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사는 고려 후기에 전곡의 출납을 감독하기 위해 중앙의 도평의사사(都評議使司)와 지방의 도관찰출척사(都觀察黜陟使) 아래에 설치한 부속 기구이다. 도평의사사에서 경력사는 논의가 필요한 6부 업무를 관할하던 6방 녹사를 통솔하였다. 지방 통치를 강화하기 위해 도관찰출척사가 설치되어 위상이 높아지자 이를 보좌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로서 도관찰출척사의 행정 업무를 보좌하였다.
도평의사사에 설치된 경력사는 문신으로 임명한 34품의 경력(經歷), 56품의 도사(都事)와 아래에 서사(書寫)를 담당한 7~8품의 전리(典吏)를 두었다. 고려 33대 창왕은 국정의 최고 의결 기구인 도평의사사에서 논의가 필요한 6부의 업무를 관장해 온 6색장(六色掌)을 이방 · 예방 · 호방 · 형방 · 병방 · 공방 등 6방녹사로 고치고 아래에 지인(知印) · 선차(宣差) 각 10명씩 두어 중앙과 지방의 업무를 관할하도록 하였다. 경력사는 1390년(공양왕 2)에 이들 6방을 통솔하는 기구로 설치한 것이다.
한편 각 도에 설치된 경력사는 도관찰출척사의 업무를 보좌하는 기능을 하였다. 1388년(창왕 1)에 지방 통치의 강화와 사전 개혁을 위해 도(道) 장관의 위상을 높이고자 종래의 안렴사를 도관찰출척사(都觀察黜陟使)로 개편하였다. 재추로서 임명하였으며 교서(敎書)와 부월(斧鉞)을 주어 파견하였다.
1389년에는 전임관으로 제도화하여 내실을 기하였다. 이처럼 도관찰출척사의 위상이 높아지는 가운데 사무 기구인 경력사를 설치한 것이다. 경력 · 도사를 두어 도관찰출척사의 행정 업무를 보좌하였다. 1392년, 도관찰출척사가 안렴사로 환원되자 경력 · 도사도 장무(掌務) · 녹사(錄事)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