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련 ()

산수도 / 허련
산수도 / 허련
회화
인물
조선후기 「선면산수도」 · 「김정희초상」 등을 그린 화가.
이칭
마힐(摩詰)
소치(小痴), 노치(老痴), 석치(石痴)
이명
허유(許維)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09년(순조 9)
사망 연도
1892년(고종 29)
본관
양천(陽川)
내용 요약

허련은 조선 후기 「선면산수도」·「김정희초상」 등을 그린 화가이다. 초년에는 해남의 윤선도 고택에서 윤두서의 작품을 통하여 전통 화풍을 익혔다. 대흥사 초의의 소개로 1839년 상경하여 김정희 문하에서 서화를 수업하였다. 1846년 헌종에게 그림을 바쳐 궁중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1856년에는 진도에 귀향하여 화실인 운림산방을 마련하고 제작 활동에 몰두했다. 1867년에는 『소치실록』을 저술하였다. 김정희 일파 가운데 남종화풍을 토착화시킨 화가로 지목된다. 다방면의 화재에 능통하였지만 산수화에서 뚜렷한 업적을 남겼다.

목차
정의
조선후기 「선면산수도」 · 「김정희초상」 등을 그린 화가.
개설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마힐(摩詰), 호는 소치(小痴) · 노치(老痴) · 석치(石痴). 이명은 허유(許維). 조희룡(趙熙龍) · 전기(田琦) 등과 함께 김정희 일파(金正喜一派)에 속한다.

중국 당나라 남종화와 수묵 산수화(水墨山水畫)의 효시인 왕유(王維)의 이름을 따라서 ‘허유(許維)’라고 개명(改名)하였고, 마힐은 왕유의 자를 따른 것이다.

허균(許筠)의 후예 가운데 진도에 정착한 허대(許垈)의 후손이다. 그림으로 유명해진 이후 헌종의 배려로 1848년 고부(古阜)의 감시(監試)를 거쳐 친임회시(親任會試) 무과(武科)에 급제하고, 관직은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올랐다.

활동사항

초년에는 해남의 윤선도(尹善道)고택에서 윤두서(尹斗緖)의 작품을 통하여 전통 화풍을 익혔다. 대흥사 초의(草衣)의 소개로 1839년 상경하여 김정희 문하에서 본격적으로 서화를 수업하였다.

김정희로부터 중국 북송(北宋)의 미불(米芾), 원나라 말의 황공망(黃公望)과 예찬(倪瓚), 청나라의 석도(石濤) 등을 배웠다. 그리고 그의 서풍(書風)도 전수받으면서 남종 주1의 필법과 정신을 익혔다.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회화 세계를 구축하여 김정희 일파 가운데 남종화풍을 토착화시킨 화가로 지목된다. 김정희를 통하여 명사들과 폭넓게 교유하였다.

1846년에는 권돈인(權敦仁)의 집에 머무르며 헌종에게 그림을 바쳐 궁중과 인연을 맺게 되었고, 왕과 여러 차례의 접촉을 가졌다. 명류(名流)들과의 만남을 통하여 회화 세계를 풍부하게 하였으며, 남종화의 문기(文氣)와 화경(畫境)을 깊게 하였다.

그와 교우 관계를 가진 인사들로는 해남의 우수사 신관호(申觀浩), 정약용(丁若鏞)의 아들 학연(學淵), 민승호(閔升鎬) · 김흥근(金興根) · 정원용(鄭元容) ·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 · 민영익(閔泳翊) 등이 있다.

만년인 1856년에는 진도에 귀향하여 화실인 운림산방(雲林山房)을 마련하고 제작 활동에 몰두하였다.

1866년에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선면산수도(扇面山水圖)」 등을 남겼다. 그리고 1867년에는 「몽연록(夢緣錄)」 등 『소치실록(小痴實錄)』을 저술하였다. 다방면의 화재에 능통하였지만 산수화에서 뚜렷한 업적을 남겼다.

그의 산수화는 황공망 · 예찬의 구도와 필법을 바탕으로 하였으면서도 붓끝이 갈라진 거친 주2의 자유분방한 필치와 주3의 색감에서 독특하고 개성이 두드러진 화풍을 엿볼 수 있다. 그러한 산수화 외에 진한 먹을 대담하고 능란하게 구사한 사군자 · 모란 · 파초 · 괴석 · 노송 · 연화 그림도 특징적인 개성미를 지녔다.

스승 김정희도 “압록강 동쪽으로 소치를 따를 만한 화가가 없다.”든지, “소치 그림이 내 것보다 낫다.” 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토착화된 화풍은 아들 형(灐)에게 전수되고, 손자 건(楗), 방계인 허백련(許百鍊) 등으로 계승되어 현대 호남 화단의 주축을 이루었다.

유작으로는 「산수도첩(山水圖帖)」 · 「오백장군암도(五百將軍巖圖)」 · 「방예찬죽수계정도(倣倪瓚竹樹溪亭圖)」 · 「방석도산수도(倣石濤山水圖)」 · 「선면산수도(扇面山水圖)」 · 「누각산수도(樓閣山水圖)」 · 「김정희초상(金正喜肖像)」 등이 있다. 이밖에 모란 · 괴석 · 사군자 등 많은 양의 작품이 전한다.

참고문헌

김상엽, 『소치 허련』, 돌베게, 2008
안휘준, 『한국회화사』, 일지사, 1980
허유(許維) 저; 김영호 역, 『소치실록』, 서문당, 1976
김정희 저; 최완수 역, 『추사집』, 현암사, 1976
유복렬 편, 『한국회화대관』, 문교원, 1969
오세창,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 계명구락부, 1928
주석
주1

산수화의 2대 화풍 가운데 학문과 교양을 갖춘 문인들이 비직업적으로 수묵(水墨)과 담채(淡彩)를 써서 내면세계의 표현에 치중한 그림의 경향. 조선 중기 이후의 한국화에 강한 영향을 남겼다.    우리말샘

주2

끝이 거의 다 닳아서 없어진 붓.    우리말샘

주3

엷은 채색.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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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이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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