.
금수강산 (錦繡江山)
1989년에, 북한의 〈오늘의 조국사〉에서 북한 체제와 주민들의 일상 생활을 홍보하기 위하여 창간한 월간 잡지.
통일 문제와 남한의 사회 문제를 다루는 북한의 월간 잡지.
남조선문제 (南朝鮮問題)
통일 문제와 남한의 사회 문제를 다루는 북한의 월간 잡지.
민족통일협상회의는 1989년 9월 28일 북한이 남한의 정부·정당·사회단체 대표들에게 제안한 회의이다. 1973년 김일성의 ‘대민족회의’ 제안 이후 북한은 정치협상회의 형태의 대남 정치선전 공세를 계속 전개해 왔다. 민족통일협상회의는 1989년 북한의 외교부 부장 김영남이 제안한 것으로 남북 각각 60명이 조국통일 방도 등을 다루자는 제안이었다. 평양과 서울에서 번갈아 개최하되, 모든 대표들이 동등한 자격으로 참가하는 원탁회의 방식을 제안하였다. 한국 정부는 북한의 이 제안이 남한의 국론 분열을 목적으로 한 대남 선전의 일환이라고 판단하였기에 제안을 거절하였다.
민족통일협상회의 (民族統一協商會議)
민족통일협상회의는 1989년 9월 28일 북한이 남한의 정부·정당·사회단체 대표들에게 제안한 회의이다. 1973년 김일성의 ‘대민족회의’ 제안 이후 북한은 정치협상회의 형태의 대남 정치선전 공세를 계속 전개해 왔다. 민족통일협상회의는 1989년 북한의 외교부 부장 김영남이 제안한 것으로 남북 각각 60명이 조국통일 방도 등을 다루자는 제안이었다. 평양과 서울에서 번갈아 개최하되, 모든 대표들이 동등한 자격으로 참가하는 원탁회의 방식을 제안하였다. 한국 정부는 북한의 이 제안이 남한의 국론 분열을 목적으로 한 대남 선전의 일환이라고 판단하였기에 제안을 거절하였다.
민족화해협의회는 북한이 남한 민간 단체, 인사들과의 접촉 창구 및 대남사업을 목적으로 결성한 조선노동당의 외곽단체이다. 1998년 북한의 8?15 통일대축전 제의에 앞서 북한의 각계 단체와 인사로 구성한 통일전선단체 중 하나이다. 이 단체는 2001년 6?15 민족통일대토론회, 8?15 남북 공동 행사를 개최했다. 2002년부터는 6?15 남북공동행사, 8?15 남북공동행사를 남측과 함께 진행했다. 2005년 각종 방북 공연,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 등을 추진했다. 민족화해협의회는 민간 차원의 교류와 인도적 대북 지원 분야에서 접촉 창구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민족화해협의회 (民族和解協議會)
민족화해협의회는 북한이 남한 민간 단체, 인사들과의 접촉 창구 및 대남사업을 목적으로 결성한 조선노동당의 외곽단체이다. 1998년 북한의 8?15 통일대축전 제의에 앞서 북한의 각계 단체와 인사로 구성한 통일전선단체 중 하나이다. 이 단체는 2001년 6?15 민족통일대토론회, 8?15 남북 공동 행사를 개최했다. 2002년부터는 6?15 남북공동행사, 8?15 남북공동행사를 남측과 함께 진행했다. 2005년 각종 방북 공연, 겨레말큰사전 편찬사업 등을 추진했다. 민족화해협의회는 민간 차원의 교류와 인도적 대북 지원 분야에서 접촉 창구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북일정상회담은 북한과 일본의 외교적 사안을 논의하기 위해 양국 정상 간의 회담이다. 2002년 9월 평양에서 제1차 북일정상회담이 열렸다. 이 회담에서 ‘평양선언’이 채택되었다. 평양선언은 국교정상화 회담 추진, 과거사 반성에 기초한 보상, 유감스런(납치 등) 사태 재발 방지, 핵과 미사일 문제 해결을 위한 협력관계 구축 등 4개 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2004년 5월 선언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평양에서 제2차 북일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그러나 납치자 문제에 대한 갈등으로 인해 더 이상의 진전을 거두지 못했다.
북일정상회담 (北日頂上會談)
북일정상회담은 북한과 일본의 외교적 사안을 논의하기 위해 양국 정상 간의 회담이다. 2002년 9월 평양에서 제1차 북일정상회담이 열렸다. 이 회담에서 ‘평양선언’이 채택되었다. 평양선언은 국교정상화 회담 추진, 과거사 반성에 기초한 보상, 유감스런(납치 등) 사태 재발 방지, 핵과 미사일 문제 해결을 위한 협력관계 구축 등 4개 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2004년 5월 선언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평양에서 제2차 북일정상회담이 개최되었다. 그러나 납치자 문제에 대한 갈등으로 인해 더 이상의 진전을 거두지 못했다.
