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최봉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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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진기자협회는 1964년 사진기자들의 권익과 취재 환경 개선, 보도사진의 사회적 역할과 학문적 지위 향상을 위해 결성된 단체이다. 핵심 사업은 연레 사업인 보도사진전 개최와 『보도사진연감』 발행이었다. 회원의 신체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취재 완장 배포, 사진기자의 사회적 역할과 보도사진의 역사적 기능을 설파한 협회의 역사서 편찬, 피의자의 신체적 안전을 위한 포토라인 시행 등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한국사진기자협회 (韓國寫眞記者協會)
한국사진기자협회는 1964년 사진기자들의 권익과 취재 환경 개선, 보도사진의 사회적 역할과 학문적 지위 향상을 위해 결성된 단체이다. 핵심 사업은 연레 사업인 보도사진전 개최와 『보도사진연감』 발행이었다. 회원의 신체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취재 완장 배포, 사진기자의 사회적 역할과 보도사진의 역사적 기능을 설파한 협회의 역사서 편찬, 피의자의 신체적 안전을 위한 포토라인 시행 등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한국사진작가협회는 1961년 전국에 산재한 사진 단체의 통합을 목적으로 설립된 국내 최대 규모의 사진 작가 단체이다. 1977년 한국사진작가협회로 개칭했으며, 현재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대한민국미술전람회를 비롯한 여러 공모전을 주도하며 1970년 이후 여러 사진 단체를 포괄하는 중심 단체로 자리잡았다. 1982년부터 대한민국사진전람회를 주관했으나, 공모전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그 위세가 점차 약화되고 있다.
한국사진작가협회 (韓國寫眞作家協會)
한국사진작가협회는 1961년 전국에 산재한 사진 단체의 통합을 목적으로 설립된 국내 최대 규모의 사진 작가 단체이다. 1977년 한국사진작가협회로 개칭했으며, 현재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대한민국미술전람회를 비롯한 여러 공모전을 주도하며 1970년 이후 여러 사진 단체를 포괄하는 중심 단체로 자리잡았다. 1982년부터 대한민국사진전람회를 주관했으나, 공모전 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그 위세가 점차 약화되고 있다.
한국창작사진협회는1964년, 임응식의 주도로 사진의 순수 예술성을 지향하면서 창작 활동을 하며 사진예술의 수준을 향상할 것을 목적으로 결성한 사진단체이다. 임응식은 1952년 본인의 주도로 창립한 ‘한국사진작가협회’를 재건해 ‘한국창작사진협회’를 설립하였고, 한국사진협회와 경쟁적으로 공모전과 협회전을 주최하며 사진 및 사진인의 예술적, 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해 ‘국전 사진부’ 설립과 그 지위 향상에 힘썼다. 1971년 한국사진협회와 통합했다.
한국창작사진협회 (韓國寫眞創作協會)
한국창작사진협회는1964년, 임응식의 주도로 사진의 순수 예술성을 지향하면서 창작 활동을 하며 사진예술의 수준을 향상할 것을 목적으로 결성한 사진단체이다. 임응식은 1952년 본인의 주도로 창립한 ‘한국사진작가협회’를 재건해 ‘한국창작사진협회’를 설립하였고, 한국사진협회와 경쟁적으로 공모전과 협회전을 주최하며 사진 및 사진인의 예술적, 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해 ‘국전 사진부’ 설립과 그 지위 향상에 힘썼다. 1971년 한국사진협회와 통합했다.
『월간사진』은 1976년 5월호부터 사용한 『포토그라피』의 새로운 제호이다. 『월간사진』은 1966년 『포토그라피』로 창간되었으나, 1976년 국어순화 정책에 따라 제호를 변경하였다. 창간 10주년을 기점으로 개칭이 이루어졌으며, 초대 편집장은 사진가 유재정이었다. 1990년대에는 발행부수 1만 5000부를 기록하며 전성기를 누렸으나, 디지털 시대의 변화로 점차 쇠퇴하였다. 2004년 발행처가 변경되고 2022년 다시 발행인이 바뀌었으나, 현존하는 국내 잡지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월간사진 (月刊寫眞)
『월간사진』은 1976년 5월호부터 사용한 『포토그라피』의 새로운 제호이다. 『월간사진』은 1966년 『포토그라피』로 창간되었으나, 1976년 국어순화 정책에 따라 제호를 변경하였다. 창간 10주년을 기점으로 개칭이 이루어졌으며, 초대 편집장은 사진가 유재정이었다. 1990년대에는 발행부수 1만 5000부를 기록하며 전성기를 누렸으나, 디지털 시대의 변화로 점차 쇠퇴하였다. 2004년 발행처가 변경되고 2022년 다시 발행인이 바뀌었으나, 현존하는 국내 잡지 중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포토그라피』는 1966년 7월 발행인 황성옥, 편집인 이형록이 창간한 사진 잡지이다. 사진의 예술적 지위 향상과 저변 확대를 목표로 창간하였다. 잡지는 사진계 뉴스, 논단, 작품 소개, 촬영 기법, 해외 사진가 소개 등 다양한 콘텐츠를 담았고, 이러한 구성은 이후 한국 사진 월간지의 기본 틀로 자리 잡았다. 창간 10주년이 되는 1976년 5월호부터 제호를 『월간사진』으로 변경하였다. 오늘날까지 발행되는 한국 최장수 사진 전문지로서 사진 문화 발전에 큰 역할을 해 왔다.
