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김만겸은 일제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로 독립운동에 헌신하였다. 러시아 정부 국경대표부 통역원, 대한국민의회 간부를 지냈다. 1911~1912년 러시아 신문 『달료카야 오크라이나』지 서울 주재 특파원으로서 서울에 거주하였다. 1920년 4월 코민테른 동아비서부의 일원으로 볼세비키와 협력하면서 상하이와 국내를 포함한 한인공산당을 조직하고자 하였다.
정의
일제강점기 대한국민의회 간부를 지내며 독립운동을 한 사회주의운동가.
가계 및 인적 사항
주요 활동
1912~1914년에 권업회(勸業會) 위원으로 활동하였고, 한인 교육을 위해 힘썼다. 1918년에는 신한촌(新韓村)의 한인학교에서 교사로 일하였다. 이 시기 김만겸은 러시아 공산당에 입당한 것으로 보이며, 한인사회당에는 가입하지 않았다.
1919년 2~3월 조직된 대한국민의회의 간부로 활약하였다. 일제는 1920년 4월 사월참변〔니항사변〕을 일으키며 연해주의 조선인을 탄압하였다. 이때 한인사회당이나 대한국민의회는 일본군을 피해 아무르주나 북간도로 이동하였다. 김만겸은 이동하지 않고 현지에서 지하조직을 만들어 일제에 저항하였다.
1920년 4월에는 코민테른 동아비서부의 일원으로 보이틴스키와 협력하여 한인공산당을 조직하는 일에 뛰어들었다. 김만겸은 상하이로 가서 한인사회당과 연합하여 한국공산당을 조직하였다. 한국공산당은 상하이의 독립운동가를 끌어들이고 국내에 조직원을 파견하고 이르쿠츠크의 사회주의 그룹과 연합하여 공산당을 창설하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모스크바 자금을 둘러싼 분규로 이러한 계획은 실현되지 못하였다. 김만겸은 1924년 고려공산당 준비위에서 조직부로 참여하였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단행본
- 임경석, 『초기 사회주의 운동』(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9)
논문
- 반병률, 「呂運亨의 활동을 통해 본 上海 지역 초기 한인공산주의 조직의 형성과 변천에 대한 재해석, 1919~1921」(『한국독립운동사연구』 45, 2013)
- 윤상원, 「1910년대 초반 김만겸의 활동과 식민지인식」(『역사연구』 17, 2007)
- 윤상원, 「1920년대 초반 러시아한인사회주의자들과 코민테른 김만겸의 활동을 중심으로」(『역사연구』 16,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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