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야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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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에 전승되고 있는 탈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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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부산광역시 수영구 수영동에 전승되고 있는 탈놀이.
내용

부산광역시 남구 수영동에 전승되고 있는 탈놀이. 1971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수영에서는 탈놀이를 ‘들놀음’·‘들놀이’라고 하여 한자로 ‘야류(野遊)’라 표기하며, ‘야루’라고 부르고 있다.

그 유래는 약 200년 전 좌수영수사(左水營水使)가 초계(草溪) 밤마리(지금의 합천군 덕곡면 율지리)의 대광대[竹廣大]패를 데려다가 연희(演戱)시킨 데서 비롯되었다고도 하며, 또는 수영사람이 큰 장터인 밤마리에 가서 보고온 뒤 시작되어 그 뒤 동래와 부산진에 전파되었다고도 한다.

연희 직후 가면을 소각해버렸을 뿐 아니라 대사나 기타의 문서가 남아 있지 않으므로 정확한 발생연대는 알 수 없지만, 좌수영에 관아가 있던 조선 후기에 상연되던 것이 1930년대에 단절되었다가 광복 직후 부활되어 현재까지 재연되고 있다. 고증자는 수양반역의 최한복(崔漢福)과 말뚝이역의 조두영(趙斗榮)·태명준(太明俊) 등이다.

이 놀이는 음력 정월대보름날 산신제(山神祭)와 함께 행해지는데, 수영고적민속보존회가 주관하고 있다. 전에는 수영에 있던 야류계(野遊稧)가 주동이 되어 음력 정월 3, 4일경부터 지신밟기[乞粒]를 하는데, 각 가정마다 성주풀이·조왕풀이·장독풀이·샘풀이·마구풀이·도장풀이·뒷간풀이·대문풀이 등으로 13일경까지 계속하며 경비를 마련한다.

또 이 기간에 가면·의상·도구 등도 제작하여 탈제[假面祭]를 지낸다. 14일 밤에는 시박[試瓠: 각자 연습한 연기를 원로들에게 심사 받고 배역을 확정받는 일]을 가진다.

그 중 수양반과 말뚝이는 능란한 재담과 춤에 능한 자가 뽑히고, 배역이 결정되면 보름날 낮에 분장을 한 수양반이 풍물을 대동하고 제상을 차려 산신제를 거행한다.

맨 먼저 수영 토신과 영내 수호자인 독신(纛神)을 모신 제당에 제례하고 다음에 먼물샘[遠水井]에 우물고사를 지내고 마지막으로 최영(崔瑩) 장군의 묘제(廟祭)를 지낸다.

이러한 산신제는 오랜 전통의 동제의 한 전승이기도 하다. 산신제를 지내는 동안 야류계에서는 놀이판인 넓은 마당 한가운데 장간(長竿)을 세우고 제등을 달아 장식한다.

이 놀이의 내용은 전·후편으로 구별되는데 전편은 길놀이[行列]와 군무(群舞) 및 잡희(雜戱)로 이루어지고, 후편은 탈놀음이다.

① 길놀이와 군무: 해지기를 기다리던 마을사람들은 미리 준비해 둔 소등(小燈) 약 200여 개를 가지고 연희장에서 1㎞쯤 떨어진 먼물샘 근처에 모여서 행렬준비를 한다. 마을 어린이들로 이루어진 소등대를 앞세우고 풍악대·길군악대·팔선녀·사자 또는 우마(牛馬)를 탄 수양반과 난봉가패·양산도패가 가장(假裝)·가무·연등의 화려한 대행렬로 놀이판에 도착하면 농악대와 남녀노소 모두 군무의 일원으로서 즐긴다.

② 탈놀음: 모두들 흥이 나서 군무를 즐길 때 수양반이 등장하면 놀이는 탈놀음으로 바뀐다. 난무하던 군중들은 점차 퇴장하고 뒤이어 차양반(次兩班, 또는 지차양반)·셋째양반·넷째양반·종가도령의 오광대가 순서대로 등장하면 그들 앞에 악사가 자리잡고 탈놀음을 시작한다.

