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학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지역과 공간을 계통적으로 분류하여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지리적·공간적 특성을 파악하고 종합하여 지역의 성격이나 지역성을 규명한다. 지리학은 주제나 방법론에 따라 계통지리학, 지역지리학 등으로 나뉜다. 서양에서 지리학은 그 역사가 오래된 학문이다. 우리나라의 전통 지리학은 조선 시대 지리지와 지도의 편찬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현대 지리학은 도시·환경 및 사회·문화 등 여러 분야로 그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또 사회의 여러 가지 실제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응용지리학이 중요한 분야가 되었다.
지역을 다루는 지리학은 지표현상을 백과사전적으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지표면에서 전개되는 현상들의 지리적 공간적 특성을 파악하고 종합하여 특정 지역의 성격 내지 지역성을 규명하고, 이를 통해 다른 지역들과의 차이를 고찰한다.
지리학은 지표상에 형성된 자연 및 인문환경들이 인간생활을 어떻게 조건지우며 또한 인간생활은 어떻게 생활조건으로서 환경을 변화시켜 나가는가를 이해하고자 한다. 지리학자는 공간적 현상 간의 관계를 분석하여 이들에 의해 형성된 유형(pattern)을 찾아내고 이 유형이 만들어지는 과정(process)을 밝히고자 한다.
지리학은 연구주제 및 방법론에 따라 여러 기준이 있으나, 대체로 계통지리학(systematic geography)과 지역지리학(regional geography), 그리고 지리학연구방법론 등으로 나뉜다.
계통지리학은 지형, 기후, 토양, 식생 등을 다루는 자연지리학과 경제, 정치, 사회, 문화, 도시, 역사 등을 다루는 인문지리학, 그리고 세부적으로 여러 다양한 전문 분야로 구분된다. 지역지리학은 한 지역이 가지는 자연적 및 인문적 제반 특성들을 종합적으로 고찰하여 그 지역성을 파악하고 다른 지역과의 상이성을 고찰한다.
계통지리학은 지표공간에 대한 특별한 지역구분 없이 특정 주제, 즉 지표의 지형현상, 기후현상, 인구현상, 도시현상, 경제현상, 정치현상, 사회 · 문화현상 등과 같은 자연이나 사회의 특정요소 또는 측면들을 지리학적 차원에서 분석 고찰하는 것이다. 계통지리학은 1950년대 이후 실증주의적 법칙추구를 위한 공간과학으로서 지리학의 발달에 따라 크게 성장했다. 지리학은 계통지리학의 주제들에 따라 자연지리학과 인문지리학으로 구분된다.
자연지리학은 인간-자연환경간의 관계에 관한 특정 주제에 따라서 지형학, 기후학, 토양학, 생물지리학 등으로 나뉜다. 인문지리학은 공업지리, 농업지리, 상업지리, 교통지리 등을 포함한 경제지리학과 문화지리, 인구지리, 도시지리, 촌락지리 등을 포함한 사회지리학, 정치지리학, 역사지리학 등으로 세분화된다.
한편, 지역지리학은 지리학의 역사와 같이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며, 고대 그리스-로마시대부터 근대적 학문체계의 성립에 이르기까지 지리학의 가장 중요한 분야 가운데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지리학연구방법론은 지도학, GIS, 항공사진판독, 각종 계량기법 분석 등을 다룬다.
지리학은 그 역사가 오랜 학문 중의 하나이다. 서기전 2500년경에 이미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점토판에 강, 농경지, 도시 등을 기호로 사용하여 지도를 그린 것으로 전해진다. 본격적인 지리학의 체계는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당시의 문학, 철학 및 기하학의 발달과 함께 지리학적인 지식을 여행기의 글이나 지도로 나타냈고, 그리스인들은 구체적 사물과 현상을 추상화시켜 기하학적 사유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자 하였다.
서구에서 지리학이라는 학문용어는 그리스인 에라토스테네스(Eratosthenes, 서기전 275∼195년)에 의해 만들어졌다. 그는 오늘날 지리학의 영어 용어인 ‘Geography’와 같은 뜻을 지닌 그리스어 용어를 처음 만들고 같은 이름의 저서를 편찬하기도 했다.
