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야류는 부산광역시 수영구 일대에서 전승되는 가면극이다. 1860~70년대부터 전승되기 시작하였으며, 전체 4과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근의 야류와 오광대처럼 합천밤마리 대광대패의 오광대 공연의 영향이 컸다. 1971년에 국가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수영야류(水營野遊)는 부산광역시 남구 수영동 일대에서 전승되는 가면극으로 보존회 회관은 수영동 수영공원 내에 있다. 광안리 바닷가와 인접해 있는 수영공원은 과거 경상 좌수영이 있던 곳으로 현재는 그 지역의 휴식 공간이며 용맹한 사람들을 기리는 사당 등이 주변에 있다. 수영야류는 1971년에 국가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유래는 약 200년 전 좌수영 수사가 초계밤마리의 대광대(竹廣大)패를 데려다가 연희시킨 데서 비롯되었다고도 하며, 또는 수영 사람이 큰 장터인 밤마리에 가서 보고온 뒤 시작되어 그 뒤 동래와 주28에 전파되었다고도 한다. 정확한 발생 연대는 알 수 없지만, 1860~70년대부터 연행된 것으로 증언된다. 1930년대에 단절되었다가 광복 직후 부활되어 현재까지 재연되고 있다.
수영야류는 음력 정월 대보름날 아침 당산제를 지내는 의례부터 시작된다. 송씨당, 최영 장군 사당, 먼물샘 3곳에서 당산제를 지낸다. 당산제를 지내는 행렬이 수영야류의 길놀이이다. 현재는 보존회 공연 마당에서 출발하여 인근의 우물과 팔도 시장, 최영 장군 사당, 보존회 마당 입구에 있는 송씨당에 길놀이 풍물로 의례를 올린다.
길놀이는 수영야류 깃발, 대형 청사초롱, 호적악사, 남문등, 주2, 용등, 봉등, 작은 청사초롱, 주3, 팔선녀, 연희패, 주4, 청사초롱, 길군악 등의 순으로 행진하였으나 현재는 깃발, 풍물패, 팔선녀, 연희패만 행진한다. 수영고적민속보존회가 주관한다.
지금은 번화한 도심이 되었지만 1960년대까지 수영동 일대는 주5 농촌이었고 바다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었다. 지금은 큰 건물들이 바다를 가로 막고 있어 바다가 가까이 있다는 느낌을 갖지 못한다. 농촌이 도시화 되면서 수영야류는 수영공원 내로 들어가 보존회를 중심으로 연희된다.
제1과장 양반과장의 시작은 수양반, 차양반, 셋째양반, 넷째양반, 종가도령 등 다섯 양반들의 춤으로 시작된다. 춤은 굿거리 반주에 맞춰 양팔배김사위, 외팔배김사위, 좌우감는사위, 주12, 주13 등을 춘다. 이 춤들은 움직임이 작은 사위로 구성된다. 팔과 다리를 움직이되 빠르지 않게 움직인다. 팔을 벌리되 넓지 않게 벌리고 위로 올리되 뻗지 않고 적당한 높이로 올린다. 다리도 벌리되 넓지 않게 벌리고 도약하되 도약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조금만 도약한다. 양반의 춤은 정적 느낌이 강한 춤이다. 정적 움직임을 통해 양반의 권위를 드러내려는 것으로 보인다. 역동적으로 움직이거나 활달하게 움직이는 동작은 점잖지 못하고 양반답지 못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벌리되 넓지 않게, 높이되 적당한 높이로 올리는 양반의 춤과 함께 연기되는 수양반의 대사는 한자투가 많으며 단가나 타령같은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대신된다. 수양반의 대사가 가장 많은데 대사는 주14를 늘어 놓거나 중국의 역사나 절경으로 꼽히는 곳의 풍경 묘사도 포함된다. 수양반이 대사를 주로 주도하며 다른 양반들의 대사는 사건을 만들어가는 내용은 없고 수양반의 대사에 주15처럼 반응하는 정도다. 양반들은 단가와 타령을 부르기도 한다.
수양반은 과거를 보러 가야 한다며 함께 갈 말뚝이를 부르자고 한다. 말뚝이는 여러 번 불러야 등장하는데 등장하면서부터 분위기를 주도한다. 양반은 뒤늦게 등장한 말뚝이를 나무란다. 그러자 말뚝이는 자신이 양반을 찾으러 여러 곳을 다녔다는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갔던 곳에서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늘어놓는다. 팔선녀도 만나고 양반의 부인도 만났다고 한다. 말뚝이에 따르면 자신이 양반집에 들어갔더니 ‘마님’이 ‘오르라’고 하여 올랐다고 한다. 화려한 장식의 안방에서 주16를 놓고 일배일배부일배 하다보니 주17이 밝더라면서 주18 대사를 늘어놓는다. 수양반은 주19으로 어쩔 줄 몰라 하지만 다른 양반들은 이런 상황에 관심 없는 듯 다른 행동을 하기도 한다. 이어 양반들이 “망했네 망했네 양반의 집이 망했네.”를 연창하고 해산 주20을 부른다.
