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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조(禮曹)

    조선시대사제도

     고려·조선시대 예악·제사·연향·조빙·학교·과거 등을 관장하던 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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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야
    조선시대사
    유형
    제도
    시대
    조선
    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고려·조선시대 예악·제사·연향·조빙·학교·과거 등을 관장하던 관서.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육조의 하나로, 남궁(南宮)·춘관(春官) 또는 의조(儀曹)라고도 한다. 982년(고려 성종 1) 당나라의 제도를 참작해 삼성육관제(三省六官制)를 정립할 때 예관(禮官)으로 처음 설치되었다.
    995년(성종 14) 상서예부(尙書禮部)로 개칭되었다가 1275년(충렬왕 1)에 전리사(典理司)로 통합되었다. 이후 1298년(충렬왕 24)에 의조로 회복되었다가 1308년(충렬왕 34) 선부(選部)에 통합되었고, 1356년(공민왕 5) 예부로 회복되었다. 1362년(공민왕 11)에는 예의사(禮儀司)로, 1369년(공민왕 18)에는 예부로, 1372년(공민왕 21)에는 예의사로 개칭되었다.
    1389년(공양왕 1) 예조로 다시 개칭되었다. 이때의 명칭이 조선시대에 계승되었다가 1894년(고종 31) 갑오경장으로 폐지되었다. 고려시대에는 문종 이래로 예의(禮儀)·제향(祭享)·조회(朝會)·교빙(交聘)·학교(學校)·과거(科擧) 등에 관한 정사를 맡도록 규정했다. 조선시대에는 1392년(태조 1)에 재향·빈객(賓客)·조회·과거·진헌(進獻) 등의 일을 보도록 규정했다.
    1405년(태종 5)에는 예악(禮樂)·사제(祀祭)·연향(燕享)·공거(貢擧)·복축(卜祝) 등에 관한 일을 맡도록 규정했다. 이후 보다 세련되어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예악·제사·연향·조빙·학교·과거 등에 관한 일을 맡도록 성문화되었다. 그러나 실제 기능은 왕권이나 여러 정치기구와의 역학관계에 따라 강약이 되풀이되었다.
    속사(屬司)주 01)는 고려시대 982년(성종 1)부터 1012년(현종 3)까지는 사조(祠曹)에서 운영되었고, 뒤에는 사조가 개칭된 상서사부(尙書祠部)에서 운영하였다. 이후 조선 개국 초까지 일단 폐지되었다. 1405년(태종 5)에 계제사(稽制司)·전향사(典享司)·전객사(典客司)가 설치되어 1894년까지 존속하였다.
    속아문(屬衙門)은 1405년에 예문춘추관(藝文春秋館)·경연(經筵)·서연(書筵)·성균관(成均館)·통례문(通禮門)·봉상시(奉常寺)·예빈시(禮賓寺)·전의감(典醫監)·사역원(司譯院)·서운관(書雲觀)·교서관(校書館)·문서응봉사(文書應奉司)·종묘서(宗廟署)·사온서(司醞署)·제생원(濟生院)·혜민국(惠民局)·아악서(雅樂署)·전악서(典樂署)·사련소(司攣所)·선관서(膳官署)·도류방(道流房)·복흥고(福興庫)·동서대비원(東西大悲院)·빙고(氷庫)·종약색(種藥色)·대청관(大淸觀)·소격전(昭格殿)·도화원(圖畵院)·가각고(架閣庫)·전구서(典廐署)·사직단(社稷壇)·관습도감(慣習都監)·승록사(僧錄司) 및 각 도의 학교·의학이 편속되었다.
    그러나 이후 부분적으로 새로 설치되거나 이관 또는 도태되었다가 『경국대전』에 홍문관(弘文館)·예문관·춘추관·성균관·승문원(承文院)·통례원(通禮院)·봉상시·예빈시·전의감·사역원·관상감(觀象監)·교서관·내의원(內醫院)·장악원(掌樂院)·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종학(宗學)·종묘서·소격서·사직서·빙고·전생서(典牲署)·사축서(司畜署)·혜민서·도화서·활인서(活人署)·귀후서(歸厚署)·4학(四學)·각전(各殿)·각릉(各陵)으로 성문화되었다. 이것이 『속대전』에 세손시강원(世孫侍講院)의 신치와 함께 폐지될 때까지 유지되었다.
    운영을 보면, 돌발사·중대사는 판서·참판·참의가 속사를 지휘하면서 처리하였다. 일상사는 속사에 편제된 정랑·좌랑이 중심이 되어 수행하였다. 조와 속아문은 형식적으로나마 국가의 모든 권력을 육조와 소수의 당상관을 매개로 국왕에게 예속시키기 위해 형성된 것이므로 속아문사의 대부분의 일은 자율적으로 처리되었다. 기능이 중시된 홍문관·예문관·성균관·춘추관·승문원·봉상시 등은 겸관(兼官) 및 조와 협의해 수행하였다.
    구성원을 보면, 982년 성립시에는 어사(御事)·시랑·낭중·원외랑(員外郎) 등이 있었다. 이후 조선의 『경국대전』에 판서 1원, 참판 1원, 참의 1원, 정랑 3원, 좌랑 3원과 이속의 서리(書吏), 조례(皁隷), 차비노(差備奴), 근수노(根隨奴), 반당(伴倘), 근수(根隨)로 성문화되기까지 20여 차례의 변천이 있었다. 이는 [표]와 같다.
    [표] 예조 소속 구성원의 변천
    시대\품계정2품종2품정3품(上)종3품정4품정5품정6품정7품
    고 려문종대상서(1)지부사(1, 겸임)시랑(1)낭중(2)원외랑(1)
    충렬왕12434판서상서(1)전서(1)총랑시랑(3)의랑(3)정랑낭중(3)직랑(3)좌랑원외랑(3)산랑(3)주부(2, 겸임)
    공민왕5111821상서판서상서판서시랑(겸임)총랑의랑총랑낭중정랑직랑정랑원외랑좌랑산랑좌랑
    조 선태 조14전서(2) 의랑(2) 정랑(2) 좌랑(2) 주사(2)혁파
    태 종3516판서(1)참판(1)전서(1)좌·우참의(2 )참의(1)혁파정랑(3)좌 랑(3)
    세 종1416좌·우참판(2 )참판(2)좌·우참의(2 )참의(1)
    경국대전
    대전회통정랑(2)좌랑(2)
    자료 : ( ) 안의 숫자는 정원.
    한편 고려시대에는 평장사(平章事)나 참지정사(參知政事) 등이 판상서예부사(判尙書禮部事)를, 조선시대에는 의정이나 찬성 또는 참찬 등이 판예조사(判禮曹事)를 겸하고 예조사에 간여해 견제를 당하기도 하였다.
    이와는 달리 판서는 승문원제조와 비변사제조, 참판은 봉상시와 예빈시제조 등을 겸임하면서 그 관사의 사무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육조 안에서 예조의 서열은 고려시대부터 조선 태종대까지는 이조·병조·호조에 이어 네번째였다. 그러나 세종 즉위 이후 이조·호조에 이어 세번째로 운영되었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영역닫기영역열기 주석
    주01
    하급 관청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5년)
    한충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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