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릉취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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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순조 때 남공철(南公轍)이 만든 목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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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순조 때 남공철(南公轍)이 만든 목활자.
내용

남공철이 관각(館閣:홍문관과 예문관)을 주재할 무렵, 그의 인서(印書)에 대한 중국적인 취미로 사사로이 독특한 필서체의 목활자를 만들어 1815년(순조 15)에 자기의 저서인 《금릉거사문집 金陵居士文集》을 찍어내고, 마치 중국본처럼 당지(唐紙)를 사용하고 장정도 전형적인 중국식으로 장책(粧冊)하였다.

이 목활자를 종래 ‘취진자’로 일컬어 왔는데, 그 명칭은 같은 활자로 찍은 그의 저서 《금릉거사문집》의 개편인 《귀은당집 歸恩堂集》과 《보만재집 保晩齋集》 등에 ‘취진판본(聚珍板本)’ 또는 ‘취진자파인(聚珍字擺印)’의 표시가 있는 데에서 붙여진 것이다.

그러나 취진판 또는 취진자의 명칭은 이 활자본뿐만 아니라 글자체가 전혀 다른 활자인 기영활자(箕營活字)·생생자(生生字)·정리자(整理字)·전사자(全史字), 그리고 정조·헌종연간에 다른 활자로 찍은 책에도 그 용어가 한결같이 쓰이고 있으므로 고유한 명칭이 아님은 물론이다. 중국 무영전(武英殿)에서 일컫던 취진판 또는 취진자라는 것은 활자판 또는 활자의 명칭이 익숙하지 않아 그와 같이 사명(賜名)한 것이다.

이렇듯 우리나라에서 넓은 개념으로 일컫는 활자판 또는 활자를 청나라에서 취진판 또는 취진자로 일컬은 것인데, 그 용어를 우리나라에서 그대로 받아들인 것임은 위 사례가 뒷받침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남공철이 사사로이 만든 활자만 유독 취진자로 일컫는 것은 고유한 활자명이 될 수 없으며, 다른 활자와 그 개념이 혼동될 뿐이다. 그러므로 이 활자를 제작한 인물의 호이자 그의 초찬초인(初撰初印)의 문집 이름인 ‘금릉(金陵)’을 머리에 붙여 활자명을 붙인 것이다.

이 활자의 글자체는 획의 파임에 굴곡상향성(屈曲上向性)의 특이한 운필을 느끼게 하는 필서체인 것이 특징이다. 그 바탕글자는 무엇에 근거하였는지 기록이 없으나, 1633년(명나라 숭정 6)의 간행기록이 있는 《목재초학집 牧齋初學集》과 비교해 보면 매우 비슷하다. 《목재초학집》은 명말(明末)의 학자 전겸익(錢謙益)의 문집이다.

일찍이 우리나라에 수입되어 명나라를 흠모하는 유학자들이 널리 애독했으므로 그것을 바탕글자로 했을 것으로도 보인다. 또는 다른 중국의 취진판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므로 계속적인 조사 연구가 필요하다.

이 활자의 초간본(初刊本)으로 1792년(정조 16) 기영(箕營)에서 목활자로 찍어낸 《오산집 五山集》을 들기도 하고, 또는 1808∼1810년의 인출로 추정되는 〈부벽루중수기 浮碧樓重修記〉를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취진판 또는 취진자의 개념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데에서 연유된 것이며, 이 활자의 글자체와는 전혀 다르다.

이 활자의 재료는 《금릉거사문집》의 표제지에 ‘주자로 찍어냈다(以鑄字開印).’는 기록이 있는 데에서 흔히 주자로 여겨 왔다. 그러나 이 활자로 찍어낸 다른 여러 책을 두루 조사한 결과 글자에 나무결이 보이고 글자획도 자주 끊겨 있으며, 또 그 획의 굵기가 고르지 않다. 조선 후기에 이르러 목활자를 목주자(木鑄字)라고도 일컬은 데에서 비롯된 것 같다.

본시 중국의 취진자가 목활자였으므로 남공철의 중국본에 대한 취미가 이와 같이 활자의 재료까지 그대로 나무를 사용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 활자로 찍어낸 책은 남공철의 저서인 《금릉거사문집》·《귀은당집》 이외에 그의 친지 문집인 《해거재시초 海居齋詩鈔》·《우념재시초 雨念齋詩鈔》·《삼산재집 三山齋集》·《보만재집》, 그리고 《해동명장전 海東名將傳》 중 그 잔질본이 약간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참고문헌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
『오주연문장전산고』
『수향편(袖香編)』(정지용)
『한국고인쇄기술사』(김두종, 탐구당, 1974)
『한국고인쇄사』(천혜봉, 한국도서관학연구회, 1976)
『한국의 고활자』(손보기, 보진재, 1982)
『한국전적인쇄사』(천혜봉, 범우사, 1990)
『한국목활자본』(천혜봉, 범우사, 1993)
「이조후기의 주자인쇄」(김원룡, 『향토서울』 7, 1959)
「부벽루중수기와 같은 활자본들」(윤병태, 『도서관학』 3,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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