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공영화는 냉전시대에 반공산주의를 주제로 하여 만들어진 영화이다.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환멸을 느끼게 하고 남한 체제의 우월성을 인식시킨다는 점에서는 선전영화로도 분류할 수 있다. 한형모의 「성벽을 뚫고」(1949)는 반공영화가 널리 퍼지는 계기를 마련했다. 1950년대 반공영화의 대표작으로는 한형모의 「운명의 손」(1954)과 이강천의 「피아골」(1955)이 있다. 1960년대에는 반공영화의 편수가 증가하고 내용도 다양화되었다. 반공영화는 한국전쟁과 분단이라는 특수한 역사에서 발생한 한시적 영화 장르라고 할 수 있다.
반공영화는 해방 이후 좌익과 우익의 대립 그리고 한국전쟁 이후의 냉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반공산주의를 내용으로 하여 만든 영화이다. 분단과 관련된 영화라는 점에서 분단영화의 하위분류라고 볼 수도 있다. 특히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환멸을 느끼게 하고 남한체제의 우월성을 인식시킨다는 점에서는 선전영화로도 분류할 수 있다.
해방이 되자 영화인들도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사회적 갈등을 재연하였고, 신탁통치, 1947년 제주 4·3사건, 1948년 여순사건을 통해 남한에서는 반공이 더욱 강화되었다. 1949년 남한에서의 공산주의 활동이 전면 금지되면서 남한에 있던 좌파계 영화인들은 모두 월북했다. 한편 북한지역에 있던 영화인들이 남하하면서 이들을 통해 북한의 변화가 전해지고, 이를 토대로 반공영화가 등장하게 되었다. 1949년에 나온 일련의 영화 「전우」(감독: 홍개명), 「성벽을 뚫고」(감독: 한형모), 「나라를 위하여」(감독: 안종화), 「북한의 실정」(감독: 이창근), 「무너진 삼팔선」(감독: 윤봉춘) 등이 초기 반공영화이다. 특히 북한지역에 영화사(현재 조선예술영화촬영소 자리)를 가지고 있었던 이창근은 북한상황을 담은 필름을 가져와 편집하여 영화로 만들었다. 초기 반공영화 중 한형모의 「성벽을 뚫고」는 여순사건을 주제로 다루어 큰 반향을 일으키며 반공영화가 널리 퍼지는 계기를 마련했다.
한국전쟁으로 ‘반공’은 정부의 국정원칙이 되었다. 이에 따라 반공의식을 고무하는 반공영화의 제작이 독려되었다. 간첩영화의 효시인 한형모의 「운명의 손」(1954), 빨치산을 스크린에 등장시킨 이강천의 「피아골」(1955)이 전후 1950년대 반공영화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가운데 「피아골」은 반공영화이면서 빨치산을 휴머니즘적으로 묘사하고 결말을 모호하게 처리해 반공 휴머니즘 영화로 평가되고 있는데, 결국 상영 정지처분을 받아 마지막 장면에 태극기를 덧입혀 빨치산이 자유대한의 품에 안긴다는 뜻을 명확히 하여 재상영했다.
1960년대 이후 반공영화의 제작은 더욱 활성화되었다. 1966년 제5회 대종상시상식에서 우수반공영화상이 신설되었고, 1967년 제2차 영화법 개정을 통해 반공영화제작쿼터제가 실시되어 제작을 독려하였다. 당시 정부는 외국에 수출한 한국영화와 우수반공영화를 제작한 회사에 외화 수입쿼터 1편을 할당해주었기 때문에, 영화제작사는 흥행이 되는 외화수입 할당을 받기 위해 경쟁적으로 반공영화를 제작하였다. 제3차 영화법 개정은 외화수입쿼터를 반공영화에만 한정하였고 이것은 1987년까지 지속되었다.
1960년대에는 반공영화의 편수만 증가한 것이 아니라 반공영화의 내용도 다양화되었다. 1950년대까지는 한국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오락으로 다뤄지기 어려웠으나, 1960년대가 되면서 전쟁스펙터클, 간첩영화, 국제첩보영화 등으로 여러 가지 주제를 다루게 되었다. 그 결과 이만희의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 신상옥의 「빨간 마후라」(1964)는 그 해 최고의 흥행작이 되기도 했다.
1970년대에는 정권유지 차원에서 반공이 국시가 되고 반공영화제작을 정부가 적극 지원하면서 초대형 반공전쟁물이 만들어졌다. 당시의 대표작으로는 「증언」(1970), 「들국화는 피었는데」(1974), 「낙동강은 흐르는가」(1976), 「장마」(1979) 등이 있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부터 반공영화가 정형화되면서 차츰 관객들의 외면을 받아 1986년에는 반공영화가 한편도 만들어지지 않았고 우수 반공영화상도 없어졌다. 또한 1990년대 들어 전 세계적으로 냉전이 해체되면서 반공이데올로기에 대한 검토와 함께 반공영화는 분단영화의 하위 장르로 포섭되었다.
반공영화는 반공(反共), 멸공(滅共), 승공(勝共)을 주제로 하여 공산주의를 반휴머니즘적이고 개인과 자유를 억압하는 이데올로기로 규정하고 있다. 또한 영화 내용에는 공산당을 침략도발자, 비인적 존재, 매국노로 재현하여 관람객에게 공산주의와 공산당에 대한 분노, 적개심, 경계심을 갖게 하였다. 그리고 국군이나 연합군은 자유를 수호하고 인간을 사랑하며 민간인을 보호하는 중립적인 법과 같은 존재로 재현하여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선전하는 효과를 낳았다.
이제 반공영화는 분단과 관련해 생긴 이산가족, 전쟁, 간첩, 전투와 전우애, 분단이데올로기 등을 다루는 영화인 분단영화의 하위범주로 여겨진다. 하지만 냉전의 해체와 남북관계의 변화에 따라 현재 노골적인 반공영화는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반공영화는 한국전쟁과 분단이라는 한국의 특수한 역사에서 발생한 한시적 영화장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