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위백(偉伯). 현감 안극변(安克辨)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형조참판 안윤손(安潤孫)이고, 아버지는 안자흠(安子欽)이다. 어머니는 신순승(辛舜昇)의 딸이다.
1522년(중종 17)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546년(명종 1) 왕의 즉위를 경축하기 위한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장령(掌令)·집의(執義)를 거쳐 병조참의에 이르렀다. 친형제가 일찍 죽었으므로 그 자녀들을 함께 양육하였는데, 먼저 형제의 자녀들을 혼인시키고 나서야 자신의 자녀들을 혼인시킴으로써 주위의 칭찬을 받았다.
또한, 청백리 안성(安省)의 후손으로서 가풍을 유지하였으므로 집안이 가난하였다. 승지로 있을 때 왕십리에서 출근하였는데 지각이 잦아, 이를 왕이 알고서 특별히 낙산(駱山)에 집 한채를 하사하였다고 한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아들과 함께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