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18세기 김종후가 『가례』와 관련한 고금의 자료를 정리하여 엮은 예법에 관한 책.
저자 및 편자
서지사항
편찬 및 간행 경위
『가례집고』의 간행은 김종후 사후 21년만인 1801년, 제자 임육(任焴)에 의해 완성되었다. 임육은 예학의 대가였던 이재(李縡, 1680∼1746)의 제자인 임성주(任聖周, 1711~1788)의 족질이며, 임성주는 김종후와 많은 예학적 주제에 관해 토론을 주고받은 인물이다. 하지만 실제 간행 과정에서 주요 실무를 주도한 인물은 또 다른 제자인 이광석(李光錫)이었다. 이덕무(李德懋, 1741~1793)의 9촌 조카였던 그는 서얼 출신이었지만 학문적 재능이 뛰어나 『가례집고』의 간행뿐 아니라 편찬 과정에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실제로 김종후는 『가례집고』에 이광석의 견해를 115건이나 인용하였다. 이광석이 중간에 사망함으로써, 임육이 『가례집고』의 간행을 마무리하게 되었던 것이다.
구성과 내용
의의 및 평가
조선의 예학이 발전하면서, 16세기부터 꾸준히 제기되어 왔던 『가례』의 불완전성을 고례를 통해 보완하려는 조선 학자들의 연구 성과도 축적되었다. 『가례집고』 역시 이러한 당시 조선 예학의 학술적 분위기에서 저술되었다. 특히 노론인 서인계 학자들에게 김장생과 송시열(宋時烈, 1607~1689)의 예설은 상당한 권위를 획득하였다. 김종후 역시 당시 대표적인 노론계 학자였음에도 불구하고, 김장생과 송시열의 예설을 비판적으로 검증하였다. 김종후는 노론이었지만, 예학과 관련해서는 학파를 넘어 폭넓은 교류를 지향했다. 대표적으로 낙론계의 임성주와는 고례를 기준으로 하는 비판적이고 논쟁적인 예설을 공유하였고, 소론계의 박세채(朴世采)와도 교류하였다.
참고문헌
원전
- 김종후, 『가례집고(家禮集考)』
논문
- 김윤정, 「18세기 本庵 金鍾厚의 『家禮集考』 편찬과 그 의미」(『한국실학연구구』 30, 한국실학학회, 2015)
- 장동우, 「조선시대 『가례』 연구의 진전」(『태동고전연구』 31,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2013)
기타 자료
- 경성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예학총서 52, 『가례집고』 해제.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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