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행랑 ()

목차
관련 정보
조선시대사
제도
조선시대, 수도 서울의 시전(市廛) 거리.
제도/법령·제도
제정 시기
1412년(태종 12)
시행 시기
조선시대
내용 요약

장행랑(長行廊)은 조선시대, 수도 서울의 시전(市廛) 거리이다. 조선 초기 태종 대에 서울에 시전 거리 조성 사업에 따라 만들어졌다. 이후 양난의 여파로 축소된 시전 거리는 17세기 대동법(大同法)을 실시하면서 활기를 되찾았다. 상업 거래는 오히려 더욱 확대되었는데, 이에 따라 도성 안팎에는 기존의 종루 시전 외에 칠패(七牌)와 이현(梨峴) 시장이 형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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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수도 서울의 시전(市廛) 거리.
내용

조선시대에 서울에는 왕실 및 중앙 아문과 도성민의 수요품을 공급할 목적으로 시전(市廛)이 설치되었다. 한양 천도 후 1412년(태종 12)부터 조정에서는 시전 주1 조성 사업을 추진하였는데, 1414년(태종 14)까지 총 2,027여 칸의 행랑이 만들어졌다. 시전 행랑이 있었던 구간은 경복궁 남쪽 혜정교에서 종묘 앞 누각까지, 종루에서 주2까지였다. 이와 같은 시전 거리를 장행랑(長行廊)이라 칭하였다.

변천사항

서울 시전은 15~16세기에 걸쳐 크게 성장하다가 양난을 거치면서 위축되었다. 시전 거리가 다시 활성화된 것은 전란의 여파가 수습되면서부터였다. 특히 17세기 이후 대동법이 시행되면서 각종 물품을 서울 시장에서 조달하는 경우가 많아짐에 따라 시전의 규모는 전보다 더욱 확대되었다.

시전 규모의 확대는 특히 17세기 후반~18세기 전반에 두드러졌다. 주3, 서강미전, 마포미전, 외 어물전, 계아전, 주4, 주5, 문외상전 등 상당수의 시전이 이때 신설되었다. 신설 시전이 계속해서 설치됨에 따라 1630년대에 30여 개에 불과하던 시전의 규모는 18세기 말에는 120여 개로 늘어났다.

시전 규모의 확대는 자연스럽게 새로운 장행랑을 형성하였다. 기존의 중심 시전 거리였던 종루시전 외에 남대문 밖의 칠패(七牌) 시장과 도성 내 어의동에 이현(梨峴) 시장이 만들어졌다. 종루시전, 칠패, 이현 등 3개 시장은 당시 삼대시(三大市)로 지칭되었다. 한편 조선 후기 시전 상권은 한강을 중심으로도 발달하고 있었다. 한강의 각 포구를 중심으로 선박업과 상거래가 확대되면서 마포, 용산, 서강 등에 새로운 시전 거리가 형성되었다.

조선 후기에 서울의 상업 규모가 확대됨에 따라 새로운 장행랑이 형성되었던 한편, 시전 사이에 갈등도 빈번하게 일어났다. 본래 시전은 금난전권(禁亂廛權) 바탕으로 판매 품종을 독점하였는데 다양한 시전들이 도성 안팎과 한강 인근에 생기면서 비슷한 물종을 취급하는 경우가 발생하였다. 이로 인하여 난전(亂廛)과 시전 사이에 갈등이 야기됨과 동시에 시전들 사이에도 서로의 취급 물종을 두고 다투는 경우가 많았다.

참고문헌

원전

『만기요람(萬機要覽)』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단행본

고동환, 『조선시대 시전상업 연구』(지식산업사, 2013)
변광석, 『조선후기 시전상인 연구』(혜안, 2001)
고동환, 『조선후기 서울상업발달사연구』(지식산업사, 1998)
주석
주1

조선 시대에, 서울의 큰 거리 양쪽에 줄지어 세운 상점. 특히 종로(鍾路)의 육주비전이 유명하였다.    바로가기

주2

서울특별시의 청계천에 놓여 있던 다리. 조선 시대 태조 때에 흙으로 만들었다가 폭우로 유실되어, 태종 10년(1410)에 돌로 다시 축조하였다. 1910년에 전차 선로 공사로 매몰되었다가 2005년에 복원되었다.    우리말샘

주3

쌀과 그 밖의 곡식을 파는 가게.    우리말샘

주4

조선 시대의 시전 중에서 담배를 팔던 가게.    우리말샘

주5

소를 사고파는 장.    우리말샘

집필자
최주희(덕성여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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