1973년에, 북한의 사회과학출판사에서 사회 과학 부문의 종합 이론을 다룬 격월간 잡지.
사회과학 (社會科學)
1973년에, 북한의 사회과학출판사에서 사회 과학 부문의 종합 이론을 다룬 격월간 잡지.
북한에서, 조선노동당 국제부 지도원,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한 외교관·관료.
송호경 (宋浩景)
북한에서, 조선노동당 국제부 지도원,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한 외교관·관료.
1948년에, 북한의 사회과학출판사에서 주체사상을 지침으로 창간한 역사학 분야 계간 학술 잡지.
력사과학 (歷史科學)
1948년에, 북한의 사회과학출판사에서 주체사상을 지침으로 창간한 역사학 분야 계간 학술 잡지.
1950년에, 북한의 외국문출판사에서 북한의 지도자와 체제를 해외에 홍보하기 위하여 창간한 월간 잡지.
오늘의 조선 (오늘의 朝鮮)
1950년에, 북한의 외국문출판사에서 북한의 지도자와 체제를 해외에 홍보하기 위하여 창간한 월간 잡지.
1946년에, 북한의 인민교육사에서 초·중·등 부문의 교육 이론 및 실무를 다루기 위해 창간한 잡지.
인민교육 (人民敎育)
1946년에, 북한의 인민교육사에서 초·중·등 부문의 교육 이론 및 실무를 다루기 위해 창간한 잡지.
북한에서, 교원을 대상으로 발행하는 기초 과학 격월간 잡지.
자연과학 (自然科學)
북한에서, 교원을 대상으로 발행하는 기초 과학 격월간 잡지.
재일조선인 북송사업은 1959년 12월부터 1984년까지 9만 3천여 명의 재일동포들이 북한으로 영주 귀국한 사업이다. 1958년 일본 내 총련계 동포들이 전국적으로 ‘집단적 귀국실현운동’을 전개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1958년 인도 캘커타에서 가진 북한적십자회와 일본적십자사 간 합의에 의해 북송사업이 이루어졌다. 1961년까지 전체의 80%인 7만 4천 900여 명이 귀국했다. 1965년 한일수교 이후 한국정부의 반대로 1968년부터 3년간 중단되었다. 북송 이후 재일동포들 가운데 일본과 북한 사이에 이산가족이 발생하였다.
재일조선인 북송사업 (在日朝鮮人 北送事業)
재일조선인 북송사업은 1959년 12월부터 1984년까지 9만 3천여 명의 재일동포들이 북한으로 영주 귀국한 사업이다. 1958년 일본 내 총련계 동포들이 전국적으로 ‘집단적 귀국실현운동’을 전개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1958년 인도 캘커타에서 가진 북한적십자회와 일본적십자사 간 합의에 의해 북송사업이 이루어졌다. 1961년까지 전체의 80%인 7만 4천 900여 명이 귀국했다. 1965년 한일수교 이후 한국정부의 반대로 1968년부터 3년간 중단되었다. 북송 이후 재일동포들 가운데 일본과 북한 사이에 이산가족이 발생하였다.
1957년 북한의 사회과학출판사에서 고고학 및 민속학분야의 발굴 자료와 연구성과를 다룬 회보. 기관지.
조선고고연구 (朝鮮考古硏究)
1957년 북한의 사회과학출판사에서 고고학 및 민속학분야의 발굴 자료와 연구성과를 다룬 회보. 기관지.
1953년 북한의 과학기술출판사에서 발행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학원의 기관 회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학원통보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科學院通報)
1953년 북한의 과학기술출판사에서 발행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학원의 기관 회보.
1948년 북한의 조선인민군신문사에서 북한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기관지로 발행하는 신문. 북한기관지.
조선인민군 (朝鮮人民軍)
1948년 북한의 조선인민군신문사에서 북한조선인민군 최고사령부 기관지로 발행하는 신문. 북한기관지.
1949년부터 북한 조선중앙통신사에서 매년 발간하는 연감. 북한문헌.
조선중앙년감 (朝鮮中央年鑑)
1949년부터 북한 조선중앙통신사에서 매년 발간하는 연감. 북한문헌.
북한에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의장,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을 역임하였으며, 재일조선인운동을 전개한 관료.
한덕수 (韓德銖)
북한에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의장,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등을 역임하였으며, 재일조선인운동을 전개한 관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