제2과장은 영노과장이다. 양반과장에서 양반에 대한 도전에 만족하지 않고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괴물인 영노가 수양반을 잡아먹으려 한다. 수양반은 자신이 양반이라며 호통친다. 하지만 영노는 ‘참양반’이라면 물러나겠다고 하지만 수양반은 어쩔 줄 몰라 당황하는 사이 영노는 수양반을 끌고 퇴장한다.
제3과장은 할미 · 영감과장이다. 주21의 할미가 등장하여 여기 저기를 살피다가 주저 앉아 주22을 간단히 한 다음 일어나 영감을 찾으러 다닌다. 이때 영감이 등장한다. 서로 만나 반가워 어쩔 줄 모른다. 어느 탈놀이에서나 영감 · 할미가 등장하여 서로를 찾다가 만나게 되는데 만나는 순간 엉덩이를 부딪치는데 이는 성적 상징이다. 영감은 오랫동안 집을 비웠다가 귀가했는데 첩을 동반했다. 영감이 집을 비운 사이 할미 혼자 아이 세 명을 양육했다. 할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이 세 명은 모두 죽었다. 영감은 아이의 죽음이 할미 때문이라고 강하게 질책한다. 가족과 가정을 돌보지 않은 가장의 책임은 찾아볼 수 없다.
할미와 영감은 만나자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영감이 데리고 나타난 제대각시 때문에 할미는 순간 질투의 몸서리를 친다. 이어 영감은 자식의 소식을 묻는다. 할미는 자식들이 모두 죽었다고 한다. 자식들 사망 소식에 영감은 할미를 타박하고 할미는 죽는다. 영감은 의원을 불러 할미를 살리고자 노력하지만 할미는 회생하지 못한다. 이어 장례가 치러진다. 주23과 운아 등을 앞세운 상여가 주24 속에서 마당을 한 바퀴 도는 것으로 장례는 치러진다.
제4과장은 사자무과장이다. 사자와 범이 격투를 하다가 범이 사자에게 잡혀 먹힌다. 수영의 무속 의식이 반영된 과장으로 수영 동남쪽에 백산(白山)이 있는데 그 형상이 마치 사자가 마을을 등지고 달아나는 모양이기 때문에, 그 사자신을 위로하기 위하여 범을 공물로 바치는 것이라 한다. 사자무를 마치면 연희는 모두 끝나게 된다. 각 배역들은 고사를 지내고 가면을 소각하면서 제액과 주25의 행운을 축원한다.
수영야류에는 문둥이과장이 없다. 반주 악기는 꽹과리, 징, 장구, 북이며, 가락은 주26과 타령장단이 주를 이룬다. 탈은 바가지로 만든다. 본 공연 시작 전에 주27를 지내며 공연을 마친 뒤에 탈을 소각하는 의식을 치른다. 실제 소각은 이뤄지지 않는다.
수영야류의 양반들은 봉건제적 체제 속에서 누렸던 절대 권위를 상실한 인물들이다. 하인인 말뚝이에게 조롱을 당해도 징벌은커녕 변화된 자신들의 위상을 한탄할 뿐이다. 봉건제적 체제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양반들의 위상은 추락하여 이전의 권위를 누리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위상이 변화된 상황에서 양반들의 내면은 어떠할까. 양반들은 권위 상실에 대한 아픔과 고통으로 인해 병적 행동을 하거나 과거의 권위를 그리워하는 허상 쫓기에 집착한다.
수영야류의 영감은 본처 할미를 두고 제대각시랑 놀아나는 상황에서 외적으로는 드러내지는 않으나 내면으로는 도덕적 불안을 느낀다. 그 결과 영감은 할미를 강하게 타박한다. 세 명의 자식을 잃은 일 때문에 할미를 강하게 타박하지만 내면에는 자신의 도덕적 불안 때문에 자아 방어의 투사를 작동시킨다. 그래서 영감은 자신의 비도덕적 행위를 자신의 잘못이 아닌 할미의 잘못 즉 자아 불안을 외부의 탓으로 돌리는 행위를 하여 할미를 강하게 질책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