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전은 15~16세기에 걸쳐 크게 성장하다가 양난을 거치면서 위축되었다. 시전 거리가 다시 활성화된 것은 전란의 여파가 수습되면서부터였다. 특히 17세기 이후 대동법이 시행되면서 각종 물품을 서울 시장에서 조달하는 경우가 많아짐에 따라 시전의 규모는 전보다 더욱 확대되었다.
시전 규모의 확대는 특히 17세기 후반~18세기 전반에 두드러졌다. 문외미전, 서강미전, 마포미전, 외 어물전, 계아전, 남초전, 문외우전, 문외상전 등 상당수의 시전이 이때 신설되었다. 신설 시전이 계속해서 설치됨에 따라 1630년대에 30여 개에 불과하던 시전의 규모는 18세기 말에는 120여 개로 늘어났다.
시전 규모의 확대는 자연스럽게 새로운 장행랑을 형성하였다. 기존의 중심 시전 거리였던 종루시전 외에 남대문 밖의 칠패(七牌) 시장과 도성 내 어의동에 이현(梨峴) 시장이 만들어졌다. 종루시전, 칠패, 이현 등 3개 시장은 당시 삼대시(三大市)로 지칭되었다. 한편 조선 후기 시전 상권은 한강을 중심으로도 발달하고 있었다. 한강의 각 포구를 중심으로 선박업과 상거래가 확대되면서 마포, 용산, 서강 등에 새로운 시전 거리가 형성되었다.
조선 후기에 서울의 상업 규모가 확대됨에 따라 새로운 장행랑이 형성되었던 한편, 시전 사이에 갈등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본래 시전은 금난전권(禁亂廛權) 바탕으로 판매 품종을 독점하였는데 다양한 시전들이 도성 안팎과 한강 인근에 생기면서 비슷한 물종을 취급하는 경우가 발생하였다. 이로 인하여 난전(亂廛)과 시전 사이에 갈등이 야기됨과 동시에 시전들 사이에도 서로의 취급 물종을 두고 다투는 경우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