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일통상장정 기념연회도는 1883년(고종 20) 조선과 일본이 조일통상장정(朝日通商章程)을 체결한 후 열린 연회를 도화서 화원 안중식(安中植)이 그린 기록화이다. 식탁을 중심으로 총 12인의 참석자들이 그려져 있다. 화면 왼쪽에 혼자 앉은 조선 측 전권대신 민영목(閔泳穆), 그 좌우에 일본 측 전권대신 다케조에(竹添進一郎)와 묄렌도르프(Möllendorf, 穆麟德) 등이 그려져 있다. 이 작품은 화면 좌측을 상석으로 배치한 점, 서양식 음식과 기물들이 차려진 점에서 조선 말기 기록화에 서양의 문물이 도입되던 모습을 잘 보여 준다.
조일통상장정 기념연회도(朝日通商章程 記念宴會圖)는 1883년(고종 20) 조선과 일본이 조일통상장정(朝日通商章程)을 체결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제작한 기록화이다.
조일통상장정 기념연회도(朝日通商章程 記念宴會圖)에는 아무런 배경이 없는 화면에 음식이 차려진 큰 식탁이 놓여 있고 총 12인의 통상 장정 관련자들이 참석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화면 왼쪽에 혼자 앉은 사람이 조선 측의 전권대신인 독판교섭통상사무(督辦交涉通商事務) 민영목(閔泳穆, 1826~1884)이고, 바로 아래쪽 옆에 그려진 사람이 일본 측 전권대신인 판리공사(辦理公使) 다케조에[竹添進一郎]로 알려져 있다. 민영목의 위쪽 옆에 그려진 인물은 통상 장정 체결에 도움을 준 조선 정부의 재정 고문 독일인 묄렌도르프(Möllendorf, 穆麟德)이다. 묄렌도르프가 앉은 위쪽의 5인 중 가장 오른쪽의 여성은 그의 부인으로 추정된다. 연회에는 이 밖에 민영익, 김옥균, 홍영식 등이 참여하였음을 당대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또 아랫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여성은 조선의 연회에 꼭 참여하던 기생으로 보인다.
연회도(宴會圖)는 조선시대의 기록화의 전통 속에서 오래전부터 그려졌다. 그런데 조선시대 연회도는 대개 건물 내부나 차일 속에 사람들이 앉아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비해 이 작품은 아무런 배경도 없이 연회 장면만 그려진 점이 특이하다. 또 조선시대 연회도는 위쪽이 북쪽으로 상석(上席)이 되고, 아래쪽 남쪽 방향으로 좌우로 줄지어 좌석이 배치되는 데 비해 이 작품은 화면 좌측을 상석으로 배치하였다. 또 조선시대 연회도는 대개 부감법(俯瞰法)으로 위에서 내려다 보듯이 그려지는데 이 작품은 전체 장면을 약간 위에서 비스듬이 바라보듯이 현실적으로 그린 점이 다르다.
이 작품에서 또 주목되는 점은 식탁 위에 차려진 서양식 음식과 기물들이다. 그림에는 한 사람당 나이프와 포크가 하나씩, 스푼 3개, 양념병, 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와인잔들, 위스키나 진, 포도주가 담겼을 도자기 술주전자, 육각 뚜껑이 달린 사발 등이 놓여 있다. 그런데 한편 식탁 중앙에는 그릇 위에 높이 쌓아 올린 조선의 전통 과자가 있어 서양식 위주의 식탁에 전통 조선 음식을 부분적으로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일통상장정 기념연회도는 조선 말기 서양의 문물이 도입되던 시기에 전통적인 기록화에 자주 나오던 연회도가 새롭게 변모하는 모습을 잘 보여 준다. 화면 위쪽을 북쪽 상석으로 하고, 부감시(俯瞰視)로 그려지던 전통적 연회도가 화면 왼쪽을 상석으로 하는 현실적, 사실적 화풍으로 바뀐 것이다. 이런 사실적 변화는 음식과 식기들의 내용에도 잘 드러나 있다. 서양식 식기와 음식 위주로 차려진 식탁은 조선 말에 불어닥친 서구 문화의 모습을 잘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식탁 위에는 여전히 높이 쌓아 올린 조선식 전통 음식이 등장하고, 중요 참석자인 묄렌도르프의 부부를 따로 떼어 부인을 먼 쪽으로 배치한 점, 전통 연회에 등장하던 기생을 등장시킨 점 등에서는 여전히 조선의 전통적 인식을 드러내 보인다.
한편 이 작품은 조선 말기의 도화서(圖畫署) 화원 안중식(安中植, 1861~1919)의 23세 때 작품인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안중식은 1881년(고종 18) 영선사(領選使) 연수생으로 중국에 다녀왔는데, 이 작품은 그 직후에 그려진 것으로 그가 중국서 새롭게 접한 서양 문물의 영향이 드러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