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지성(知性)』 가을호(통권 2호)에 발표되었다. 전쟁으로 인하여 고향을 잃어버리고 월남해야 하였던 실향민들의 고달픈 삶과 현실적 갈등·비애 등을 잔잔한 필치로 묘사한 작품이다.
‘성대령’은 고향 선배인 ‘춘봉’과 함께 지프차를 타고 ‘김선생’을 만나러 출발한다. 30년 전 초등학교 시절의 은사였던 김선생은 광복 직후 좌익운동에 가담하였으나 이후 전향하여 지금은 시골에서 살고 있다. 최근에 김선생과 같이 지내기로 하였다는 춘봉이 성대령에게 김선생을 찾아가 보자고 한 것이다. 춘봉은 우익 청년단에 가입하여 맹렬한 활동도 하였던 사람이다.
차를 타고 가면서 두 사람은 과거의 회고담을 나눈다. 그것은 대개 테러·삐라·메시지·집회·모함 등으로 이어지는 광복 직후의 혼란된 정치 상황에 관한 것과 두 사람이 6·25 때 참여하였던 특수부대의 추억 등이다. 김선생은 광복 후 공산당 대표로 연설까지 하였으며, 이후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면서 전향·월남하여 지금은 시골에서 처자식을 데리고 오리를 키워보려고 한다는 것이다.
성대령은 마을에 도착하자 억지로 지서 앞에 차를 멈추게 하고 지서 순경에게 자신을 소개한 뒤, 마을 입구에서도 경적을 울리라고 강요하다시피 하는 춘봉에게 당혹감을 느낀다. 김선생과 만나서 술상을 마주한 성대령은 춘봉이 데려오는 마을 사람과 인사를 나누면서 이 자리에 필요한 것은 자신보다 자신의 계급장이라는 것을 느낀다. 춘봉의 말에 의하면 10평 정도 되는 땅의 임자가 오리를 키우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세 사람은 만취하도록 술잔을 기울인다. 「아리랑」을 합창하던 성대령은 세 사람이 공통되게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이런 서글픈 가락밖에 없는가 생각하며 술에 취하여 쓰러진다. 이튿날 사정 이야기를 하고 땅 주인에게 승낙을 얻어낸 성대령은 쓸쓸한 기분을 느끼며 마을을 떠난다. 김선생과 춘봉은 고개 위에까지 나와 성대령을 배웅한다.
이 소설은 이념에 의한 선험적·도식성의 한계점을 현실과의 갈등 속에서 잔잔히 그려 보이는 동시에 실향민의 애환을 묘사하고 있다. 오리를 키우는 일에 얽혀 있는 이해관계와 그 속에서 야기되는 여러 가지 모순점들이, 김선생과 춘봉의 삶, 그리고 성대령의 계급장을 통한 상징대립구조에 의하여 어떻게 나타나며 또 해소되어지는가 하는 부분에 주목할 수 있다. 작자 자신의 경험적 요소도 유추하여낼 수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