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불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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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5년 김형렬(金亨烈)이 창시한 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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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15년 김형렬(金亨烈)이 창시한 종교.
내용

증산교(甑山敎)의 일파이다.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모악산 금강대(金剛臺)에서 창시되었다.

김형렬은 금산면 청도리에서 태어나 일찍부터 동학(東學)에 가담했고, 1901년 강일순(姜一淳)천지공사(天地公事)를 시작할 때부터 8년 동안 강일순의 측근에서 많은 활동을 하였다.

강일순이 사망하고 고부인(高夫人)이 태을교(太乙敎)를 세우자, 그도 강일순의 본처였던 정씨(鄭氏)를 내세워 수련시키면서 신력(神力)이 나타날 것을 기대하였으나 실패했다.

그 뒤 수련 끝에 신안(神眼)이 열리고 하늘로부터 영서(靈書)를 받았다면서 1915년 미륵불교라는 이름으로 포교하기 시작하였는데, 이 때 신도가 수천 명에 이르렀다. 1919년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한다 하여 일본경찰에 구속되기도 하였다.

1921년 서울에서 불교진흥회(佛敎振興會)를 조직하였다가 그 이듬해 다시 미륵불교로 개명하고 본부를 모악산 금산사에 두었다. 수 차에 걸쳐 각종 예언을 하였지만 거의 빗나갔고, 따라서 교세가 약화되기 시작하다가 1932년 그가 사망하여 교단은 거의 유명무실하게 되었다.

그 뒤 미륵불교는 유제봉(柳濟奉)의 용화계(龍華契)와 증산교의 김자현파(金自賢派) 등 여러 파로 분열되었는데, 용화계는 최선애(崔善愛)의 미륵계(彌勒契)로 이어져, 1970년 대한불교법상종(大韓佛敎法相宗)으로 문화공보부에 등록되었다.

증산교 김자현파에서는 다시 김사모파(金師母派)가 떨어져 나가기도 하였다. 신앙의 대상은 강일순이며 동시에 미륵불이다.

강일순이 평소 미륵불이라 자처하였고 자신이 죽은 뒤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사 미륵부처를 보라.”는 유언을 하여 미륵불을 받들게 하였다.

김형렬은 증산교에서 사용하는 태을주(太乙呪)를 쓰지 않고 동학에서 사용하는 시천주(侍天呪)로 신도들을 수련시켰으며, 신도들 각자의 생년지(生年支)에 해당하는 동물을 그린 물형부(物兄符)를 매일 수십 장씩 그려 그 동물과 각자의 성명을 새긴 인장을 찍어 불사르게 하였다.

참고문헌

『증산교사』(이정립, 증산교본부, 1977)
『증산교개설』(홍범초, 창문각, 1982)
「한국의 신흥종교-자료편 제일부 증산교계총론-」(이강오, 『전북대학교논문집』 7, 1966)
집필자
노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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