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남이흥(南以興, 1576∼1627)은 조선 중기 무인으로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 포도대장, 충청도 · 경상도 병마절도사, 구성 · 안주목사를 지냈다. 1623년 인조반정에 연루되었으나 장만(張晩)의 변호로 무사했다.
이괄(李适)의 난 때는 도원수 장만의 휘하에서 공을 세워 연안부사가 되고 진무공신 일등에 책록되어 의춘군(宜春君)에 봉해졌다. 정묘호란 때 안주에 나가 후금과 싸웠으나 승산이 없자 성에 불을 지르고 뛰어들어 자결하였다.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원래 경기도 성남에 있었으나 광주대단지 조성 때인 1971년 7월에 현 위치로 이전하게 되었다. 주변에 장군과 아버지 남유의 위패를 모신 사당(忠壯祠)과 정려, 재실이 있다.
묘소 일원은 2개의 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단에는 부실(副室)인 연안 김씨와 후손들의 묘가 위치하고 있다. 상단에는 왼쪽에 아버지인 남유 장군, 오른쪽에 남이흥 장군의 묘가 있다.
남이흥 장군의 묘는 하동 정씨와 합장묘로 하부에 호석을 설치하였다. 봉분 앞에는 묘비와 상석, 망주석, 문인석, 장명등을 갖추었다. 묘비는 화려한 반룡(蟠龍)이 새겨진 이수를 가지고 있다. 남유 장군의 묘도 남이흥 장군 묘와 상설이 유사하다. 하지만 묘비에 간결한 형태의 가첨석을 설치한 차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