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4년 당나라는 백제의 옛 땅에 설치했던 오도독부제(五都督府制)를 고쳐 웅진도독부(熊津都督府)로 단일화하는 개편 작업을 단행하였다.
그 결과 웅진도독부 관할 안에 동명(東明) 등 7주(州)를 설치하고, 각각 그 밑에 현(縣)을 소속시켰다. 그런데 7주 가운데 하나인 대방주는 백제멸망 직후인 660년 백제에 부임한 유인궤(劉仁軌)의 ‘검교대방주자사(檢校帶方州刺史)’라는 직함에 처음 나타나지만, 실질적인 의미는 없고 일종의 부대 표시에 지나지 않는다.
663년 백제부흥운동이 종식된 직후 유인궤는 정직(正職)의 대방주자사가 되었다. 하지만 검교웅진도독으로서 백제의 옛 땅에 주둔한 당나라군의 총사령관이었던 관계로 대방주가 제 기능을 발휘했다고는 볼 수 없다.
따라서, 대방주는 웅진도독부 산하 다른 여섯 개의 주들과 마찬가지로 664년에야 실질적으로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전라남도 나주 다시(多侍)에 있는 죽군성(竹軍城)을 치소로 한 대방주는, 지류현(至留縣 : 미상) · 군나현(軍那縣 : 지금의 전라남도 함평) · 도산현(徒山縣 : 지금의 전라남도 진도) · 반나현(半奈縣 :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 반남) · 죽군현(竹軍縣 :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 다시) · 포현현(布賢縣 :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 등 6개현을 관할하였다.
한편, 《삼국유사》 · 《고려사》 · 《세종실록》 지리지 ·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한결같이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을 대방군 또는 대방주로 간주하고 있는데, 모두 잘못 전해진 것이다. 대방주를 포함해 당나라가 설치한 웅진도독부 산하 7주는 신라가 부여에 소부리주(所夫里州)를 설치한 671년(문무왕 11) 모두 폐지되었다.
게다가 대방주가 설치된 기간 동안 당나라는 고구려와의 전투에 심혈을 기울였던 관계로 백제 옛 땅에 대방주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였다고는 보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