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광무학교는 1900년 8월 광업 계통의 실업교육을 위해 한성부에 설립되었던 관립 학교이다. 광업 부문에서도 근대식 채굴 기술을 교육하여 전문적인 기술자를 양성해야 한다는 사회적·현실적 요구에 따라 설치되었다. 농상공부의 광산국에 속하였고, 교장은 농상공부 광산국장 현상건이 맡았다. 1904년 제1차 한일협약에 따라 농상공부 고문으로 일본인이 부임하면서 광상조사 기술전습소가 설치되었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광무학교는 1907년에 폐교되었다.
정의
1900년 8월, 광업 계통의 실업교육을 위해 한성부에 설립되었던 관립 학교.
설립 배경
1896년 이후 독립협회를 중심으로 실업교육이 중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광업 부문에서도 근대식 채굴 기술을 교육하여 전문적인 기술자를 양성해야 한다는 논의가 일어났다. 이러한 사회적 요청과 현실적 필요에 따라 ‘광무에 필요한 실학을 교육하는 곳’으로 1900년 9월 「광무학교관제」가 공포되었다.
변천 및 현황
국내에서의 광무 교육이 어느 정도 체계적으로 실시되자, 일본으로 광무 야금학을 공부하러 가는 유학생도 생겨났다. 그러나 1904년 제1차 한일협약에 따라 농상공부 고문으로 일본인이 부임하면서 새로이 ‘광상(鑛床)조사 기술전습소’가 설치되었고, 선발된 학생들은 국내 주요 광산을 시찰하며 광산 기기와 광학에 대한 교습을 받았다. 이러는 과정에서 광무학교는 1907년에 폐교되었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단행본
- 이배용, 『한국근대 광업침탈사 연구』(일조각, 1989)
논문
- 홍덕창, 「개화기의 실업교육」(『한국교육사학』 15, 한국교육사학회, 1993)
기타 자료
- 「磺務學校官制」(『官報』 第1672号, 1900. 9. 6.)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