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 청강리 고분군 ( )

고대사
유적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에 있는 삼국시대 구덩식돌덧널무덤 · 앞트기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이칭
이칭
청강리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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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에 있는 삼국시대 구덩식돌덧널무덤 · 앞트기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개설

청강리고분군은 1980년대 초 항아리와 긴목항아리 등 토기 4점과 주조쇠도끼 2점, 단조쇠도끼 2점이 국립경주박물관에 신고되면서 학계에 알려졌다. 이후 몇차례의 지표조사를 통해 수백 기의 소형고분이 밀집되어 있음이 확인되었다. 이 고분군의 전체범위는 해발 282m의 양달산에서 동북쪽으로 뻗어난 구릉의 해발 110m 정도의 정상부에서부터 구릉 말단부까지에 해당한다. 1997년에는 초등학교 부지조성을 위해 부산광역시립박물관에 의해 정식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이후 2002년과 2005년에 두 차례에 걸쳐 추가 발굴조사가 진행되어 이 고분군의 성격과 묘제의 변천이 밝혀졌다.

내용

이 고분군은 일제시대부터 도굴을 당했으며, 파괴된 무덤을 통해 살펴본 구조는 장방형의 깬돌이나 자연석으로 벽을 쌓아올려 만든 구덩식돌덧널무덤〔竪穴式石槨墓〕이 대부분이다. 구릉의 낮은 곳에는 일부 덧널무덤〔木槨墓〕도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석벽을 마련하지 않고 바로 땅을 파내고 시신을 넣거나 널〔棺〕을 넣도록 마련된 움무덤〔土壙墓〕도 확인되었다.

1997년 정식으로 발굴조사된 지역은 전체 고분군의 가장자리에 해당한다. 이 발굴조사에서는 구덩식돌덧널무덤 17기, 성격 불명의 유구 2기가 확인되었다. 17기의 구덩식돌덧널무덤 중 2기는 돌덧널 내부에 이음독〔合口式甕棺〕이 있는 것이다. 이 고분군의 구덩식돌덧널무덤의 가장 큰 특징은 유물부장용 구덩이가 바닥에 만들어진 것이다. 돌덧널 내부의 바닥은 최하단식보다 낮게 만든 것이 특징이며, 주검받침돌〔屍床石〕의 형태에 따라 이것을 깔지 않은 것, 잔 자갈을 깐 것, 큰 깬돌을 깐 것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주변에 흩어져 수집된 유물은 가야토기조각으로서 그릇의 종류를 알 수 있는 것으로는 굽다리접시〔高杯〕, 둥근바닥항아리〔圓底壺〕, 긴목항아리〔長頸壺〕등이 있다. 출토유물로 보아 구덩식돌덧널무덤의 중심연대는 5세기 말∼6세기 전반으로 추정된다.

2002년 발굴조사에서는 1997년도 조사지로부터 남동쪽으로 120m정도 떨어진 구릉에서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후반에 걸친 35기의 고분이 조사되었다. 대부분 내부구조가 앞트기식돌방무덤〔橫口式石室墳〕으로 밝혀졌다. 아울러 2005년의 조사에서는 해발 100∼130m의 능선 일대에서 모두 45기의 삼국시대 고분이 확인되었다. 덧널무덤 42기, 독무덤 2기, 구덩식돌덧널무덤 2기로서 덧널무덤이 주요 묘제였음을 알 수 있다. 덧널 안에서 짧은목항아리〔短頸壺〕·바리모양그릇받침〔鉢形器臺〕등이 출토되었는데, 출토유물로 보아 덧널무덤은 4세기 전반∼5세기 전반까지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양산지역은 4∼5세기초까지 대개 김해·부산지역의 토기문화권에 속하지만 5세기 전반대가 되면 신라계 토기문화가 급속하게 이입되기 시작하여 이때부터 서서히 신라권에 편입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양상은 유물과 묘제의 변화에서 비슷하게 나타난다.

지금까지 3차례의 발굴조사에 의해 청강리고분군은 4세기 전반∼7세기 후반까지 지속적으로 조성되었음이 확인되었다. 아울러 이 고분군은 덧널무덤→구덩식돌덧널무덤→앞트기식돌방무덤으로 묘제가 변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자료로서 중요하다.

참고문헌

『한국고고학전문사전-고분편-』(국립문화재연구소, 2009)
『한국고고학사전』(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문화유적총람』(문화재관리국, 1977)
「양산지역의 고분문화」(정징원,『한국문화연구』3, 부산대학교 한국문화연구소, 1990)
「기장 청강리고분군」(부산광역시립박물관, 1998)
「문화유적조사서」(동아대학교박물관,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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