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조선 후기 사헌부장령, 공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가계 및 인적 사항
주요 활동
광해군대에 심경(沈憬)의 무고로 정경세(鄭經世)와 함께 심문을 받았으나 근거가 없어 석방되었다. 즉, 심경이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다가 은연중에 장차 모후(母后)를 폐하려 한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하였다. 이 말이 광해군의 귀에 들어갔다. 이에 대해서 심경이 심문을 받으면서 김몽호와 정경세에게 들었다고 말하였는데, 이 때문에 엄히 심문을 받았다.
이후 강릉 경포대의 호해정(湖海亭)으로 물러나 여생을 보냈다. 인조반정(1623) 직후에 공조참의에 임명되자 옥성부원군(玉城府院君) 장만(張晩)과 연평부원군(延平府院君) 이귀(李貴)가 편지를 보내 조정에 나올 것을 권하였지만, 나가지 않았다. 묘소는 강원도 강릉시 강동면 안인리 산 15번지에 자리한 경인재의 전사청 앞에 있다.
참고문헌
원전
- 『광해군일기』
- 『인조실록』
- 조현명, 「동지김공묘갈명(同知金公墓碣銘)」(『귀록집』, 권 14)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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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문과 급제 : 『만력10년임오2월28일사마방목(萬曆十年壬午二月二十八日司馬榜目)』(영남대학교 중앙도서관[古350.48 사마방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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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문과 급제 : 『국조문과방목』 卷之九(규장각한국학연구원[奎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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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조선 시대에, 중국 황제ㆍ황후ㆍ황태자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하여 보내던 사신.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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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외국에 보내는 사신 가운데 기록을 맡아보던 임시 벼슬. 임진왜란 후에 종사관으로 고쳤다. 정사(正使)ㆍ부사(副使)와 함께 삼사(三使)로 불리며, 직위는 낮지만 행대 어사를 겸하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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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심경의 무고 : 『광해군일기[중초본]』 97권, 1615년(광해 7) 11월 10일. "심경·이경원·윤숙 등을 유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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