기원 전후에 지리학적 업적을 낸 지리학자로는 스타라보(Strabo, 서기전 64년∼기원후 20년)와 프톨레미(Ptolemy, 100∼179년)를 들 수 있다. 특히 스트라보는 고대 그리스의 지리학을 총 17권으로 된 『지리학(Geography)』이라는 책으로 정리했다. 그는 장소에 대해서 자세히 기술하였고, 8권으로 된 『지리학 안내서(Guide to Geography)』라는 거작을 저술하였다.
로마제국이 멸망한(476년) 이후 15세기에 유럽의 르네상스가 시작되기까지의 1,000여 년 동안 서구에서는 기독교의 성서와 신학이 모든 학문을 지배함에 따라 지리학을 비롯한 모든 학문이 정체 내지 퇴보하는 시기를 감수해야 했다.
중세시대의 지리학은 476년 서로마제국이 멸망한 후부터 1453년 오스만투르크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면서 르네상스시대가 시작되기 전까지의 약 10세기 동안의 지리학을 말한다. 이 기간은 기독교 교리가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사상계와 학문을 지배하고 있었다.
중세 서구인들은 기독교 교리에 근거하여 우주를 이해하였다. 고대 그리스에서 전래된 지동설은 신앙의 차원으로 격상되었으며, 천상과 지상이라는 이분법적 구분 속에서 천국과 지옥, 연옥을 중심으로 우주가 구성되어 있다고 믿었다.
이는 원형의 T-O 지도를 통해 표현되었다. O는 세계를 둘러싸고 있는 바다를 나타내며, T는 세계의 육지를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으로 나누는 기준을 나타낸다. 중세 서구인들은 기독교적 세계관에 입각하여 환경을 이해했다. 자연환경이란 신의 설계에 의해 창조된 것으로 창조주가 인간에게 관리를 위임한 것으로 생각했다. 특히 인간은 자연 가운데에서 특별한 지위를 차지하는 존재로 간주했다.
중세인들은 체계적인 지역지리서보다는 성지순례를 위한 여행기를 주로 저술했으며, 기본적으로 기독교 세계와 이교도 세계라는 이분법적 도식으로 세계를 이해했다. 십자군 원정(1096∼1270)을 통해 서구 밖의 세계에 대한 지식이 점차 축적되었으나 자민족중심주의에 근거한 편견은 강하게 존재하였다. 1240년대 몽골의 침입 이후 서양과 동양의 교류가 빈번해졌으며, 그 과정에서 마르코 폴로(1254∼1324)의 『동방견문록』이 출간되었다.
유럽의 지리학은 15세기 이후 급속하게 발전하였다. 이는 크게 두 가지 시대적 배경에서 이루어졌다.
첫 번째는 르네상스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중세 말기에 들어 유럽에서는 1096∼1270년 사이 8차례에 걸친 십자군원정과 그 실패로 교황의 권위가 추락하였다. 이와 동시에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점차 인간의 이성과 자유사상에 의한 사고를 중요시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13세기부터 여러 학문분야에서 과학적으로 현상을 연구하려는 학자들이 나타났고, 이러한 배경 속에서 지리학도 새롭게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두 번째는 대항해시대가 열렸다는 점이다. 십자군원정 이후 유럽인들의 주식인 육류요리에 필수적인 향신료와 함께 귀금속 및 보석류 등이 그간 아랍 상인의 중개로 동방으로부터 들어왔으나, 이슬람 세력에 의해 그 교역로가 완전히 차단되었다. 이에 15세기 이후 유럽인들은 아시아로의 해상 무역로를 개척하게 되었고, 이는 동방에 대한 새로운 지리적 정보와 지식을 얻을 수 있는 대항해로 이어졌다.
유럽인들의 동방에 대한 '지리상 발견'은 포르투갈의 엔리케(Infante Dom Henrique) 왕자에 의해 처음으로 시도되었다. 그는 아프리카 남부를 돌아 인도로 항해하기 위한 길을 개척하고자 했으나 실패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본격적인 발견을 견인할 경쟁시대를 여는 계기가 되었다.
포르투갈의 탐험가 바스코 다 가마는 희망봉을 돌아 아프리카의 소말리아까지 항해한 후 인도양을 횡단하여 1498년에 인도의 서해안에 위치하는 마라바에 도착하였다. 이태리 제노아의 금융인 출신이었으나 스페인계 항해가로 활동했던 콜럼버스는 새로운 항해시대를 열었다. 그는 스페인 이사벨라 여왕의 재정적 지원을 얻어 1492년 8월 파로스를 떠나 항해 길에 나서 동년 10월에 아메리카의 서인도제도를 발견했으며 이후 1502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그곳에 항해를 하였다.
