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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궤(儀軌)

유교문헌

 조선시대에 왕실이나 국가에 큰 행사가 있을 때 후세에 참고할 수 있도록 일체의 관련 사실을 그림과 문자로 기록한 책을 지칭하는 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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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역닫기영역열기 정의
조선시대에 왕실이나 국가에 큰 행사가 있을 때 후세에 참고할 수 있도록 일체의 관련 사실을 그림과 문자로 기록한 책을 지칭하는 용어.
영역닫기영역열기연원 및 변천
중국에서 ‘의궤’란 이름을 가진 책은 남북조시대부터 유교와 불교 관련 서적에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고려 명종 때 송에서 전래된 『좌선의궤(坐禪儀軌)』가 있다는 기록이 보이고, 팔만대장경 중에도 의궤라는 이름을 가진 불경이 나타난다. 고려 후기의 의궤는 불교와 도교 계통의 의례집을 의미한다. 왕실이나 국가의 행사를 기록한 의궤는 조선이 건국된 직후부터 편찬되었다. 의궤라는 책 이름이 보이는 것은 1395년(태조 4)에 작성된 『경복궁조성의궤(景福宮造成儀軌)』가 처음이고, 1408년(태종 8)에 태조가 승하하자 의정부에서 4개 도감(都監)과 13개 색(色)을 설치하여 국장(國葬)을 진행한 후 『태조강헌대왕상장의궤(太祖康獻大王喪葬儀軌)』를 작성하였다. 그러나 조선 전기에 제작된 의궤는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완전히 소실되었고, 실록 등의 기록을 통해 그 존재를 확인할 뿐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의궤는 1601년(선조 34)에 제작한 『의인왕후빈전혼전도감의궤(懿仁王后殯殿魂殿都監儀軌)』이다. 조선 후기에는 행사를 주관하던 관청에서 의궤를 꾸준히 작성하였다. 영조 대에 가장 많은 의궤가 제작되었고, 숙종·순조·고종 대에도 많은 의궤가 작성되었다. 대한제국이 있었던 14년 동안(1897~1910년)에는 총 68종의 의궤가 제작되었다. 이는 황제국의 위상에 맞는 국가 전례를 갖추려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으로 이해된다. 1910년 대한제국이 멸망한 이후에는 이왕직(李王職)에서 의궤를 작성하였다. 가장 나중에 나온 의궤는 1942년에 작성된 『종묘영녕전의궤(宗廟永寧殿儀軌)』이지만 이는 장부책에 불과하고, 1928년에 작성된 『순종효황제순명효황후부묘주감의궤(純宗孝皇帝純明孝皇后祔廟主監儀軌)』가 형태를 제대로 갖추면서 가장 나중에 나온 의궤이다. 조선 왕조의 의궤는 1395년부터 1928년까지 530년 동안 꾸준히 제작되었으며, 현재는 1601년부터 1928년까지 제작된 의궤가 남아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내용
조선 후기부터 대한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작성된 의궤는 총 608종이 남아 있다. 내용을 보면, 국왕 및 왕비의 국장과 관련이 있는 의궤가 163종이며, 여기에는 국장, 빈전(殯殿), 혼전(魂殿), 산릉(山陵), 부묘(祔廟)에 관한 의궤가 있다. 세자 및 세자빈의 예장(禮葬)에 관한 의궤는 52종이며, 여기에는 예장, 빈궁(嬪宮), 혼궁(魂宮), 묘소(墓所)에 관한 것이 있다. 국장과 예장에 관한 의궤는 전체의 35%를 차지하며, 다른 의궤에 비해 기록의 양도 많아서 의궤 기록상의 비중은 더 높아진다.
서적의 편찬과 수정에 관한 의궤는 총 106종으로 전체의 17%를 차지한다. 여기에 해당하는 의궤의 이름은 매우 다양하며, 편찬 대상이 된 서적은 『광해군일기』부터 『철종실록』까지의 실록과 『동국신속삼강행실(東國新續三綱行實)』, 『천의소감(闡義昭鑑)』, 『열성지장(列聖誌狀)』, 『국조보감(國朝寶鑑)』 등이 있다. 서적에 관한 의궤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선원록(璿源錄)』과 『선원계보기략(璿源系譜記略)』의 편찬과 수정에 관한 것이다. 이런 책은 왕실 가족에게 새로운 존호(尊號)를 올릴 때마다 수정이 이루어졌다.
