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해주(海州). 부산에서 소설가 오영수(吳永壽)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1970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하였으나 사회참여적인 목판화 작업에 주력하였다.
서울대학교 재학시절인 1969년 김윤수(金潤洙), 김지하(金芝河), 오경환(吳京煥), 임세택(林世澤)과 함께 『현실동인전』을 준비했으나 학교 교수들과 보안당국에 의해 제지당하여 무산되고 1970년 여름학기에 졸업하였다.
군대를 제대한 후인 1972년부터 1975년까지는 경기도 고양시 내유동과 일산, 그리고 경주에서 테라코타 작업을 하면서 전통미술을 연구하였다. 이 시기 서울 상업은행 구의동 지점 실내 테라코타 부조벽화와 동대문 지점 외벽의 테라코타 부조벽화를 제작하였다.
1976년에는 서울 수유동 가오리에 작업실을 열고 이듬해부터 선화예술학교에서 조소를 가르치기 시작했으며, 다수의 책표지와 삽화를 제작하였다.
1979년 ‘현실과 발언’ 발기인으로 참여하였고, 1980년 서울의 동산방화랑에서 제1회 『현실과 발언 동인전』에 마케팅 연작을 발표하였다. 1981년에는 제2회 『현실과 발언 동인전-도시와 시각전-』에 가족연작을 출품하는 등 현실과 발언 동인전에 작품을 꾸준히 출품하며 민중미술 운동에 참여하였다.
1983년까지는 거의 흑백 목판화로 일관하였으나 1984년부터는 흑백 판화의 고수에서 벗어나 간결한 장식적 색상을 도입한 작업으로 표현 이미지를 새롭게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1985년에는 대형 걸개그림인 「통일대원도」를 제작하였다. 그러나 이듬해 지병인 간경화가 악화되어 요절하였다.
오윤의 판화작품은 초기의 「낫을 든 사람」, 「헐벗은 사람」 등의 연작으로부터 1970년대의 「지리산」, 「탈춤」, 「할머니」, 1980년대의 「동학」, 「농부와 아들」, 「여공」, 「지옥도」 등 빈민 계층과 농민의 삶을 소재로 삼은 것이 많았고, 이밖에 「대지」, 「봄의 소리」 등은 자연 사랑과 민담 · 설화 및 현대 한국사의 단면들을 주제로 삼은 작품들도 있다. 또 김지하(金芝河)의 담시집(譚詩集) 『오적(五賊)』과 이원수(李元壽)의 전래 동화집 『땅속나라 도둑귀신』의 판화 삽화와 표지화를 비롯하여 정치적 민주화 운동 및 투쟁을 지원한 포스터와 대형 걸개그림을 제작하기도 하였다. 동인지 『현실과 발언』(1985)에는 오윤의 미술의식을 서술한 「미술적 상상력과 세계의 확대」가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