이탈리아 탐험가인 아메리고 베스푸치(Amerigo Vespucci)는 카리브해와 북미의 남단 및 남미의 동해안을 항해하고서 이 대륙이 아시아의 일부가 아닌 새로운 대륙임을 밝혔다. 또한 포르투갈의 항해가인 마젤란(Ferdinand Magellan)은 스페인왕인 카를로스의 협조를 통해 세계일주 항해에 나서 세계가 바다로 연결되었음을 밝혔다.
이와 같이 15세기 초부터 18세기에 걸친 대항해를 통해 유럽인들이 얻은 엄청나게 많은 새로운 정보들은 그들의 지리적 사고에 커다란 변화를 주었고, 더 많은 새로운 지리적 지식을 갖게 하였다. 이에 새로운 지리적 지식과 방대한 정보를 수집하여 집대성하는 지리학자들이 등장하였는데,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레니우스(Varenius, 1622∼1650)이다.
그는 1649년에 『일본과 사이앰(태국의 옛 명칭)에 관한 기술』이라는 책을 저술하였고, 1650년에는 서구의 지리학이 근대에 와서 과학적인 학문으로 발달하는 데 기틀이 되었던 『일반지리학(General Geography)』이란 책을 저술하였다.
이 책에서 그는 지리학을 일반지리학과 특수지리학으로 나누었다. 일반지리학이란 모든 장소에 적용되는 보편적인 법칙 또는 원리에 관한 논의로서 오늘날의 기준에서는 주제지리학(topical geography) 또는 계통지리학(systematic geography)이라 볼 수 있다.
18세기 중엽 이후 지리학은 다른 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근대과학으로서의 확고한 기반을 형성하고 독립적인 과학으로서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18세기에 들어서 유럽의 각국에서는 과학협회가 결성되면서 자연과학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이 본격화되었다.
이에 따른 영향으로 지리학에서도 자연지리학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으며 지표면의 자연현상에 대해 보다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들이 이루어졌다. 뿐만 아니라 1750년 이후 독일에서는 지리학자들을 중심으로 지리학을 독립된 과학으로서의 위치를 확보하고자 하는 순수지리학운동이 일어났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 따라 1700년대 후반부터의 지리학은 지난 2,000여 년 동안의 고전지리학과는 판이하게 다르게 과학적인 관점에서 지리적 지식을 일반화하는 것을 목표로 체계적으로 접근하였고, 그 결과 지리학의 학문적 정체성과 전문성은 크게 강화되었다. 이러한 과학적인 근대지리학의 성립에 가장 공헌한 초기의 학자로는 독일의 훔볼트(Alexan-der von Humboldt), 리터(Karl Ritter), 그리고 칸트(Immanuel Kant)를 들 수 있다.
독일을 시작으로 18세기 중엽에서 19세기 전반에 걸쳐 근대과학으로서 독자적인 학문적 성격과 위치를 형성한 지리학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전반기에 이르기까지 독일, 프랑스, 영국, 미국 등의 많은 지리학자들을 중심으로 더욱더 전문화되고 분화되면서 발달되었다.
독일의 대표적인 학자로는 자연지리학자 리히트호펜(Richthofen, 1833∼1905), 환경결정론적 인문지리학자인 라첼(Ratzel, 1844∼1904), 지역지리학자 헤트너(Hettner, 1859∼1949), 자연지리학자 펭크(Penck, 1858∼1945), 인문(촌락)지리학자 슐터(Schluter, 1872∼1952), 자연(기후)지리학자 쾨펜(Koppen, 1846∼1940) 등을 수 있다.
프랑스의 학자로는 환경가능론적 인문 및 지역지리학자 비달 드 라 블리슈(Vidal de la Blache, 1845∼1918), 인문지리학자인 브루네(Brunhes, 1869∼1930), 자연지리학자 마르톤(Martonne, 1873∼1955) 등을 꼽을 수 있다.