왕실 가족의 공덕(功德)을 드러내기 위해 생전에 존호를 올리거나 사후에 존호를 추상한 의궤는 62종으로 전체의 10%를 차지한다. 이와 함께 시호(諡號)를 올린 4종, 보인(寶印)의 제작에 관한 4종, 책례(冊禮)에 관한 22종, 가례(嘉禮)와 관례(冠禮)에 관한 22종, 진연(進宴)에 관한 18종의 의궤는 모두 존호에 관한 의궤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들은 국왕, 왕비, 왕세자, 왕세자빈과 같은 왕실 가족의 지위를 확정하거나 공덕을 드러내는 행사를 정리한 의궤이다. 특히 진연의궤는 1795년에 『원행을묘정리의궤(園幸乙卯整理儀軌)』가 정리자로 간행된 이후 대부분 활자본으로 간행되었다
건물의 영건(營建)이나 수리에 관한 의궤는 52종으로 전체의 9%를 차지한다. 영조 대에 특히 많은 의궤가 작성되었으며, 대상이 된 건물은 창덕궁, 창경궁, 경덕궁, 서궐(경희궁), 종묘, 남별전(영희전), 경모궁 권역의 건물이 있다. 고종 대에는 조경단(肇慶壇), 준경묘(濬慶墓), 영경묘(永慶墓)와 같이 서울 이외의 지역에 세운 건축물도 있다.
특정한 시기에만 작성된 의궤가 있다. 명 사신을 접대하는 의궤는 광해군과 인조 대에만 작성되었고, 태실 의궤는 대부분 순조 대 이후에 작성되었다. 공신의 녹훈(錄勳)에 대한 의궤는 선조 대부터 영조 대까지 작성되었고, 친경(親耕), 친잠(親蠶), 대사례(大射禮)에 관한 의궤는 영조 대에만 있다. 고종이 대한제국을 건설한 이후에는 『고종대례의궤(高宗大禮儀軌)』와 같이 황제국의 전례를 갖추는 과정에서 작성된 의궤와 해당 기구의 종합적 상황을 파악하려고 작성한 의궤가 있다.
영역닫기영역열기현황
현재 의궤의 주요 소장처는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국립문화재연구소, 국립고궁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등이다. 규장각에는 533종 1567건 2897책의 의궤를 소장하고 있다. 이 중에서 유일본은 116종이며, 그 중 53종은 『선원계보기략』의 수정에 관한 의궤이다. 규장각 의궤의 원소장처는 오대산, 정족산, 태백산 사고와 예조, 의정부, 어람용이다. 장서각에는 268종 341건 566책의 의궤를 소장하고 있다. 유일본은 39종 56책이며, 원소장처는 어람용, 비서감, 장례원, 적상산 사고이다. 장서각 의궤는 1918~1919년에 표지를 개장(改裝)하였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14종 15책의 의궤를 소장하고 있으며, 이는 장서각에 있던 것이 분리된 것이다. 국립고궁박물관은 2011년에 일본 궁내청에서 돌려받은 72종 75건 159책의 의궤를 소장하고 있다. 대부분 고종∼순종 연간에 작성된 것이며 유일본은 없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011년에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돌려받은 186종 189건 294책의 의궤를 소장하고 있으며, 어람용이 289책, 유일본은 26종 29책이다. 이는 강화도 외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가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게 약탈되었던 것이다. 현재 주요 소장처에 소장된 의궤는 총 2186건 3931책이며, 지방이나 해외에서도 계속 의궤가 발견되고 있다. 의궤는 2016년 5월에 국가문화재(보물)로 지정되었다. 문화재로 지정된 의궤는 1757건 2751책이고, 이를 소장한 기관은 12곳이다. 분상처가 없는 활자본 의궤와 1910년 이후에 작성된 의궤는 국가문화재에 포함되지 않았다.
영역닫기영역열기 참고문헌
  • 『조선 왕조 의궤 현황과 전망』(김문식 외,국립중앙박물관,2012)

  • 『조선 왕조 의궤: 국가 의례와 그 기록』(한영우,일지사,2005)

  • 「조선시대사 연구와 의궤」(김문식,『조선시대사학보』 79,2016)

영역닫기영역열기 집필자
집필 (1996년)
이민식
개정 (2017년)
김문식(단국대학교(사학과), 조선시대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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