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1506년 중종반정에 가담한 공로로 분의정국공신(奮義靖國功臣) 4등에 녹훈되었으나, 1519년(중종 14) 조광조(趙光祖) 등에 의하여 남록자(濫錄者)로 지목되어 훈적(勳籍)에서 삭제되었다.
곧 이어 조광조가 실각됨으로써 복적(復籍), 공신녹권이 환급되었다. 1539년 중종이 김극성(金克成) 이하 16명의 생존한 정국공신을 위하여 위로연을 베풀 때 전설시수(典設寺守)로 참석하여, 어린 말 1필을 상으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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