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강원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종래 일명사지(逸名寺址)로만 알려져 ‘수항리사지’라고 불려져 왔으나, 1983년 ‘太白谷 水多寺(태백곡 수다사)’ 등의 명문(銘文) 기와가 습득되어 이곳이 수다사지(水多寺址)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삼국유사》〈자장정률 慈藏定律〉 조(條)에 자장이 말년에 서울 즉 경주를 떠나 수다사에서 여생을 보냈다는 기록으로 보아 7세기 중엽에 창건된 것으로 추측되나, 이 때 자장은 이미 세력을 잃은 상태였고 당시의 유물도 보이지 않으므로 초창기의 이 절은 아직 제대로 규모를 갖추지 못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현재 남아 있는 유물도 고려 초기의 것이 대부분이다.
《삼국유사》〈대산오만진신 臺山五萬眞身〉 및 〈대산월정사오류성중 臺山月精寺五類聖衆〉 조에 ‘수다사장로유연(水多寺長老有緣)’이란 인물이 보인다. 법천사지광국사현묘탑비(法泉寺智光國師玄妙塔碑)에 따르면 지광국사해린(海麟)도 11세기 초에 이 절에서 10년간 주지(住持)로 있었다.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 朝鮮寶物古蹟調査資料》(1942)에 따르면 이 절터에 삼층석탑 1기 및 석불 3구와 당간지주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석탑 및 주초석(柱礎石)만 제 자리에 남아 있다.
석탑은 현재 기단부와 사리공(舍利孔)이 팬 1층 옥신(屋身)까지 잘 남아 있고, 그 위에 옥개석이 두 조각으로 나뉘어 얹혀 있다. 기단부와 1층 옥신 사이에 별석(別石) 2매(枚)가 삽입되어 있다. 당간지주는 옛 수항초등학교 교정에 옮겨져 있다.
1987년 이곳에서 청동반자(靑銅飯子)와 청동촛대가 경작 도중 발견되었다. 촛대에는 ‘大定二十八年戊申三月日造水多寺講堂燭臺重一斤六兩 弟子 安序(대정28년술신삼월일조수다사강당촉대중1근6량 제자 안서)’라 새겨져 있는데, 대정 28년은 서기 1188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