제1과장(科場: 마당)은 ‘양반’으로 주로 말뚝이와 수양반의 대담으로 엮어진다. 무식한 하인 말뚝이가 독설과 음흉하고도 신랄한 풍자로써 양반의 이면상을 폭로하며, 양반계급의 무능과 허세를 조롱하고 계급타파와 인권의 해방을 절규한다.

말뚝이가 마지막 대사에서 수양반의 대부인 마누라와 간통하였음을 폭로하면, 양반들은 “망했네 망했네 양반의 집이 망했네.”를 연창하고 해산타령을 부른다.

제2과장은 ‘영노’이다. 양반과장에서 양반에 대한 도전에 만족하지 않고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괴물인 영노가 수양반을 잡아먹는다. 이것은 양반과장에서 통쾌한 조롱과 야유에도 만족하지 못한 울분의 노골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제3과장은 ‘할미·영감’인데, 봉건사회의 일부다처제에 따르는 가정불화를 주제로 하여 처첩의 삼각관계로 인한 가정비극과 곤궁상을 나타낸 것이다.

제4과장은 ‘사자무’로서 사자와 범이 격투를 하다가 범이 사자에게 잡혀 먹히는 무언극이다. 이 사자춤은 타지방과는 달리 수영의 지세에 연유하고 있다. 수영 동남쪽에 백산(白山)이 있는데 그 형상이 마치 사자가 마을을 등지고 달아나는 모양이기 때문에, 그 사자신[山神]을 위로하기 위하여 범을 공물로 바치는 것이라 한다.

이 사자춤도 타지방의 것처럼 원래 구나(驅儺)의 샤먼적 색채를 가지고 있었으나 점차 민속예능적 오락으로 바뀐 듯하다. 사자무를 마치면 연희는 모두 끝나게 되어 배역들은 고사를 지내고 가면을 소각하면서 제액과 만사형통의 행운을 축원한다.

이와 같은 「수영야류」는 다른 탈놀음에 비하여 몇 가지 특색을 가지고 있다. ① 전체 4과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진주·고성·통영지방의 탈놀음이 5과장, 마산·해주·봉산지방의 탈놀음이 7과장, 양주가 8과장, 강령이 10과장, 하회가 12과장인 데 비하여, 「수영야류」는 4과장으로 가장 짧다. 또 이와 함께 「수영야류」에는 문둥이과장이 없는 대신 사자무가 있는 것이 주목할만하다.

② 양반과장에 영노과장을 직결시켜 양반계급을 끝까지 괴롭히는 것은 수영지방의 서민의식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③ 연희의식절차에 가면제나 가면소각절차, 가면신성시사상, 부락수호신에 대한 고사 등 원시민족사회의 습속과 유사한 점이 많다.

④ 가면수가 타지방의 가면수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적다. 즉, 수양반·차양반·셋째양반·넷째양반·종가도령·말뚝이·영노·할미·제대각시·사자·범 등 11개로 다른 지방의 가면수(봉산 36, 해주 15, 강령 15, 송파 33, 하회 14, 통영 31, 가산 30, 진주 21 등)에 비하여 적다.

또 영노과장 중의 비비양반가면은 따로 없이 셋째양반·넷째양반 가면으로 대치하며, 의원·봉사·향도군·마을사람들은 가면이 없이 등장한다.

⑤ 악기는 꽹과리·징·장구·북이며, 가락은 ‘움박캥캥’이라고 하는 굿거리장단과 타령장단에 덧뵈기춤이 주를 이룬다. 1999년 현재 기예능보유자는 윤수만(尹守萬: 악사)·김달봉(金達鳳: 영노)·태덕수(太德守: 수양반) 등이다.

참고문헌

『한국의 가면극』(이두현, 일지사, 1979)
『야유오광대』(강용권, 형설출판사, 1977)
『오광대·야유가면극 해제』(최상수, 한국민속학회, 1957)
「수영야유극」(강용권,『국어국문학』27, 1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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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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