영국의 대표적인 지리학자로는 인문 및 지역지리학자인 맥킨더(Mackinder, 1861∼1949), 인문(경제)지리학자인 치솜(Chisholm, 1850∼1930), 자연 및 지역지리학자 허버트슨(Herbertson, 1865∼1915) 등이 있다.
미국의 경우 자연지리학자 모리스 데이비스(Morris Davis, 1850∼1934), 환경결정론적 지리학자 셈플(Semple, 1863∼1932)과 헌팅턴(Huntington, 1876∼1947), 문화지리학자 사우어(Sauer, 1889∼1975), 지역 및 인문지리학자 하트션(Hartshorn, 1899∼1992) 등이 이 시기에 지리학 발전에 기여한 학자들이다.
한편 지역지리학은 그 다양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환경결정론이 쇠퇴한 시기부터 1940년대 말까지 지리학의 모든 연구 및 교육활동에 기본적인 패러다임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기존 방법에 대한 비판적인 소리가 나타나면서 새로운 지리학이 출현하였다. 이는 독특한 성격의 주제보다는 특정 유형의 방법론에서 그 공통성을 모색한 하나의 사조였다.
이른바 “계량혁명(quantitative revolution)”을 통해 도구적 방법론을 앞세운 실증주의 지리학은 이론의 검증과 법칙구성에 입각한 설명적, 과정지향적 과학을 통해 지리학의 전통을 대체하려고 시도하였다.
1950년대 이후 새롭게 도입 또는 개발된 방법론을 중심으로 나누어 볼 때 현대지리학의 흐름은 대체로 실증주의 지리학, 인간주의 지리학, 구조주의 지리학 등 세 가지 주요 패러다임이 큰 줄기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다른 여러 지역연구의 방법론이 작은 가지를 형성하여 현대지리학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고대 동양의 지리학 발달은 중국문명과 맥을 같이 했다. 중국에서는 만물의 변화생성을 기의 변화과정을 통해 이해했다. 인간뿐만 아니라 자연도 기를 지닌 존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인간과 자연을 엄격히 구분하지 않았으며, 자연을 의인화하여 이해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의인화된 자연을 인간처럼 대우했는데 바로 예(禮)라는 개념을 적용하였다.
이러한 견해는 음양오행설과 결합하여 풍수사상으로 발전되었다. 초기에 천문과 지리는 점을 치기 위한 것으로 이해했는데, 천문과 지리는 하늘과 땅에 대한 연구로서 인간이 따라야 할 도리를 제시해준다고 믿었다.
고대 중국에서는 하늘이 땅을 덮고 있으므로 우주의 모습은 천원지방(天圓地方,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이라고 이해했으며, 이러한 사상을 바탕으로 배수는 지도화의 원리로서 방격법을 고안했다. 격자상의 눈금에 따라 그려진 중국식 지도는 축척개념을 발달시켜 상당히 정확한 윤곽을 표현했다.
중국 문명의 판도가 확장되고 멀리 여행한 사람들의 기행문이 나타났다. 한편으로는 상상의 지리를 통하여 중화사상에 입각한 지역관이 더욱 고착화되었다. 전국시대 말엽에 저술된 『산해경(山海經)』은 상상속의 이미지와 신화를 지역지리 양식과 결합하여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최초의 고전이다.
우리나라의 전통지리학은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의 지리학 발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근대 이전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에서 지리는 주로 구체적인 지리적 정보의 기록과 축적에 관련된 지리지와 지도의 편찬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지리지는 정부에서 편찬한 관찬지리지와 민간에서 편찬한 사찬지리지로 나누어진다. 우리나라의 관찬지리지는 고려시대에 『삼국사기』 지리지 편찬을 시작으로 조선시대를 통해서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지리학이 독립된 학문으로 우리나라 대학에 자리를 잡게 된 것은 1945년 이후의 일이다.
『고려사』 지리지는 조선 초기에 편찬되었고, 1432년(세종 14)에 『신찬팔도지리지(新撰八道地理志)』가 완성되었다. 이 지리지는 『세종실록』 지리지로 출간되어 조선시대 지리편찬의 본보기가 되었다.
지리지 편찬사업은 국가통치에 필수적인 자료를 수집할 목적으로 시작되었고, 지역 정보의 종합적 자료집으로서 국가적인 사업으로 수정과 보완을 계속하였다. 관찬지리지의 편찬은 그 뒤에도 계속되어 1770년(영조 46)에 『동국문헌비고』, 『여지고(輿地考)』가 간행되고, 다시 수정, 보완되어 1908년에 『증보문헌비고』 여지고 27권을 마지막으로 간행하게 되었다.
