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한양(漢陽). 일명 광좌(光佐). 자는 계량(季良). 호는 매곡(晦谷). 도총제 조모(趙慕)의 증손으로, 군수 조훈(趙勳)의 아들이다.
1507년(중종 2)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이 해 성균관유생으로서 박경(朴耕)·김공저(金公著)의 옥사에 연루되어 투옥되었다.
1518년 형조좌랑, 1519년 지평(持平)이 되어 “중종반정시 공신으로 책봉된 자 중에 공이 없이 책봉되어 녹을 받고 있는 자가 매우 많으니, 지금 용단을 내려 가려내지 않으면 뒤에 폐단이 많을 것이다.”라고 간언하였으나 “공의 유무를 다시 확인하기가 어려울 뿐 아니라 이미 공신으로 정하여진 바를 고친다는 것은 옳지 않다.”는 하답으로 거절당하였다.
기묘사화 때 조광조(趙光祖)의 붕당으로 몰려 삭직되었고, 1521년 신사무옥 때 연루되어 장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