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 후기 문신이자 문인.
가계 및 인적 사항
주요 활동
임진왜란 중 전라병영이 강진에 있었는데, 임진왜란 후 이를 장흥으로 옮겼다. 이때 병영을 본래대로 강진으로 옮기려는 시도가 있었고, 이 과정에 사헌부 집의(執義)였던 강주에게 뇌물이 제공되었다. 그는 뇌물을 거절했지만 이 일로 3년이나 옥고를 치렀다. 결국 수뢰 혐의를 벗고 인조반정(仁祖反正)(1623) 이후 58세에 다시 관직에 나갔지만 마침내 관료 생활을 마감하였다.
학문과 저술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원전
- 「신도비명(神道碑銘)」(『죽창선생집(竹窓先生集)』 권 10)
단행본
- 강경훈·박용만·김덕수 역주, 『죽창선생집』(태학사, 2005)
논문
- 이병찬, 「죽창 강주의 한시 연구」(『어문연구』 70, 어문연구학회, 2011)
주석
-
주1
: 진사 급제 : 『을유8월사마방목(乙酉八月司馬榜目)』(국사편찬위원회[MF A지수532])
-
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八(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
주3
: 전라병영 이전 사건 : 선조수정실록39권, 1605년(선조 38) 1월 1일. "홍봉선·조진 등을 하옥시키다"
-
주4
: 조선 시대에, 북인(北人) 가운데 유영경(柳永慶), 남이공(南以恭), 김신국(金藎國) 등을 중심으로 한 분파. 선조 때 북인인 홍여순(洪如淳)이 대사헌이 되려고 할 때 같은 북인인 남이공이 반대하면서 홍여순 파와 갈라졌다. 우리말샘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