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특혁부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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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
유적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혼춘시(珲春市) 삼가자향(三家子鄕) 고성촌(古城村)에 있는 고구려 · 발해 시기의 성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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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혼춘시(珲春市) 삼가자향(三家子鄕) 고성촌(古城村)에 있는 고구려 · 발해 시기의 성곽.
내용

온특혁부성은 평탄한 훈춘하의 충적평원 위에 흙을 다져 축조하였으며, 평면형태는 사다리꼴이다. 북쪽의 성벽은 비우성(斐優城)의 남벽을 수축하면서 파괴되었고, 비우성과 하나로 연결되어 함께 자매성으로 불린다.

온특혁부성은 동서 성벽의 길이가 각각 710m, 남벽은 381m, 북벽은 468m이며, 전체 둘레는 2,269m이다. 성벽의 남은 높이는 2~3m이고, 각루와 치, 옹성 등의 방어시설은 보이지 않는다. 성안과 밖에서는 오래전부터 고구려와 발해 시기의 기와와 도기 조각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기와는 회색기와와 홍갈색기와가 있으며 구운 상태가 비교적 좋고 재질이 단단하다. 기와 무늬는 새끼줄무늬, 자리무늬, 그물무늬 등이 있다. 도기편은 니질회도(泥質灰陶)가 주를 이루며, 모두 물레로 성형한 것이다.

『훈춘현문물지(琿春縣文物志)』 등에 따르면, 근대에 이뤄진 조사에서 수면와당(獸面瓦當)과 팔련성에서 출토된 것과 유사한 연꽃무늬 와당이 성안에서 출토되었다. 고성 일부에서 실시한 단층 조사에서는 0.4~1m에 달하는 문화층이 확인되었고, 그 안에서 발해 시기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 기와편과 도기편이 가장 많이 나왔다. 성안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 특이한 것으로는 쇠로 만든 도가니가 있다. 시기를 확정할 수는 없지만, 어느 시기엔가 금속을 녹이는 야련 작업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온특혁부성은 고구려 시기의 전형적인 특징을 가진 기와편이 많이 발견되고 있어, 성이 처음 축조된 시기는 고구려로 보고 있다. 그러나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은 그 안에서 고구려 기와뿐만 아니라 발해 시기의 것도 많이 확인되고 있어, 발해시기에 다시 성벽을 쌓은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온특혁부성은 그 위치와 규모로 인해 고구려의 책성으로 비정되고 있다. 인근의 군사적 성격이 강한 산성인 살기성과는 달리 온특혁부성은 규모가 상당히 큰 평지성으로 행정중심지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점과 고구려 책성 지역에 설치되었다고 하는 팔련성이 성의 북쪽 5㎞ 거리에 있다는 점 등이 근거가 된다. 이성은 발해시기에는 중요한 주성(州城)의 하나로 이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동경 용원부에 속한 경주(慶州)로 비정되고 있다. 온특혁부성이라는 이름은 금나라 통문수(通門水: 지금의 두만강)에 있던 여진 온적흔부(溫迪痕部)에서 유래되었다.

참고문헌

『발해 유적 사전』(구난희‧이병건‧정석배‧백종오‧김진광‧전현실‧김진한, 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15)
『渤海遺跡』(朱國枕·朱威, 文物出版社, 2002)
『琿春縣文物志』(吉林省文物志编委会, 1984)
「中國吉林省琿春市三家子鄕古城村渤海溫特赫部古城址」(王禹浪‧王宏北, 『高句麗‧渤海古城址硏究滙編(下)』, 哈爾濱出版社, 1994)
집필자
권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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