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부리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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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중대의 지방 통치 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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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신라 중대의 지방 통치 구역.
내용

백제 멸망 후 수도였던 부여에 설치한 주(州)이다. 660년(무열왕 7)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이 백제의 도성인 사비(泗沘 : 지금의 충청남도 부여)를 함락한 후, 당나라에서는 백제의 옛 땅에 웅진도독부를 위시해 모두 5개의 도독부를 설치하고 군정(軍政)을 실시하려 하였다. 그러나 옛 백제 지역의 대부분에서 부흥 운동이 일어남에 따라 제대로 통치하지 못하였다. 백제 땅에 머물러 있던 당나라 군사는 백제 유민의 부흥 운동에 밀려 고립되었고, 신라의 도움으로 겨우 웅진도독부만 명맥을 유지하였다.

그러다가 고구려까지 멸망시킨 당나라와 신라는 급기야 옛 백제 영토의 귀속 문제로 심각하게 대립하게 되었다. 670년(문무왕 10) 당나라 군사가 머물러 있던 웅진도독부와 신라 간의 화친이 깨지고, 신라는 힘으로 옛 백제의 영토를 점령하기 시작하였다. 그 해에 신라의 품일(品日) · 문충(文忠) 등이 백제의 63성을 빼앗아 그 곳 사람들을 신라의 영토로 옮겼다. 또 천존(天存) · 죽지(竹旨) 등이 12성을 빼앗고, 군관(軍官) · 문영(文潁) 등이 12성을 빼앗는 등 모두 87성을 차지하였다.

671년에는 석성(石城)싸움에서 당나라 군사 5,300명을 베는 큰 승리를 거두었다. 이 때 신라는 백제의 옛 도성이던 사비를 중심으로 하는 소부리주를 설치해, 여기에 도독(都督)으로 아찬(阿飡)진왕(眞王)을 임명함으로써 신라의 영토에 편입시켰다. 이러한 신라의 태도에 대응해, 당나라는 백제의 부흥 운동군을 사주해 신라와 대항하게 했으나, 672년의 고성성(固省城)싸움과 가림성(加林城 : 지금의 충청남도 임천)싸움을 거쳐 신라의 군대가 백제의 전 영토에 다시 주둔하게 되어 어쩔 수 없이 물러났으며, 웅진도독부는 랴오둥(遼東) 지방으로 옮겨졌다.

당은 신라의 소부리주 설치에 대해 항의하고, 김인문(金仁問)을 문무왕을 대신해 신라 왕으로 삼는 등의 책동을 하였다. 그러나 결국 676년 소부리주 기벌포(伎伐浦 : 지금의 충청남도 장항)해전에서 사찬 시득(施得)이 이끄는 신라군이 설인귀(薛仁貴)가 이끄는 당나라 군사를 22차의 전투 끝에 물리침으로써 백제의 옛 땅이 모두 신라의 영토가 되었다. 소부리주는 671년에 설치되어 686년(신문왕 5)에 웅천주(熊川州)가 되면서 군으로 되었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구당서(舊唐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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