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계화면에 있는 석기시대 신석기의 토기류와 석기류가 출토된 생활유적.
개설
내용
석기류에는 석영암제격지돌날[石英岩製剝片刀器] 3점, 자주빛 유문(流文)이 있는 규암계옥수(硅岩系玉髓)로 된 말굽형 마제옥부(磨製玉斧) 2점, 투각섬석편암(透角閃石片岩)으로 만든 유백색 동물이[齒]형 장식 1점, 석영편암 · 운모편암 · 흑색각섬석편암의 석재날부분만 갈아서 만든 납작양날돌도끼[扁平兩刀石斧] 5점, 갈록색이 돋는 수석화니질암(燧石化泥質岩)을 원통형으로 갈아서 조개처럼 둥근 날을 만든 대형의 간조갯날돌도끼[磨製蛤刀石斧] 1점, 돌끌[石鑿] 1점, 사암제방주상숫돌[砂岩製方柱狀砥石] 1점이 있었다.
또한 특이한 것으로는 사암질 자갈을 달걀형으로 다듬은 뒤 그물추[漁網錘]처럼 홈을 쪼아 두르고 한쪽 끝을 양쪽에서 갈아 둥근 날을 세운 돌도끼가 있다. 그 밖에 뗀격지석기[打製剝片石器]로서 T자형을 한 것과 등날을 세운 돌검형석기[石劍形石器]가 각각 1점씩 있었다.
그 중 석영질격지돌날은 시베리아 세석기(細石器)의 흐름을 따른 것으로, 3각형으로 떼어 한쪽에 날카로운 날을 세운 스크레이퍼[削搔器]와 단면 이등변삼각형의 프리즘형 석기가 있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소형 옥도끼인데, 이러한 옥도끼는 만주(滿洲) 요령지방(遼寧地方)의 약왕묘(藥王廟) · 남산근(南山根) 등 하가점(夏家店) 문화 하층과 적봉홍산후(赤峰紅山後) 제2주거지 등에서 아름다운 각섬석제(角閃石製)의 출토 예가 있으나, 한반도에서는 용강 궁산리 유적(弓山里遺蹟) 갱(坑)에서 출토되었을 뿐이다.
토기조각은 두께가 0.5∼5㎝로서, 문양이 없는 것들은 그릇 윗면에만 시문한 토기의 아랫부분 조각들이다. 기형(器形)은 알 수 없으나 입언저리가 곧은 것, 안으로 약간 오목한 것, 밖으로 헤벌어진 것 외에 둥근 밑살 조각이 있었다. 바탕흙[胎土]은 황토에 석영질 모래를 섞은 것과 벽돌색 진흙에 고운 운모편을 섞은 약간 단단한 것의 두 종류가 있다.
토기의 문양에는 ① 짧은 빗금무늬[單斜線文], ② 손톱무늬[爪形文], ③ 횡주(橫走)의 굵은 생선뼈무늬[魚骨文], ④ 굵은 물결무늬[波狀文]가 있다. 이 중 ① · ②는 한반도전역에 걸쳐 보편적으로 발견되는 빗살무늬토기 문양이지만, ③ · ④는 부산 영선동 · 동삼동 등 조개더미 퇴적층에서 나온 토기문양과 가장 가까운 것이다.
의의와 평가
그러나 간조갯날돌도끼 등 간석기의 출토는 이 유적의 연대가 다소 떨어지는 것임을 짐작하게 하며, 토기문양에 있어 궁산리나 암사리 등 한반도 서해안 쪽보다는 동남해안인 부산지방 유적과의 관련이 보이는 사실도 주목된다.
참고문헌
- 「부안계화도산상유적출토신석기시대유물(扶安界火島山上遺蹟出土新石器時代遺物)」(전영래, 『전북유적조사보고(全北遺蹟調査報告)』 10, 1979)
- 「韓國界火島出土の新石器時代遺物」(全榮來, 『考古學ジャ-ナル』 188,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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