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종 ()

충렬공 박원종 묘역
충렬공 박원종 묘역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전기 병조참지, 강원도관찰사,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무신.
이칭
백윤(伯胤)
시호
무열(武烈)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467년(세조 13)
사망 연도
1510년(중종 5)
본관
순천(順天)
주요 관직
선전관|병조참지|강원도관찰사|우의정
정의
조선전기 병조참지, 강원도관찰사,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무신.
개설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백윤(伯胤). 할아버지는 부지돈녕부사(副知敦寧府事) 박거소(朴去踈)이고, 아버지는 적개좌리공신(敵愾佐理功臣) 박중선(朴仲善)이며, 어머니는 행호군(行護軍) 허균(許稛)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공신 가문에서 태어나 주1로 호군(護軍)이 되고, 1486년 선전관(宣傳官)에 올랐다. 이 해 무과에 급제하면서 성종의 특별한 관심을 받았다. 1492년 승정원동부승지로 발탁되자 사헌부에서 나이도 어린데다가 무과 출신에게 주3의 3품직을 제수할 수 없다고 이의를 제기해 서경(署經)을 보류하자, 성종이 다시 공조참의로 발령하였다. 이에 대해 사헌부가 다시 반대하자 병조참지로 임명하였다.

그 뒤 연산군의 특명으로 동부승지 · 우부승지 · 우승지 · 좌승지를 역임하면서, 재정의 긴축 문제 등 주2을 건의해 실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점차 연산군의 미움을 받아 1500년(연산군 6) 평안도병마절도사로 좌천되었다가, 곧 동지중추부사 · 한성부우윤을 역임하고, 1502년 평성군(平城君)에 봉해졌다.

이어 강원도관찰사 · 동지의금부사를 역임하고 1506년 경기관찰사로 나갔다가 연산군의 미움을 받아 주4되었다. 마침내 1506년 성희안(成希顔) · 유순정(柳順汀) 등과 함께 반정(反正)을 모의해 연산군을 폐하고 중종을 옹립하였다. 그 공으로 정국공신(靖國功臣) 1등으로 우의정이 되고 평원부원군(平原府院君)으로 진봉(進奉)되었다.

좌의정을 거쳐 1507년 이과(李顆)의 옥사(獄事)를 다스린 공으로 정난공신(定難功臣) 1등이 되고 이듬해 사은사(謝恩使)주5에 다녀왔다. 그리고 대간들의 탄핵이 지나치다라고 건의해 이를 견제했으며, 이우증(李友曾) · 조윤손(曺潤孫) · 이순(李珣) 등을 천거해 임용시키기도 하였다.

1509년 왜적이 제주도 공마선(貢馬船)을 약탈하자, 이를 문책하기 위해 대마도(對馬島)에 경차관(敬差官)을 파견하자고 건의하였다. 또한 전라도 조운(漕運)선 40여 척이 파선, 침몰하자 해운을 폐기하고 육지 운송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같은 해 영의정에 올랐고 이듬해 평성부원군(平城府院君)에 봉해졌다.

무신 출신이었지만 문장을 즐겼고 서화를 좋아해 수집에 힘썼다. 중종 묘정에 주6되었다. 시호는 무열(武烈)이다.

참고문헌

『성종실록(成宗實錄)』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
『중종실록(中宗實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이락정집(二樂亭集)』
『해동명신전(海東名臣傳)』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해동잡록(海東雜錄)』
『대동기문(大東奇聞)』
주석
주1

조상의 덕으로 벼슬을 얻음. 또는 그 벼슬. 우리말샘

주2

당시 해결해야할 긴급한 정책 과제

주3

양반 가운데 ‘문반’을 달리 이르던 말. 궁중의 조회 때 문관은 동쪽에, 무관은 서쪽에 벌여 선 데서 나온 말이다. 우리말샘

주4

죄를 지은 자의 벼슬과 품계를 빼앗고 벼슬아치의 명부에서 그 이름을 지우던 일. 우리말샘

주5

1368년에 주원장이 강남(江南)에서 일어나 원(元)을 북쪽으로 몰아내고 세운 중국의 통일 왕조. 영락제 때 난징(南京)에서 베이징으로 도읍을 옮기고 몽고와 남해에 원정하여 전성기를 이루었으나, 뒤에 북로남왜에 시달리고 환관의 전횡과 당쟁, 농민의 반란이 끊이지 않아 1644년에 이자성(李自成)에게 망하였다. 우리말샘

주6

공신의 신주를 종묘에 모시는 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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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최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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