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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가환(李家煥)

조선시대사인물

 조선후기 광주부윤, 개성유수,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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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조선후기 광주부윤, 개성유수, 형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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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개설
본관은 여주(驪州). 자는 정조(廷藻), 호는 금대(錦帶)·정헌(貞軒). 이익(李瀷)의 종손으로, 증조는 이명진(李明鎭)이다. 할아버지는 이침(李沉), 아버지는 이용휴(李用休)이며, 어머니는 유헌장(柳憲章)의 딸이다. 천주교인 이승훈(李承薰)의 외숙이다. 학문적 교우로는 정약용(丁若鏞)·이벽(李檗)·권철신(權哲身) 등 초기 천주교 신자가 많았다.
영역닫기영역열기생애 및 활동사항
1771년(영조 47) 진사가 되고, 1777년(정조 1) 증광 문과에 을과로 급제, 1780년 비인현감이 되었다.
1784년 생질인 이승훈이 북경에서 돌아오고 동료 학자들이 서학에 관심을 가졌을 때, 천주교에 대한 학문상의 관심과 우려로 이벽과 논쟁을 벌이다가 도리어 설득되어 천주교인이 되었다. 이벽으로부터 서학 입문서와 『성년광익(聖年廣益)』 등을 빌려 탐독하고, 제자들에게도 전교하는 열렬한 신자가 되었다.
그러나 1791년 신해박해 때에는 교리 연구를 중단하고, 광주부윤(廣州府尹)으로서 천주교를 탄압하였다. 그 뒤 대사성·개성유수·형조판서를 지냈고, 1795년주문모(周文謨) 신부의 입국사건에 연루되어 충주목사로 좌천되었다. 그곳에서도 천주교인을 탄압하다가 파직되었다. 그 뒤 다시 천주교를 연구해 1801년이승훈·권철신 등과 함께 옥사로 순교하였다.
정조로부터 ‘정학사(貞學士)’라 호칭될 만큼 대학자였다. 특히 천문학과 수학에 정통해, 스스로 “내가 죽으면 이 나라에 수학의 맥이 끊어지겠다.”라고 할 만큼 수학의 대가였다. 저서로는 『금대유고』가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7년)
김옥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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