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화(林和)가 주동이 된 조선문화건설중앙협의회(朝鮮文化建設中央協議會)와 프로예술연맹의 통합 조직인 조선문학가동맹에 대항하여 문화를 옹호 · 육성하기 위하여 1946년 3월에 발족하였다.
회장에 정인보(鄭寅普), 부회장에 박종화(朴鍾和) · 채동선(蔡東鮮) · 설의식(薛義植), 총무에 이헌구(李軒求) · 김광섭(金珖燮) · 이하윤(異河潤) · 오종식(吳宗植), 분과위원장단에 안호상(安浩相, 학술) · 이선근(李瑄根, 언론) · 안석주(安碩柱, 연예) · 이종우(李鍾禹, 미술) · 김진섭(金晋燮, 문학) · 이흥렬(李興烈, 음악) · 현정주(玄正柱, 체육) 등이 뽑혔다.
원래 중앙문화협회가 주동이 되어 여기에 다시 안호상 · 도상봉(都相鳳) · 채동선 · 정인보 · 김범부(金凡父) · 이병도(李丙燾) · 이관구(李寬求) · 윤백남(尹白南) · 김동인(金東仁) · 이희승(李熙昇) · 손진태(孫晋泰) · 안종화(安鍾和) · 조윤제(趙潤濟) · 장덕조(張德祚) · 김계숙(金桂淑) · 고재욱(高在旭) · 김준연(金俊淵) · 임병철(林炳哲), 그밖에 학계 · 언론계 등 각계각층의 문필가들이 가세하여 약 200여 명으로 구성되었다.
이것은 좌우익의 격렬한 대립 속에서 우익 진영 문필가의 더 많은 참여와 역량의 집결을 목적으로 발족한 것이다. 좌익 진영에서는 임화가 서기장으로 취임한 전국적 문화 단체인 문화건설중앙협의회와 이에 불만이었던 전국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이 근본적으로는 같은 정치적 목표를 지향하고 있었다. 아마도 남조선노동당(南朝鮮勞動黨)의 지령에 의하여 합동총회를 열고, 여기에서 문학가동맹(文學家同盟) 등이 결성된 것이다.
전조선문필가협회는 좌익 진영의 조직이 이와 같이 확대 · 통합 · 발전의 양상을 띠게 됨으로써 더욱 자극을 받고 발족된 것이며, 여기에서 “혼돈된 시대에 처하여 태극기 깃발 아래 공의(公意)를 형성하여 인류의 공통된 민족국가 이념 위에 역사가 중단되었던 조국을 재건하고 국민문화를 꽃피우기 위하여 진정한 민주주의 문화를 건설하려 한다.”는 것을 강령으로 내세웠다.
이 단체의 영향으로 그해 4월 조선청년문학가협회(朝鮮靑年文學家協會)가 결성되었다. 그리고 또 다시 1947년 2월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全國文化團體總聯合會)로 통합 · 발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