포토그라피
『포토그라피』는 1966년 7월 발행인 황성옥, 편집인 이형록이 창간한 사진 잡지이다. 사진의 예술적 지위 향상과 저변 확대를 목표로 창간하였다. 잡지는 사진계 뉴스, 논단, 작품 소개, 촬영 기법, 해외 사진가 소개 등 다양한 콘텐츠를 담았고, 이러한 구성은 이후 한국 사진 월간지의 기본 틀로 자리 잡았다. 창간 10주년이 되는 1976년 5월호부터 제호를 『월간사진』으로 변경하였다. 오늘날까지 발행되는 한국 최장수 사진 전문지로서 사진 문화 발전에 큰 역할을 해 왔다.
한국사진작가협회전은 1952년부터 1960년까지, 매년 개최된 '한국사진작가협회' 회원들의 사진 전시회이다. 『사협 창립 제1회전』을 시작으로 1960년 『제12회 사협전』까지 총 12회 개최되었다. 1957년부터 일반 공모를 개시하였고 이때부터 전시장이 소공동의 중앙공보관으로 고정되었다. 전시 기간은 7~9일, 제3회 전시부터는 지방 대도시 순회전도 시행하였다. 출품자 요건은 공모전 등에서 총 입상 점수 80점 내외를 획득해야 했고, 주제는 자유이며 미발표 작품이어야 했다. 전시작 선정은 각 지부에서 정했다.
한국사진작가협회전 (韓國寫眞作家協會展)
한국사진작가협회전은 1952년부터 1960년까지, 매년 개최된 '한국사진작가협회' 회원들의 사진 전시회이다. 『사협 창립 제1회전』을 시작으로 1960년 『제12회 사협전』까지 총 12회 개최되었다. 1957년부터 일반 공모를 개시하였고 이때부터 전시장이 소공동의 중앙공보관으로 고정되었다. 전시 기간은 7~9일, 제3회 전시부터는 지방 대도시 순회전도 시행하였다. 출품자 요건은 공모전 등에서 총 입상 점수 80점 내외를 획득해야 했고, 주제는 자유이며 미발표 작품이어야 했다. 전시작 선정은 각 지부에서 정했다.
한미사진미술관은 2003년 서울특별시 송파구 방이동 한미약품 본사에 설립된 한국 최초의 사진 전문 미술관이다. 사진예술의 복합 공간으로 지난 20년 동안 국내외 유명 사진가들의 전시회를 꾸준히 개최하고, 전시 도록을 빠짐없이 발행하였다. 2009년에는 한국 사진사 정립을 위해 관련 자료 수집과 연표 작성, 실증자료 보충과 보존 업무를 수행하는 한국사진문화연구소를 설립했다. 2022년 재단 설립 20주년을 맞아 종로구 삼청동에 첨단 사진 수장시설을 갖춘 미술관을 신축했고, 뮤지엄한미로 명칭을 바꿨다.
한미사진미술관 (韓美寫眞美術館)
한미사진미술관은 2003년 서울특별시 송파구 방이동 한미약품 본사에 설립된 한국 최초의 사진 전문 미술관이다. 사진예술의 복합 공간으로 지난 20년 동안 국내외 유명 사진가들의 전시회를 꾸준히 개최하고, 전시 도록을 빠짐없이 발행하였다. 2009년에는 한국 사진사 정립을 위해 관련 자료 수집과 연표 작성, 실증자료 보충과 보존 업무를 수행하는 한국사진문화연구소를 설립했다. 2022년 재단 설립 20주년을 맞아 종로구 삼청동에 첨단 사진 수장시설을 갖춘 미술관을 신축했고, 뮤지엄한미로 명칭을 바꿨다.
강릉사우회는 1935년 임응식 등이 일본인들과 함께 강릉에서 결성한 아마추어 사진 단체이다. 임응식의 주장에 따르면 ‘강릉사우회’는 한국인이 최초로 만들고 주재한 예술사진 단체이다. 그러나 이 주장에 대한 반론도 있다. “강릉사우회는 그 발족의 일자가 분명치 않지만 최초의 회장은 이곳에서 영업사진관을 개업 중이던 와타나베라는 일본인이었다.” 이에 대해 임응식은 당시의 신문기사를 인용하면서 자신이 주도한 한국인 최초의 예술사진 단체임을 증명하고자 했다.
강릉사우회 (江陵寫友會)
강릉사우회는 1935년 임응식 등이 일본인들과 함께 강릉에서 결성한 아마추어 사진 단체이다. 임응식의 주장에 따르면 ‘강릉사우회’는 한국인이 최초로 만들고 주재한 예술사진 단체이다. 그러나 이 주장에 대한 반론도 있다. “강릉사우회는 그 발족의 일자가 분명치 않지만 최초의 회장은 이곳에서 영업사진관을 개업 중이던 와타나베라는 일본인이었다.” 이에 대해 임응식은 당시의 신문기사를 인용하면서 자신이 주도한 한국인 최초의 예술사진 단체임을 증명하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