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지정면적 5만 5015㎡. 한 묘역 안에 영휘원과 숭인원이 있다. 이곳에는 고종의 비인 명성황후 민씨(明成皇后閔氏)의 능인 홍릉(洪陵)이 있었다. 1919년 고종이 죽었을 때 경기도 양주군 미금면 금곡리(현 남양주시 금곡동)로 천장(遷葬: 묘를 옮김.)되었다. 이런 연유로 이곳은 ‘홍릉’이라 불리고 있다.
영휘원은 조선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의 사친(私親)인 순헌귀비 엄씨의 원소(園所: 왕가 산소의 다른 이름)이다. 순헌귀비는 증찬성 진삼(鎭三)의 딸로 1854년(철종 5)에 태어나 1859년에 입궁해 민비가 을미사변으로 시해당하자 아관파천(俄館播遷) 때 고종을 시봉(侍奉)하였으며, 1897년 영왕을 낳고 1903년 귀비로 책봉되었다.
엄귀비는 양정의숙 · 진명여학교 · 명신여학교의 설립에 참여하는 등 근대 여성교육 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며, 1911년 7월에 죽었다. 같은 해 8월에 안장하고 원호(園號)를 영휘라고 하였으며, 위패는 덕수궁 영복당(永福堂)에 봉안되었다가 경복궁 서북 측에 있는 칠궁(七宮)으로 이안(移安)되었다.
숭인원은 영친왕과 이방자(李方子) 사이에서 태어난 진(晋)의 원소이다. 진은 1921년 8월에 태어나 그 이듬해 5월에 죽었다.
두 원의 묘역시설로는 곡장(曲牆: 무덤 뒤에 둘러싼 작은 담) · 상설(象設, 石虎 · 石馬) · 혼유석(魂遊石) · 장명등(長明燈) · 망주석(望柱石) · 문인석(文人石) · 무인석(武人石) · 석마(石馬) · 홍살문(紅箭門) · 정자각(丁字閣) · 비각(碑閣) · 제실(祭室) · 우물[靈泉] · 사초지(莎草地: 오래 되거나 허물어진 곳을 떼로 잘 입혀 다듬은 곳) 등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다.
담장 밖 북쪽에는 세종대왕기념사업회관(世宗大王紀念事業會館)이 있으며, 구영릉(舊英陵, 서울 서초구 內谷洞 獻仁陵)에서 수습해온 신도비(神道碑)와 능호석(陵護石) 등이 전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