사찬지지의 발간은 특히 조선시대 후기에 활발해졌다. 신숙주(申叔舟)의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는 일본과 유구국의 지지와 지도를 포함한 지리지로 높이 평가되며, 한백겸(韓百謙)의 『동국지리지』는 종래의 나열식 서술이 아니고 지리적 사실을 문헌을 이용하여 고증한 새로운 지리적 역사서로 평가되며 실학파 학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실학파 학자들은 서양의 학문을 중국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도입, 수용하였으며 이중환(李重煥)의 『택리지(擇里志)』와 정약용(丁若鏞)의 『강역고(疆域考)』는 실학자가 편찬한 대표적인 지리서이다. 이중환은 함경도와 전라도를 제외한 전국을 실제 답사하였으며, 농촌사회의 새로운 변화와 함께 농업 · 상업 · 교통 면에서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던 1750년대의 우리나라를 문화 · 역사적인 면에서 고찰한 훌륭한 인문지리서인 『택리지』를 저술하였다.
이중환은 인간과 자연, 지역, 입지(立地)에 관한 지리적 개념을 『택리지』를 통하여 무리없이 전개시킨 점에서 우리나라 근대지리학에 초석을 놓았다고 평가된다. 실학사상과 개화사상의 가교적 위치에 있는 최한기(崔漢綺)와 김정호(金正浩)는 같은 연배이고 친구이면서 지지 편찬과 지도 제작에 서로 협조하였다. 최한기는 초기 실학자들의 지리적 관심과 업적이 단편적인 데 비하여 서양의 지지와 지도를 본격적으로 소개한 첫 번째 학자였다.
『대동지지』는 경도(京都) · 부(府) · 군(郡) · 현(縣)의 지지에 한정되어 있던 종래의 지지에 계통지리적 성격을 띠는 교통 · 통신을 다룬 정리고(程里考), 현재 낙질로 돠어 있는 산수고(山水考)와 변방고, 방여총지(方輿總志) 등을 추가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대동지지』는 총론과 지방지를 포함하는 현대적인 한국지리지에 접근하였고, 역사지리적 내용을 다룬 방여총지는 종래의 역사와 지리의 유대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조선시대의 지도제작 사업은 세종대에 천체관측을 위한 간의(簡儀)와 천문용 시계에 해당하는 혼천의(渾天儀) 사용이 가능해진 이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세종 이후의 지도제작 사업의 성과는 1463년(세조 9) 양성지(梁誠之)와 정척(鄭陟)의 이름으로 정부에 바친 「동국지도(東國地圖)」로 나타났다.
이 지도는 100만분의 1 내외의 소축척(小縮尺) 지도이며 조선 전기의 대표적인 우리나라 지도이다. 조선 후기에는 축척과 방위가 정확하고 자세한 대축척지도인 정상기(鄭尙驥)의 「동국지도」가 18세기 중기에 도별분도(道別分圖) 형식으로 제작되었다. 이 지도는 산계(山系)와 하계(河系)가 정확하고 자세하며 교통로와 봉수, 각 군현 · 병영 · 수영 등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대동지지』의 저자인 김정호는 1834년(순조 34)에 「청구도」, 1861년(철종 12)에 「대동여지도」를 간행하였다. 전자는 상하 2권으로 된 지도책 형식을 취하였고, 후자는 22첩의 절첩(折疊) 형식으로 되어 있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는 약 16만분의 1 대축척 지도이며, 정상기의 약 42만분의 1 지도를 기초로 하여 보완 수정한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우리나라의 지도뿐만 아니라 세계지도의 편집 제작에도 많은 노력을 기우렸다. 1402년(태종 2) 권근(權近)이 발문을 쓰고 김사형(金士衡) · 이무(李茂) · 이회(李薈)가 만든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는 중국에서 들여온 2종의 세계지도를 기초로 하고 우리나라와 일본도를 보완하여 완성한 세계지도로서 당시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가장 훌륭한 세계지도라는 평을 받고 있다.
