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중일기는 조선 시대 명장 이순신이 임진왜란 중에 작성한 일지이다. 7책 205장 친필 필사본이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1592년(선조 25) 5월 1일부터 1598년 10월 7일까지의 기록이다. 본래 이 일기에는 이름이 붙어 있지 않았다. 그런데 1795년 『이충무공전서』에 편찬자가 ‘난중일기’라는 이름을 붙여서 수록하였다. 일기에는 엄격한 군대 생활과 국정에 관한 솔직한 감회 등의 내용이 있다. 또 수군 통제에 관한 비책, 부하·장졸들에 대한 상벌, 전황 보고 등이 실려 있다. 난중일기는 임진왜란 연구의 귀중한 자료이다.
7책 205장. 필사본. 1962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난 다음 달인 5월 1일부터 전사하기 전 달인 1598년 10월 7일까지의 기록으로, 친필 초고가 충청남도 아산 현충사에 보관되어 있다.
본래 이 일기에는 어떤 이름이 붙어 있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후 1795년(정조 19)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를 편찬하면서 편찬자가 편의상 ‘난중일기’라는 이름을 붙여 전서 권5부터 권8에 걸쳐서 이 일기를 수록한 뒤로, 사람들은 이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이순신의 친필 초고와 전서에 수록된 일기를 비교해보면 상당한 차이가 발견되고 있다. 그것은 친필 초고를 정자로 베껴 판각할 때 글의 내용을 많이 생략한 때문인 듯하다. 또, 『이충무공전서』에 수록되어 있는 내용이 현재 남아 있는 친필 초고에는 언제 잃어버렸는지 없어지고 보이지 않는 부분이 상당수 있다. 예컨대 1592년 정월 1일부터 4월 22일까지의 부분, 1595년 1년 동안의 부분, 1598년 10월 8일부터 12일까지의 부분 등이다.
따라서 「난중일기」의 전모를 알기 위해서는 친필 초고를 표준으로 삼고, 초고의 망실로 인해 『이충무공전서』에만 수록되어 있는 부분은 그것으로서 보충할 수밖에 없다.
전 7책 중 제1책은 「임진일기(壬辰日記)」로 27매(1592.5.1.∼1592.5.4., 1592.5.29.∼1592.6.10., 1592.8.24.∼1592.8.28., 1593.2.1.∼1593.3.22.), 제2책은 「계사일기(癸巳日記)」로 30매(1593.5.1.∼1593.9.15.), 제3책은 「갑오일기(甲午日記)」로 52매(1594.1.28.∼1594.11.18.)로 되어 있다.
제4책은 「병신일기(丙申日記)」로 41매(1596.1.1.∼1596.10.11.), 제5책은 「정유일기(丁酉日記)」로 27매(1597.4.1. ∼1597.10.28.), 제6책은 「정유무술일기(丁酉戊戌記)」로 20매(1597.8.4.∼1598. 1.4.), 제7책은 「무술일기(戊戌日記)」로 8매(1598.9.15.∼1598.10.7.)로 되어 있다.
그 밖에 장계(狀啓) · 등본(謄本), 별책 부록 끝에 1598년 11월 8일부터 17일까지 최후 10일간의 일기가 1장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제5책과 제6책의 「정유일기」 중에 8월 4일부터 10월 8일까지의 일기는 중복되어 있다. 무슨 이유로 다시 썼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앞 책의 간지(干支)가 잘못 적혀 있는 점과 내용에서 뒤의 것이 앞의 것보다 더 많이 적힌 것으로 보아, 시간적 여유를 타서 기억을 더듬어 다시 한 번 더 적은 것이 아닌가 한다.
일기의 주요 내용은 엄격한 진중 생활과 국정에 관한 솔직한 감회, 전투 후의 비망록과 수군 통제에 관한 비책, 시취(時趣)의 일상 생활 등이 실려 있다. 이밖에 가족 · 친지 · 부하 · 장졸 · 내외 요인들의 내왕, 부하들에 대한 상벌, 충성과 강개의 기사, 전황의 보고, 장계 및 서간문의 초록 등이 실려 있어, 임진왜란의 연구에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자료이다.
1935년 조선사편수회에서 『조선사료총간』 제6으로 「임진장초(壬辰狀草)」와 함께 영인, 간행되었고 부산대학교에서 간행한 영인본 등이 있다. 1968년 이은상(李殷相)이 친필 초고본을 대본으로 삼고, 망실된 부분은 『이충무공전서』의 내용으로 보충해 이를 번역, 원문과 함께 현암사(玄岩社)에서 간행하였다. →이충무공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