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경주(慶州). 할아버지는 김응룡(金應龍)이다.
병자호란이 끝난 1637년(인조 15) 소현세자(昭顯世子)와 봉림대군(鳳林大君: 효종)이 볼모가 되어, 청나라의 심양(瀋陽)으로 갈 때 이들을 수행하였다.
용감하고 도량이 넓어 박배원(朴培元)·신진익(申晉翼) 등과 함께 세칭 용만팔장사(龍灣八壯士)에 선발되어 심관(瀋館)을 호위하였다. 청나라가 금주위(錦州衛)와 산해관(山海關)을 칠 때도 별시위(別侍衛)로 두 왕자를 호종하는 등 잠시도 곁을 떠나지 않았다.
1644년 청나라가 북경에 입성하고 이듬해 두 왕자의 귀국이 허락되자, 서울에 소식을 전하였다. 이러한 공로로 별군직(別軍職)을 지냈고, 자산(慈山)·덕천(德川)의 군수를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