조선 후기에 작성된 세계지도로는 1747년 (영조 23)에 작성된 「천하여지도(天下輿地圖)」, 연대가 확실하지 않은 「여지전도(輿地全圖)」, 김수홍(金壽弘)이 1666년(현종 9)에 작성한 목판본 「천하고금대총편람도(天下古今大總便覽圖)」 등이 있다.
이 지도들은 시대적으로 마테오 리치(Ricci,M.)의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와 페르비스트(Verbiest,F.)의 「곤여전도(坤輿全圖)」가 우리나라에 전래된 때보다 뒤지거나 같은 연대이면서도 직접적 영향을 받지 않은 세계지도이다. 마테오 리치와 페르비스트의 세계지도를 비롯한 현대식 세계지도가 널리 보급된 것은 김정호의 「지구전후도」의 중간(1834)과 정부에서 중간한 것으로 추정되는 페르비스트의 「곤여도(坤輿圖)」의 중간(1861)이 계기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후기의 지도발달에서 주목할 부분은 지도책의 보급이다. 지도책의 발달은 읍지의 편찬과 때를 같이하고 도별전도(道別全圖)와 부 · 군 · 현도를 모아 지도책으로 만든 것과, 천하도로 불리는 세계지도 · 중국도 · 일본도 · 유구국도 · 팔도총도 · 도별도 들로 구성된 일반용 지도책이다. 후자는 그 내용이 다양하고 목판본과 필사본이 있으며 현전하는 수량으로 보아 널리 보급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한일수호조약(1876)에서 1910년의 한일합병 때까지는 서양의 문물을 직접 받아들이기 시작한 시기이며, 근대학교의 교과서를 통하여 서양의 지리학이 도입되었다. 오랫동안 쇄국정책을 써왔던 관계로 지리학은 국민들의 국제적인 시야를 넓히고 새로운 세계를 이해시키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소학교령」과 「사범학교 관제」가 반포된 1895년 이후에는 학부편집국에서 직접 『조선지지』(1895)와 『소학만국지지』(1895), 『중등만국지지』(1902)를 국한문 혼용의 활자본으로 간행하였고, 현채(玄采) · 장지연(張志淵) 등의 『대한지지』, 김홍경(金鴻卿)의 『중등만국지지』, 보성관(普成館)의 『중등지문학』 등이 이어서 출판되었다.
이 시기에 발간된 교과서 이외의 지리서로는 장지연의 『대한강역고』가 있다. 이 책은 이미 언급한 정약용의 『강역고』에 안설을 붙이고 임나고(任那考)와 백두산정계고(白頭山定界考)를 첨부하여 1903년에 황성신문사(皇城新聞社)에서 발간한 것이다. 개화기에 교과서의 출판과 동시에 학부편집국에서는 학교용 벽지도로 「대한여지도」(1900년경) · 「세계전도」(1900) · 「오주각국통속전도(五洲各國統屬全圖)」(1886) 등이 목판으로 발간되었다.
그러나 실학자들의 지리학에 대한 관심과 연구, 그리고 개화기 교과서와 일반 계몽을 위한 지리적 관심은 일제강점기에 그 공백기를 맞게 되었다. 이런 가운데 연희전문학교와 보성전문학교의 양대 사립 고등교육기관과 경성제국대학 등에서 소수이기는 하나 전공학자를 양성할 수 있었다. 지리학은 일제 말에 경성제국대학 부속 이과교원양성소(理科敎員養成所)에 지리과가 있었을 뿐이고 그 존속기간도 짧아서 졸업자는 약간 명에 불과하였다.
현대지리학의 시작은 실학자 이중환에까지 소급할 수 있으나, 개화기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학문연구의 주도권을 상실하였던 관계로 실질적인 현대지리학은 1945년 이후부터이다. 1945년 직후의 우리나라 지리학자들의 관심은 중등학교의 지리교육을 위한 교수요목의 재정이었다.
학문적인 관심은 지형학, 지지 및 경제지리 분야였고 환경론을 바탕으로 하는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 해명과 지역연구를 지리학의 중심목표로 삼고 있었다. 초기의 지리과의 대부분은 지리교사의 양성을 주목적으로 하였기 때문에 대학에서의 교육방향도 학자의 양성보다도 지리교사의 양성이 먼저 강조되었다.
