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이름이나 골 이름[洞名] 혹은 인명을 새긴다거나 하는 것을 통틀어 말한다. 제각의 목적은 뚜렷하게 돌이나 나무에 새겨 모든 사람에게 알리되 무엇보다도 오래도록 인상깊게 하고자 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궁궐이나 절의 문이나 전각 및 대사(臺榭: 누각과 정자)에 붙이는 액자(額字)가 있으며, 돌에 새기는 것으로는 비석의 제목을 크게 새기는 비액(碑額)과, 경치 좋은 자연경관의 특징을 나타내기 위하여 골짜기나 봉우리의 이름을 새기는 것, 인명을 새기는 제명(題名) 등을 들 수 있다.
어떠한 제각도 당대 명필의 글씨를 골라 새겼고, 문장이나 명칭이 모두 후세에까지 전할 수 있는 아름답고 우아한 내용이다. 제각은 나무나 돌에 새기는 것이 원칙이나, 각석(刻石)의 경우 대체로 마애각석(摩崖刻石)이라 하여 자연석에 새기는 예가 많다.
그리고 각자(刻字)의 자수(字數)는 일정하지 않으며 서체에 있어서도 각체(各體)를 모두 쓰고 있다. 그러나 대체로 자수가 적고 전서(篆書)보다는 예서(隷書)가 많고 해서(楷書) 내지 행서(行書)·초서(草書)의 각석도 적지 않다.
제각으로 오래된 것은, 신라의 최치원서(崔致遠書), 각석으로 합천 해인사 앞 홍류동(紅流洞)과 하동 쌍계사(雙磎寺) 앞 쌍계동문(雙磎洞門) 등이 있고, 반구대(盤龜臺)의 각석 중에도 제각이 있다. 고구려의 평양고성(平壤故城) 각석도 제각에 들 수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양사언(楊士彦)·이이(李珥)·한호(韓濩)·송시열(宋時烈)·김수증(金壽增)·김학순(金學淳)·이광사(李匡師)·김인희(金仁喜) 등 명가들의 필적이 많이 남아 있다.
석각으로 석조(石糟)나 석함(石函) 등 석기명(石器銘)은 흔하지 않으나 석상(石床) 주위에도 제각하는 예가 많으며, 각자된 문장내용에는 신선이나 풍류에 관한 것들이 많아서 속세를 벗어나고 싶어하는 인물들의 유적이 많다. 역대제왕의 어필(御筆)이나 중국 명현의 필적을 돌에 새기는 것이 있는데 송나라 주희(朱熹)가 쓴 ‘백세청풍(百世淸風)’비가 유명하다.
이상 제각의 유적을 연대순으로 정리하여보면 삼국시대의 것으로 남해의 서불제명석각(徐市題名石刻), 고성의 술랑제명석각(述郎題名石刻), 평양의 고구려 성벽석각(城壁石刻)이 있다. 통일신라 이후의 각석은 함안방어산석각(防禦山石刻, 경상남도 함안군 죽남면 하림리 방어산 제2봉암봉, 楷書, 801), 신응암수중석각(神凝庵水中石刻,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洗耳嵒, 楷書),
야유암석각(夜遊巖石刻,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면 원북리 야유암, 草書), 단속사동동구석각(斷俗寺東洞口石刻,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운리 廣濟嵒門, 楷書), 월영대석각(月影臺石刻,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월영도 월영대, 楷書), 체필암석각(체筆巖石刻,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부원리, 崔致遠詩, 宋時烈書, 조선 중기), 영랑연단석구각자(永郎鍊丹石臼刻字, 강원도 강릉시 자하곡하대시동, 隷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