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밀성의 이름은 19세기 말 『길림통지(吉林通志)』에 보이며, 1930년대 중국 고고학자 리원신[李文信]이 현지조사를 하고 작성한 『소밀성답사기(蘇密城踏査記)』를 통해 발해성터로 처음 인식되었다. 이후 발해 15부(府) 중 하나인 장령부(長嶺府) 터로 추정되고 있다. 소밀성의 북쪽은 산들이 감싸고 있고, 남쪽은 지세가 평탄하다. 동쪽에서 북쪽으로는 휘발하가 흐른다.
소밀성은 외성과 내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외성의 평면은 남북으로 조금 긴 장방형에 가깝다. 동벽의 길이는 697m, 서벽은 747m, 남벽은 535m, 북벽은 341m이며, 전체 둘레는 2,590m이다. 성벽의 높이는 3~4m이고, 기단부 너비는 약 7m, 상부 너비는 70㎝ 정도이다. 성벽은 돌로 기단을 쌓고 흙을 다져서 만들었다. 외성의 동서남북 네 면에는 성문이 하나씩 있는데, 북문은 북쪽 성벽 일부와 함께 강물로 파괴되었다. 외성의 남문과 서문에는 옹성이 설치되어 있으며, 북문과 동문의 옹성은 현재 남아 있지 않다. 외성의 네 모서리에는 각기 각루를 세웠던 흔적이 보인다. 외성 밖으로는 성을 방어하기 위해 해자를 이중으로 둘렀는데, 이를 통해 이 성의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내성은 외성의 중앙에 위치하며, 평면은 정방형이다. 동벽의 길이는 337m, 서벽은 369m, 남벽은 334m, 북벽은 341m이며, 전체 둘레는 1,381m이다. 성벽은 판축을 하였고, 북벽의 높이는 2.6m, 기단부 너비는 약 7m, 상부 너비는 60㎝이다. 내성은 동문과 서문이 있다. 성의 네 모서리는 성벽보다 약간 높은데, 부근에 깨진 벽돌과 기와편이 흩어져 있어 각루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소밀성의 건물지는 마을 형성과 경작으로 파괴되어, 정확한 상황을 확인하기 힘들다. 1930년대에 내성의 동북쪽과 동남쪽, 서남쪽, 외성 서남쪽 모서리 등에서 건물지가 조사된 적이 있다.
소밀성 안의 지표면에서는 발해와 요금(遼金) 시기의 유물이 많이 발견되었다. 특히 손가락을 비스듬하게 눌러 장식한 암키와와 꽃무늬 와당 및 벽돌 등은 발해 상경성과 동경성에서 발견되는 것과 유사하여 주목된다. 소밀성은 그 구조와 축조방식, 성 안에서 발견된 유물의 특징을 통해 발해 시기에 축조되어 요금대까지 사용한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