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수만록 ()

관수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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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문헌
조선후기 학자 우하영이 수원부를 대도시로 건설하기 위한 방안을 조정에 올린 보고서. 건의서.
정의
조선후기 학자 우하영이 수원부를 대도시로 건설하기 위한 방안을 조정에 올린 보고서. 건의서.
편찬/발간 경위

그의 문집인 『천일록(千一錄)』에 2권으로 수록되어 있으며, 내용이 다소 다른 필사본이 별도로 있다. 권상은 수원부의 현재 형편과 규모 변통 논의이고, 권하는 축성 후의 체제 정비 방안과 장용외영을 비롯한 군사 체제의 강화 방안이며 총론 또는 결론을 붙였다. 군사적 요충지로 만들기 위해 별도로 정리한 관방제치삼책(關防制置三策)이 첨부된 필사본도 있다.

내용

권상에서는 수원부의 연혁·지리·산물·생업 등 생활 형편 전반을 개관했고, 축성 방안으로 토성 수축, 승군(僧軍)의 이용을 주장하였다. 또, 주변 군현을 정비해 일부를 수원부로 편입시켜 민호를 2만호로 늘릴 것, 전국 토지의 비옥도에 맞추어 세금을 경감할 것, 정2품 아문에 맞게 군교의 상주 인원을 늘리고 목장 및 둔전을 설치해 재정을 확보하자는 4개항의 방략 등이 중심 내용이다.

권 하에서는 민호를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신역을 줄이고 화폐와 곡식을 확보하는 것이 최선의 방책이라 주장하고, 이에 대한 구체적 실천 방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필사본에 따라 9개 항목에서 17개 항목까지의 차이가 있으나 중심 내용은 일치한다.

3만석의 군량곡을 성내 3창에 배정하는 방안, 감고(監考)들의 농간 제거 방안, 환곡의 운영 방안, 창고의 건설 방법 등이 제시되었다. 또 전화(錢貨) 3만냥을 배정해서 이를 2할의 식리로 운영해 이익을 군비에 충당하는 방안도 제시하였다. 이밖에 백성의 생리(生利)를 위해 소금과 미곡 판매상인을 양성, 이들을 중심으로 자생자(自生者)를 늘리자는 주장은 특이한 견해이다.

이외에 부성 안으로 용주사 및 산성의 곡창을 이전할 것, 관둔전을 부성 주위로 설치하도록 경인(京人)의 토지를 매득할 것, 전국 약환공급권(藥丸供給權)을 제공할 것, 닥나무·뽕나무·옻나무 단지를 조성할 것 등의 방법으로 수원에 재화를 집결시키자고 하였다.

권하의 또 하나의 중요 내용은 36초(哨)의 군총 확충, 성곽의 정비, 독성(禿城)의 철이(撤移), 위법(衛法)으로 편성하고 척법(戚法)으로 통솔할 것, 무예를 익히게 할 것, 순라 제도를 정비할 것 등의 군사체제 정비 방안들이다.

이밖에 다른 필사본에서는 승보시(陞補試)의 설치, 친족 우대나 대리 시험 또는 당색 구분의 폐단 제거 같은 과거제 정비 문제를 다루고 있다. 또한 구포(鳩浦)에 선주인(船主人)을 배치해 상선을 내왕하게 하여 수륙의 대도회를 만들자는 문제를 다루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해서 대진(大鎭)을 구성하고 전곡의 집결, 요역의 경감, 군대의 정예화를 달성해 인민을 자연히 모여들게 하자는 결론을 제시하였다.

의의와 평가

18세기 말기 농촌지식인의 현실 인식과 개혁 방안, 그리고 유통 경제의 발달과 같은 사회 경제 상황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이다.

참고문헌

『정조실록』
『천일록(千一錄)』
「농서소사」(김용섭, 『농서』 1, 1980)
「우하영의 천일록」(정창렬, 『실학연구입문』, 일조각, 1973)
관련 미디어 (3)
집필자
박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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