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평숙(平叔), 호는 금석(錦石). 아버지는 공주판관 박사석(朴師錫)이며, 어머니는 기계유씨(杞溪兪氏)로 유수기(兪受基)의 딸이다. 김양행(金亮行)의 문인이다.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하여 육경(六經)과 백가(百家)의 글에 두루 통달하였으며, 맏형 박윤원(朴胤源)과 함께 서로 학문을 강론하였다. 1786년(정조 10) 사마시에 합격하고, 그 이듬해 박준원의 제3녀가 수빈(綏嬪)으로 뽑히자, 건원릉참봉(健元陵參奉)을 거쳐 사복시주부(司僕寺主簿)·공조좌랑·보은현감이 되었다.
1790년에 수빈이 원자(元子: 후일의 순조)를 낳자 박준원은 호산(護産)의 노고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라 호조참의에 임명되었고, 항상 대궐 안에 머물면서 원자를 보호하고 보도(輔導)하였다.
1800년에 순조가 즉위하자 수렴청정하던 정순왕후(貞純王后)에 의하여 호조·형조·공조의 판서와 금위대장(禁衛大將) 등 삼영(三營)의 병권(兵權)을 8년 동안 잡았다. 여주에 있는 신도비(神道碑)는 순조가 친히 지은 것이다.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헌(忠獻)이다.
저서로는 『금석집(錦石集)』 12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