1960년대 이후에는 국제적인 학문의 교류가 쉽게 이루어지고, 특히 미국지리학의 추세인 계통지리학의 내용이 우리 학계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그리고 환경론의 탈피와 동시에 자연지리학에 대한 관심이 점차 감소되고 인문 · 사회지리학이 지리학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1970년대에는 급격한 지리인구의 증가를 보았고 제2세대 지리학도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게 되었다.
2000년대에 이르러 지리학은 국토 · 도시 · 환경 분야를 위시하여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의 여러 분야에 걸쳐 전문적 학문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으며, 또한 일반 국민들에게 언론 등의 여러 매체를 통해 땅에 관한 내용을 대중적으로 알리고 있다.
지리학의 연구과제 또는 연구분야는 크게 계통지리학과 지역지리학의 분야로 대별된다. 전자는 지표면의 제 현상 가운데 무엇을 연구하느냐에 따라 자연지리학과 인문지리학으로 나누어진다. 자연지리학은 자연현상 중에서 무슨 현상을 연구과제로 삼느냐에 따라 지형학, 기후학, 토양지리학, 생물지리학, 수문지리학, 해양지리학 등으로 세분된다.
인문지리학은 사회현상으로서의 인문현상 중에서 무슨 현상을 연구과제로 하느냐에 따라 인구지리학, 도시지리학, 농촌지리학, 경제지리학(농업지리학, 공업지리학, 상업지리학, 서비스 경제지리학, 정보통신 지리학, 교통지리학 등) 문화지리학, 사회지리학, 정치지리학, 역사지리학 등으로 나누어진다.
다른 한편에서 볼 때 지표상의 제 현상은 다른 학문의 연구대상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지표상의 생물현상은 생물학의 주요 연구과제이며, 경제활동은 경제학의 연구과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계통지리학의 연구분야나 연구내용은 자연과학, 인문과학, 사회과학 등 여러 기초과학의 다른 많은 학문분야와 밀접히 관계되어 있다.
이에 비해 지역지리학은 지표면의 일부분으로서의 특정지역 또는 영역을 중심으로 각 지역의 지역성을 고찰하는 것으로 세계 또는 지표면을 어떻게 구분하느냐에 따라 그 연구분야가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지역지리학에서는 세계전체 차원에서 세계의 지역성을 논의하는 세계지리, 각 대륙내의 지역성을 살펴보는 각 대륙별 지리 즉, 아시아지리, 유럽지리, 아메리카지리, 아프리카지리, 오세아니아지리 등이 있고, 각 대륙의 문화권별 지리로는 동아시아지리, 동남아시아지리, 중동지역지리, 서유럽지리, 동유럽지리, 북미지리, 라틴아메리카지리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또한 한국지리, 미국지리, 중국지리 등 각 국가지리, 그리고 국가내의 지역 또는 지방지리 즉, 영남지리 대구지리 등으로 세분화하여 다룰 수 있다.
지리학은 이와 같은 본질적인 연구과제 이외에 계통지리학과 지역지리학 연구에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지리학적 방법론과 기법을 제공해주는 지리학 고유의 철학 분야(지리학사, 지리학방법론)와 분석기법 분야(지도학, 계량지리학, 항공사진판독, 원격탐사, 지리정보시스템)도 중요한 연구분야가 되고 있다.
현대지리학에서는 이밖에도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실제적인 문제해결을 위해 지리학적인 지식체계와 기법을 적용하여 접근하는 응용지리학이 또 다른 중요한 연구분야로 자리 잡고 있다. 응용지리학(applied geography)의 분야로서 많은 지리학자들이 연구하는 분야는 도시계획, 지역개발, 의료지리학, 마케팅지리학, 환경지리학, 관광 및 여가지리학 등 다양한 분야가 있다.
최근에는 세계의 자연환경 변화, 환경오염, 친환경적인 개발, 지속가능한 개발, 녹색환경 관리 등의 문제와, 세계경제 또는 산업구조의 변화, 공간조직의 변화와 관련된 정보화와 세계화의 문제, 그리고 삶의 질과 어메니티(amenity), 공간 정의와 공간 인지 등의 세분화된 연구분야까지 연구되고 있으며, 땅과 관련된 모든 주제가 새롭게 발굴 연구되고 있다.
지리학은 지표상의 다양한 현상을 공간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는 학문이다. 따라서 다른 어떤 학문보다도 광범위한 연구대상 또는 과제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