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문서는 모두 3점으로, 교서 1점, 교지 2점이다.
김중만은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진압하는 데 공훈을 세워 분무이등공신(奮武二等功臣)으로 녹훈되었다. 1728년(영조 4) 3월에 무신난이 일어났는데, 이 난은 이인좌와 정희량(鄭希亮)이 각각 주동이 되어 일으켰기 때문에 이인좌 · 정희량의 난이라고도 한다. 이인좌와 정희량이 난을 일으킨 목적은 영조를 폐하고 밀풍군(密豐君)을 옹립하려는데 있었으나 난을 일으킨 지 20여 일 만에 진압되었다. 영조는 난을 평정하고 역란(逆亂)의 전말을 팔도에 반포하고 무신감난록(戊申勘亂錄)의 편찬을 명하였고, 오명항(吳命恒) 등 15명을 분무공신으로 책정하여 가자 및 봉군으로 녹훈하였고, 그해 7월 15일에는 분무원종공신 9000여명에게 녹권을 하사하였다.
김중만은 양성인(陽城人)으로 안성, 양성 등지의 사대부들이 중심이 된 취병(聚兵) 상황과 난을 일으키기 위한 모의 사실을 소상하게 고변(告變)함으로서 난의 평정에 크게 공을 세워 녹훈되었다. 언성군(彦城君)에 봉해졌다.
1728년 7월에 작성된 교서(敎書, 공신록)에는 1등 공신에 오명항, 2등 공신에 김중만 · 박찬신(朴讚新) · 박문수(朴文秀) 등 7명, 3등공신에 이수량(李遂良) 등 7명, 합 15명의 공신명단이 적혀있다. 분무2등 공신에 책훈된 김중만에게 2계급의 품직을 올려주고 적장자(嫡長子)가 그 녹을 세습하도록 하며, 노비 · 전답 · 은자(銀子) · 내구마(內廐馬) 등을 하사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두루마리 형태로 가로 286cm, 세로 44cm이며 뒷면에는 ‘李善行製崔重大書(이선행제 최중대서)’라고 쓰여 있어 글을 작성한 자와 쓴 자를 알 수 있다.
교지는 2장으로, 하나는 1729년(영조 5) 7월에 작성된 전답사패교지(田畓賜牌敎旨)이고, 다른 하나는 동년 9월 11일에 작성된 노비사패교지(奴婢賜牌敎旨)이다. 두 교지는 모두 전년도에 작성된 공신록의 내용과 관련있다. 그러나 교서의 내용과는 달리 전답의 경우 전 14결 50부, 답 9결 20부로 전 80결에 못 미친 반면, 노비의 경우는 노 16구, 비 18구로 9구에 비해 더 많은 수가 내려졌다.
이 문서는 경기도 안성시 대덕면의 김병석이 소장하고 있고, 1981년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이 자료를 통해 분무 공신들에 대한 포상 및 무신란의 성격을 살필 수 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