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 상경성1호절터는 1930년대 일본 조사단에 의해 조사된 상경성의 절터 가운데 하나로, 1939년 간행된 『동경발해국상경용천부의 발굴조사(東京城渤海國上京龍泉府の發掘調査)』의 전도(全圖)에서는 ‘Ⅹ’로 번호가 붙여졌다. 1960년대 북한과 중국의 공동조사단인 조중공동고고발굴대(朝中共同考古發掘隊)의 조사에서 ‘1’로 번호가 붙여졌다. 사찰은 상경성 주작대로 동편 2호 절터인 흥륭사와 같은 선상에 있으며, 제1호가와 제7호가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다.
1960년대 조사에서는 금당(정전)만이 조사되었다. 이 금당은 본전과 그 양쪽에 딸린 방이 기단으로 연결되어 있는 ‘凸’형이다. 본전과 딸린 방 전체의 기단 동서 너비는 50.66m이고, 본전의 너비는 23.68m이다. 본전의 남북 너비는 20m이고, 딸린 방은 동일하게 9.3m이다. 기단은 황갈색 흙을 다져 쌓았고, 중간에는 깨진 기와편, 재 등이 섞여 있다. 본전의 남쪽 면에는 두 개의 계단을 설치하였고, 북쪽의 정중앙에는 한 개의 계단을 두었다.
본전에는 28개의 초석이 남아 있고, 초석의 배열로 정면 5칸, 측면 4칸의 건물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내부에 안칸이 구분되어 있는 ‘回’형 겹실 구조이다. 안칸은 정면 3칸, 측면 2칸이며 동서 길이 10.74m, 남북 길이 7.16m이다. 안칸은 겉칸보다 바닥 높이가 높으며, 안칸 대부분은 남쪽으로 트인 ‘凹’형의 불단으로 이뤄져 있다. 불단에는 9개의 대좌석이 있고 중앙 본존불의 대좌석이 가장 크며 8각형을 이룬다. 불단 남쪽에서 북쪽으로 들어간 부분은 예불을 하는 곳이다.
유물로는 본전 불단 위에서 소형 동불의 손 1점과 진흙 소상 잔편들이 발견되었다. 금당 주변과 안에서는 녹유치미(綠釉鴟尾)와 녹유귀와(綠釉鬼瓦), 자유귀와(紫釉鬼瓦), 평기와, 자기편, 갑옷편, 자물쇠, 쇠못, 쇠조각편 등이 발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