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李光洙)가 지은 장편소설. 1932년 4월 12일부터 1933년 7월 10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되었고, 그 뒤 1953년 한성도서주식회사에서 단행본으로 간행하였다. 작자가 동아일보 편집국장 시절에 귀농(歸農)운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연재한 작품이다. 허숭이라는 농촌 출신의 변호사와 서울의 대부호인 윤 참판댁 딸과의 혼인으로 소설이 시작된다.
이 두 인물간에 내재한 삶의 방식이나 태도가 근본적 차이를 보임으로써 갈등이 표출된다. 이 작품에 나타나는 표층적 줄거리는 허숭과 정선간의 애정갈등이지만, 그 이면에 감추어진 의미는 조선혼의 발견이요, 민족정신의 고취라고 할 수 있다. 허숭이 가정과 재산, 그리고 사회적 지위를 버리고 고향인 살여울로 들어간 것은 살여울을 민족주의 실현에 있어서 중간 단계의 모델 마을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는 작자의 정신적 지주였던 안창호(安昌浩)가 주창한 이상촌(理想村) 건설의 구현이기도 하다. 이광수는 수양동우회와 통속교육보급회의 중심 인물로서 농촌계몽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전국적으로 1면 1개의 개량 촌락을 완성하여 농민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것을 민족주의운동의 기초적 활동으로 생각하였다.
이 작품의 주인공 허숭이 살여울을 위하여 농업협동조합·농촌야학교 등을 세워 헌신한 뒤, 살여울보다 더 궁벽한 검불랑이라는 곳으로 들어가 농촌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상촌 건설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초창기에 작자는 신문화운동의 구호 아래 반봉건·반유교적인 극단주의자의 위치에 서서 철저한 도덕적 개조와 풍속개량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장년에 이르러서 쓴 이 작품에서는 경박한 외래 문화로 도금된 신지식인들을 오히려 경계하였다. <흙>은 당시 시대 분위기였던 조선심(朝鮮心)의 재발견과 조선적인 운동의 복구라는 시각에서 창작된 것이다.
이 작품이 오늘날까지도 여러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이것이 단순히 삼각관계의 연애이야기라거나 일제강점기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민족정신을 실천하기 위한 귀농운동을 소재로 하였다는 점에 한정되지 않는다.
감동을 주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허숭의 숭고한 인품을 통하여 형성되는 감화력 때문인 것이다. 이야기가 진전되는 가운데 허숭과 적대되는 인물들도 허숭의 인격적인 가치에 감화되어 새롭게 변화한다.
<흙>은 결국, 이 시대의 이기적인 사이비지식인들이 인과응보에 따른 죄의 값을 치른 후 허숭의 숭고한 인격-종교적인 사랑과 용서, 인내와 실천, 봉사 등-에 의하여 구원되는 재생적인 심층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작자는 톨스토이처럼 도시를 죄와 악의 소굴로 보는 대신에 소박하고 단순한 농민 속에서 참된 인간성을 찾으려 하였다.
도시에서 환기되는 죄와 악에 맞서 싸우기보다는 농촌공동체가 내포한 순박한 인간성으로 무조건 용서하고 사랑하며 무저항주의로 나감으로써 참다운 승리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 이 작품의 골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